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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09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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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442g | 153*206*20mm |
ISBN13 | 9788954608732 |
ISBN10 | 8954608736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클래스24]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출간 기념 밀라논나 장명숙, 이경신 북토크
2024년 08월 27일 ~ 2024년 09월 23일
2024년 08월 02일 ~ 2024년 11월 30일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4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방에 들어앉아 외부 출입을 자제하며 지낸지 이 주가 지나가고 있다. 특별히 볼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지만 ,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은 그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드는 만성적 우울 때문이었다. 혹자는 가을을 타는 것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이불 속에서 번데기처럼 꿈적도 하기 싫은 날들이 계속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밥먹는 것과 보는 것 뿐이다. 보는 것은 능동성이 필요없는 수동성이 강한 것들 밖에 없다. 틀어두기만 하면 보는 사람의 생각은 아랑곳 없이 짜여진 각본대로 정해진 대사를 읊어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동성과 수동성에 수반되는 시간의 흐름은 정비례한다.
찬바람머리의 햇살은 사람을 밖에서 한 번쯤 걸어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따갑지 않고 간질거릴 것 같은 햇살은 생글거리기만 해서 문득 밖으로 나가 짧은 시간이라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적당히 익은 바다와 많은 시간을 견뎌내어 이제는 한산한 거리가 나를 그대로 받아줄 것만 같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할 때는 떠난자의 기록을 읽어봄으로써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시대의 우울>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돌며 유럽의 화가들을 이야기했던 최영미 씨의 최근작 <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를 읽는다. 길 위에서 길을 잃은 나는 최영미 씨의 말에 동의한다.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 뒤로 밀려드는 긴장감을 알지 못한다.
'예전에는 고생이 고생스럽지 않았는데 어느덧 나도 중년이라 체력이 딸렸다. 가방의 무게를 더느라 하나 둘 짐을 버'린다고 고백을 한 최영미 씨는 여행의 목적을 '나를 재생산하는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유라고 말한다. 최영미 씨에게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탈피이며 도피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일상적인 노동 속에서 살기 위한 개인이 만들어낸 믿음이다
문학과 예술의 언저리에 대한 고백은 '예술을 알면 문학을 좋아하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미추를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이거든 자신이 남다른 생을 살아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드리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래서 위대한 인생이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가는 모두 불행하다는 신화가 성립하지" 에서 여과없이 드러난다.
이번 책은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이다. 이미 출간되었으나 희미해진 기억들을 다시 선정하고 재배열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조밀하고 아련하기만 한데 안타까운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최영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매래의 최영미의 흔적도 찾아지지 않는다. 조각들 과거의 조각들을 꿰어만든 누더기 같은 글들은 개인의 과거를 기억하기엔는 더할나위 없이 좋을지 모르지만 그 누더기는 타인에게 그저 더러워지고 헤진 옷, 더이상은 입지 못할 옷일 뿐이란 걸 알았어야 한다. 현재성을 가지지 못하는 과거는 그저 동물원에서 늙어가는 동물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서른 잔치를 끝냈을 때 그 날카로움과 시대의 우울을 흥얼거리던 최영미의 글은 어디로 갔을까? 도착하지 않은 삶처럼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을 잊은 것일까? 돌아오는 길을 잊을 여행이라면 길을 잃을 필요는 없다. 길을 잊기 위해서 여행을 할 필요도 없다. 길 위에서 잠시 쉬면 그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시(詩)가 어렵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이 되어버렸다. 그저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만을 단편적으로 느낄 뿐 그 숨은 의미와 감정을 내것으로 만들기가 힘들고 시와 친하지 않은 내게도 마음에 담아둔 좋아하는 시가 몇 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최영미님의 <선운사에서>이다. 5년 넘게 쓰고 있는 플래너의 맨 앞장에 그 시가 곱게 적혀있어 생각날 때마다 펼쳐 읽곤 한다.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중에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가 때로는 분석도 필요없이 마음을 와장창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걸 새삼 느끼게 해준 이 시가 인연이 되어 최영미씨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아끼는 시집으로 내 책장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시어들을 쏟아냈던 그녀가 산문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서는 어떤 말들을 내게 건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2부는 미술, 영화, 음악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하지만 굳이 나누어 놓을 필요가 없을만큼 예술에 대한 작가의 감상들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건축물들에 관해, 그림과 화가에 관해, 음식에 관해, 그녀의 심장을 채운 음악에 관해, 심지어 한 나라의 대통령인 오바마에 관해 그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헤매지 않았으면 어느 화사한 봄밤에 친구도 만나지 못했고, 숨은 보물의 맛도 몰랐을 것이다." (p.28)
내가 길을 헤맸던게 언제였더라.
익숙한 일상에선 낯선 길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여행을 떠나도 네비게이션이 달린 차를 이용할때가 많으니 길을 잃을 일도,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일도 줄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서는 길을 헤맬때가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차를 갖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하는 여행에선 길을 잃을 일도 많다.
차들만 다닐뿐 아무도 걷지 않는 산속의 아스팔트 길을 헤매며 걷다가 만난 보길도의 작은 돌로 뒤덮인 아름다운 바닷가, 그곳에서 들었던 차르르 차르르 돌구르는 파도소리, 낯선 기차역에서 내려 정처없이 헤매다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던 기가막히게 맛있던 순두부, 한적한 길에 차를 세워두고 여유자적 걷다가 마주친 숲내음 물씬 풍기던 소나무숲, 이름도 없고 길도 없던 검은 바위들만 가득했던 바닷가에서 만난 이름모를 새들...
돌아보니 나도 길을 잃고 헤매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걷고 길을 물어가며 헤맸던 여행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어쩌면 최영미씨의 말처럼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낯섬이 주는 설레임과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잃고 헤매는 진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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