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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1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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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36.99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7.5만자, 약 2.3만 단어, A4 약 47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88971997628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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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건축은 보이지 않는다 말하고...
도시는 움직인다 말했을까...
예전에 승효상 건축가의 강연(지식향연)에서 '건축'에 대해 이렇게 들었다.
건축설계, 도시설계란.
고유한 땅의 무늬를 찾아서 새로운 무늬를 덧대는 것.
따라서 건축설계하는 사람이나 도시설계하는 사람은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땅은 어떠한 건축이 되고싶다고 어떤 도시가 되고싶다고 항상 소리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만이 건축가,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고유한 땅의 무늬를 찾아서 새로운 무늬를 덧대는 것. 그 새로운 무늬는 물리적인 의미의 무늬가 아닌 그 건축에서 직접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살아간 삶의 향기들을 말하는 것일게다. 그렇게 삶의 때가 묻혀지고 시간을 통해 쌓여진 기억 조각들은 건축을 바꾸고 도시를 바꾼다. 그래서 움직이는 도시라 말했던 걸까. 그래서 옛날의 '마을'이라는 의미가 단순히 집들이 모여있는 장소라는 공간적 의미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렇게도 사람사는 냄새가 났었나 보다.
건축이라는 게 감상이 목적인 조각품이나 조형물이 아닌 이상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는 벗어날 수 없다. 조각품도 감상해주는 제 3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의미나 가치는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모든 만들어진 것들은 사람과 함께든, 무엇과 함께든 함께 존재하며 어우러져 변화되어 일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순간속에서 가치가 생겨난다. 기어이는 집이 모여 마을이 만들어지고 마을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넘어서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그렇게 움직이는 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건축가로서 예수의 삶. 이 상상에 이른 나는 급기야 건축가의 바른 태도를 다시 묵상했다. 건축은 우리의 삶을 이루게 하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수단이니 건축 설계는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건축 설계를 하는 건축가는 인간의 생명과 그 존엄에 대해 스스로 진실하고 엄정해야 하므로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며 의에 주려야 한다. 특히 다른 이들의 삶에 관한 일을 하니 화평케 해야 하고 온유하고 긍휼하며 청결해야 한다. 바른 건축을 하기 위해 권력이나 자본이 펴 놓은 넓은 문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스스로를 깨끗게 하여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아야 하며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일을 거부해야 한다. 모든 사물에 정통하고 박학하고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결단코 불의와 화평하지 않아야 하며, 때로는 그런 행동 때문에 집이나 고향에서도 비난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 사는 일을 알고자 더불어 먹고 마셔야 하지만 결코 그 둘레에 갇혀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수시로 밖으로 추방하여, 광야에 홀로 서서 세상을 직시하는 성찰적 삶을 지켜야 한다. 오로지 진리를 따르며 그 안에서 자유하는 자, 그가 바른 건축가가 된다.
내가 깨달은 바른 건축가의 삶은 예수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바른 건축가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이다. 당연히 내게는 언감생심의 길이며 그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라고 칭하며 사는 일이, 나는 늘 두렵고 아프다.
건축 설계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 따라서 건축 설계를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우선의 공부는 그 건축 속에서 살 이들의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 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저자가 건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삶'이다. 삶 속의 일부다. 그래서 그냥 만들어내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만들어가기 위한 건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더 많이, 깊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평생이 '나' 하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단계적 삶이라고 한다면, 나 외에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동시에 두 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가로서의 삶이 무겁다고, 두렵다고 털어놓는다.
건축가. 대통령. 회사원. 공무원. 사업가. 자영업자. 아르바이트생.
각각의 역할은 다르지만, 직업으로서 소명의식은 같다.
저자가 건축가로서 자신의 건축에 대한 소명을 위의 목수로서의 예수의 삶을 통해 설명하듯,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살아가려면 먼저 이 사회가 그런 사람을 인정해주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돈이 먼저이며 돈앞에 무릎꿇어야 하는 세상에서 이런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기엔 너무 힘들다. 이런 사람들이 인정받으며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회. 그렇게 돈이 생산성을 기반으로 순환하는 사회가 갖춰져야 나의 기술에, JOB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역량을 키워 더 나은 비전을 꿈꾸며 살 수 있다.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조성된 정갈한 마을 한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다. 바로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와 조각 공원이 있고 교회와 학교도 이웃하며, 묘역 주변을 지나며 침묵과 죽음의 풍경을 묵도하는 일은 이 마을에서 가장 일상적 풍경일 수밖에 없다. 짐작하건대 마을 주민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형식이 끝나면 이 묘역에서 안식할 것을 알 터이다. 그러니 그 안식이 명예롭기 위해 그들은 오늘을 아끼며 삶을 가다듬어야 한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보상이다. 그래서인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 마을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여기저기 피어나고 자란 꽃과 나무마저 그 생명이 진실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몬테카라소만 그런 게 아니다.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들 모두가 일상에 죽음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가운데에, 마을 어귀에, 성당의 뒤뜰에 늘 죽음을 두고 삶을 사는 그들이니, 그 삶이 결코 가벼울 수 없다.
Les Lacs de l'Eau d'Heure에서 4월 30일 · 벨기에 Wallonia Boussu-Lez-Walcourt
벨기에 남부의 낯선 도시에 갔을 때 정말 마을 한 복판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묘비 마다 한 문장 씩 써있다. 무슨 말일까.
저자의 책을 읽고나서 인지 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네와 다르진 않은데 삶 속에서 알 수 없는 평화와, 틈틈히 여유가 보인다. 진짜 삶 다워 보인다고 해야하나....
삶이 죽음으로 인해 그 의미가 깊어지고 죽음 또한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는데...
나는 과연 죽음으로 인해 삶이 깊어지고 있는건가.
나의 죽음이 선물이 될 수 있는건가...
내 묘비를 만든다면 나는 무슨 말을 남길까.
그 말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저자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책도 마찬가지지만 건축에 대한 지식이나 견문이 넓혀진다기 보다,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된다. 꼭,, 인문학 책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인문학 전문 서적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이 울리는 까닭은 아마도 지극히 평범한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 건축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문적인 분야에 아주 깊은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해도, 그것으로 번 돈을 무기삼아 휘둘러 권력과 명예를 찾기보다도, 왜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성공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또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저자를 마음 깊이 존경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땅의 무늬(지문, Landscript)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땅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
만들어야 하는 것 보다 만들어낸 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 대해 고민했던 마음.
이러한 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존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갑자기 4대강이 생각난다.
아무리 돈을 무기로, 정치 권력을 무기로 찔러댄다 한들,
건축가들이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물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면,
보이지 않는 건축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왜 만들었는지, 그 목적 조차 알 수 없는 건축물은 삶 조차 파괴하고 있다. 그런 건축물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가며 터 무늬를 덧댈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건축.. 이라 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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