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조작된 우상인가, 진정한 영웅인가!
자신의 몸을 내던짐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린 석천소대의 두 영웅, 장석천과 현철기.
80년과 81년, 총칼로 정권을 잡은 군부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군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때 이들은 살신성인을 실천해 군의 영웅이 되었다.
그후 22년이 지난 오늘. 사회 곳곳에 개혁의 물결이 일고 군에도 어김 없이 ‘기수를 파괴한 공정한 인사’ 정책을 골자로 하는 개혁 바람이 불어온다. 군은 군의 권위를 내세우고 군인정신을 강조함으로써 보수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장석천과 현철기의 신화를 부각시키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군은 장석천과 현철기에 대한 다큐 영화를 제작하려 하는데, 인터넷 상에서 결성된 시민단체 ‘우깨우깨’가 장석천과 현철기의 신화는 모두 조작된 것이라며 장석천과 현철기를 영웅화하는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둘을 기린 추모탑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별을 달고 퇴직해 이제는 재선 국회의원이 된 당시의 대대장 박민, 장석천과 육사 동기였던 지금의 대대장 김승일, 유명 작가이자 방송 진행자가 되어 다큐 영화의 사회자로 출연하려는 철기의 사촌이자 당시의 석천소대원 지섭, 우깨우깨의 편에 선 지섭의 아들 철과 박민의 딸 지연, 그리고 22년 전의 석천소대원들 황운과 권기호, 정권오……. 장석천과 현철기의 죽음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고, 우상을 깨부수자는 시민단체와 신화를 지키려는 군인들의 갈등 속에 또다시 비극의 장이 시작되는데…….

2권
거듭되는 반전과 음모,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장석천과 현철기의 죽음에 얽힌 진실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우상화 작업에 동참하려는 지섭에 대해 사람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지섭은 말 못 할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혼돈 속에 빠져든다.
청와대로부터 보이지 않게 지원을 받고 있는 우깨우깨의 추모탑 철거 요구는 더욱더 거세지고, 결국 추모탑 앞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진행하던 중 우깨우깨의 회원들과 군인들이 격전을 벌이게 된다. 추모탑에서의 충돌로 최도천은 식물인간이 되고, 군 내부에서까지 추모탑을 철거하고 군을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우깨우깨가 승기를 잡아가는 듯이 보이는데…….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던 중, 철기가 사고의 후유증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살했으며, 당시 군은 철기의 자살을 방관함으로써 그를 의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얼마나 더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는가!
지섭의 아들이자 인터넷 신문 《투머로우 뉴스》의 기자인 철은 이해할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아버지 박지섭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22년 전 두 죽음에 얽힌 비밀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91년 아버지가 모처의 기관원들에게 두 장의 각서를 써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3권
살아남은 자로서 고개 숙여 묻나니, 이제 용서하였는가?
당시의 대대장 박민은 살인자로 몰리고 자신의 사생아에게 국회의원직을 내줘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아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자신은 자신의 인생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언제나 제거하며 살아왔으며, 늘 이기기만 했고, 따라서 우깨우깨든 무엇이든 자신의 출세가도를 막을 수는 없다고 일갈하는 박민.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자작극을 준비하고, 때마침 최도천의 아들 최석기에게 가벼운 테러를 당함으로써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킨다.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기의 이미지는 전국민의 화제가 되고 21세기의 진정한 영웅상으로 추앙받지만, 대중매체를 통한 인기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그를 향한 열기는 금세 식어버린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신보수주의의 물결……. 철기와 박도기 중사, 고인택 일병을 죽인 진짜 살인범이 자신이라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지섭의 앞에 사랑하는 여인 고은별이 인택의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지섭은 드디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순조롭지 않게 흘러가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또다시 힘있는 자들과 권위주의에 패배를 맞을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지섭과 은별은 22년 전 인택이 죽고 철기가 다리를 잃었던 장소인 모곡분교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군의 원칙만을 위해 살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개인의 소중함을 알게 된 당시의 사단장, 권형준 소장을 만나게 된다. 지섭은 형준을 도와 진실을 밝히고 원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
군과 민간인들이 어우러져 제2의 추모탑을 건립하는 날,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고 지섭은 거리낌 없는 맑은 눈으로 철기의 영혼을 마주 대한다.

93년에 완간되어 50만 독자를 전율하게 했던 고원정 장편소설 『빙벽』(전9권)의 완결편이 10년 만에 출간되었다. 『불타는 빙벽』은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해 온 작가 고원정이 『한국인』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사회 소설이다. <br/>모두 세 권으로 출간된 『불타는 빙벽』은 군에서 일어난 두 건의 의문사 사건을 매개로 하여 대한민국 군대의 실상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br/>『빙벽』은 군사 문화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찾기 위해 투쟁한 한 청년 장교의 이야기였다. 매력적인 반항아, 현철기가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하고 단단한 권위주의에 온몸을 던져 투쟁하는 모습을 담은 이 소설은 90년대 초반 독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격변의 시기인 80년대, 금기의 공간인 군을 배경으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물은 작품이 『빙벽』이었다면, 『불타는 빙벽』은 군대 내의 이야기에만 국한하지 않고 2003년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탐욕과 위선, 진보와 보수의 갈등, 역사 계승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br/>『불타는 빙벽』은 군과 권력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신화를 부수려던 현철기가 죽고 22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두 개의 영웅 신화를 놓고 조우하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당시의 대대장 박민과 현철기의 사촌이자 당시 석천소대원이었던 박지섭, 청와대에 입성한 임천호와 퇴락한 운동권 세력 박건호와 최정우, 2세대인 박민의 딸 박지연과 지섭의 아들 박철 등이 신화를 지킬 것이냐, 우상을 파괴할 것이냐를 놓고 갈등을 벌인다. 물론 이 소설은 옛 시절과 예전의 사건들을 끄집어내 추억하고, 곱씹는 후일담 소설에 그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반전과 끝없이 밝혀지는 새로운 음모, 다양한 갈등으로 인하여 이 소설은 『빙벽』과 전혀 상관 없이 따로 떼내어 읽어도 손색이 없다.<br/>작가 고원정은 주로 우리의 역사와 정치, 사회 문제를 소재로 한 소설 쓰기에 주력해 왔다. 그는 1985년, 군사 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빗대 아프리카 어느 왕국에 있는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그림으로써 독재 정권 아래 신음하는 민중들의 아픔과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독재자 개인의 고통을 이야기한 『거인의 잠』으로 등단(《중앙일보》 신춘문예)했다. 정치인들의 밀실 야합과 음모를 폭로하며 1992년 대선 정국을 예견한 『최후의 계엄령』, 전체주의에 대항한 어느 청년의 투쟁과 죽음을 기록한 『빙벽』, 조선이 일본을 침략한다는 실제와는 정반대되는 가상의 역사를 그린 『횃불』, 21세기 다국적 시대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물은 『한국인』 등 그후 내놓은 소설들도 모두 우리의 정치와 사회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날카롭고 아프게 우리의 현실을 폭로한 후, 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치열하게 탐색하는 그의 작품들은 진중한 작가의식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br/>『불타는 빙벽』 또한 예외 없이 현실을 고발하고, 비리와 음모, 잘못된 관행들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그러나 이전의 작품들에서 아(我)와 적(敵)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고발의 내용도 단선적이었다면, 『불타는 빙벽』에서는 좀더 폭넓어지고 깊어진 사회 인식이 엿보인다.<br/>군대 내부의 실상과 문제점뿐 아니라 신구 문제와 보수와 진보의 갈등, 동성애 문제, 언론 비리, 공무원 인사 문제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규선 게이트나 김훈 중위 사건, 성폭력 문제로 야기되고 있는 군의 억압 관계 등 사회·문화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들을 차용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현실을 인식하는 작가의 주제의식 또한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br/>『불타는 빙벽』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우리 삶의 문제들을 다룬 소설을 목말라했던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하고 여성들은 누구나 아들이나 애인, 동생을 그곳에 보내야 하면서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성역이자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군대의 모습을 신랄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 어떤 소설보다 현실적이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군이라는 상황 속에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