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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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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42.12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7.4만자, 약 2.5만 단어, A4 약 47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91160400236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4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우리들의 밥상’
읽어야 할 책이 많았다. 다음 시즌 강의를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책들이었다. 책을 펼치고 꾸역꾸역 글을 읽어 내려갔다. 시국은 시국이고, 내 일은 또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머리도 가슴도 문을 닫아 걸었다. 이렇게 읽고 쓰고 말한들 세상이 바뀌기나 하겠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결국 가진 자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은 굴러갈 텐데.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처참한 사건은 나의 정신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잠시 떠나있고 싶었다. 쏟아지는 뉴스를 받아내지 않아도 될 고요한 곳으로. 마침 시골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나는 공지영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연설문을 대신 써주는 친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리는 친구 이야기에 마음을 기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밥상>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버들치 시인(박남준)이 친구들을 위해서 차려내는 밥상에 관한 이야기다. <지리산 행복학교>를 재밌게 읽었던 터라 지리산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컸다. 공지영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한겨레에 연재했었는데, 나는 일부러 그 글을 찾아보지 않았다. 언젠가 종이 책으로 나오면 책장을 넘기며 그 깊은 맛에 빠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시인의 밥상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고, 나는 예약주문으로 한정판 양장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책장을 펼쳤을 때 내 눈을 먼저 사로잡은 건 사진이었다. 설명하는 문장 하나 없어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완전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사진. 그것은 따뜻한 토닥거림이었고, 함께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고, 말없이 안아주는 우정의 포옹 같았다. 사진은 이럴진대 글은 또 어떨까, 나는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버들치 시인이 첫 상 위에 내놓은 것은 ‘호박찜’과 ‘호박국’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음식의 맛 보다, 호박을 키우기 위한 그만의 비결에 마음이 갔다. 호박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는 공작가의 말에 버들치 시인이 알려주는 비결이 ‘고난’이었기 때문이다. 호박이 열리게 하려면 호박의 싹들이 솟아오를 때 첫 순을 따주는 고난을 주어야 한단다. 그래야 호박들이 이 세상 참 쉽지 않겠구나, 하고 온 힘을 다해 다음 세대에라도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고난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호박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난 속에 있는 우리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고난은 훗날 어떤 열매가 되어 맺힐까.
나는 버들치 시인이 만들어낸 음식 중에서 몇 개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간장과 매실액과 고춧가루만으로 맛을 낸다는 부추무침과 마치 오이소박이처럼 만드는 가지소박이 아니 가지선, 그리고 김장 김치 고명을 올리는 냉소면을 말이다. 우선 어간장을 하나 주문해야겠고, 가지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가지선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김장 김치를 고명으로 올리는 냉소면은 출출할 때 간식 대용으로 해 먹어보려 한다. 일단 연습 삼아 한 번 해보고 성공하면 나도 친구들에게 작고 소박한 밥 상 하나 차려 줄까 한다. 버들치 시인이 친구들에게 밥상을 내놓았듯이 그렇게 말이다.
이 책에는 버들치 시인 말고도 밥상을 차리는 다른 사람들이 몇 몇 더 등장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김치를 담그는 j와 법성포의 굴비를 가져다 밥상을 차리는 버들치 시인의 누나, 산나물로 한 상 차려내는 심원마을의 백 여사, 그리고 친구의 친구들을 위해 고기를 낚는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의 작가 한창훈 까지. 이들은 모두 버들치 시인의 친구들을 위해서 밥상을 차린다. 원래는 버들치 시인만의 친구였지만 그들은 밥을 나누어 먹으며 친구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의 밥상 위에서 ‘밥’은 뱃속의 허기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나는 <시인의 밥상>을 읽으면서 내내 ‘밥상’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밥상을 내놓는 일은 마음과 삶을 나누는 일이라고. 정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소박한 밥상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시골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시내에서는 버스 경적 시위가 있었다. 너무 깊은 산골 마을에 있던 터라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이런 날은 경적 소리에 함께 환호하고 그 동네에 있다는 ‘새벽강’에 가서 소합탕에 소주 한 잔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잔을 부딪치며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다. 우리가 지금의 고난에 저항하는 것은 훗날 ‘올바른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열릴 것이고, 이렇게 우리가 함께 ‘흔들리면서도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밥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버들치 시인처럼, 누군가를 위해서 밥상을 차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내가 먹는 뭇 생명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풍파에 휩쓸린 친구 앞에 따뜻한 밥상 하나 놓아주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조금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시인의 밥상>을 덮으며 이제 ‘우리들의 밥상’을 그려 본다. 모두가 함께 둘러 앉아 허기진 마음을 채울 따뜻한 위로의 밥상을. 우리가 하나씩 들고 온 작은 들꽃으로 만발한 우리들의 밥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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