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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1년 10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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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105분 | 99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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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에서 이 영화 항목을 찾아 보면 러디어드 키플링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크레딧되지 않았다고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실제로 본 이들은 기억하겠지만 맨처음 시작할 때 서서히 넘겨지는 책 페이지 안에 오프닝 크레딧이 표시되어 가는 꼴인데, 그 '책'의 앞표지에 '러디야드 키플링의 정글 북'이란 제목이 박혀 있다. 따라서 만약 키플링을 원작자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라 쳐도(원, 말도 안됨), 집필 명의가 아닌 제목에다 그 이름을 기렸다고 봐도 되겠다(영화 제작 연도는 키플링 사망 6년 후).
'책'이 세 페이지 정도 넘어가면(그 직전 '페이지'들은 출연 배우 소개에 할애됨) 로렌스 스탈링스가 '각색자'로 표시된다. 메수아는 원작에서 오래 전 잃은 아들 나트후와 이 모글리를 동일시하지만, 영화에서는 분명하게 '내 아들이 아님'을 선언하고, 다만 잘생긴 아이라며 입양해서 돌볼 뿐이다. 원작에서 그녀의 남편은 살아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문제의 그날 남편이 사고로 죽고, 이 죽은 남편이 생전에 누린 마을 일인자의 자리를 사냥꾼 벌데오가 탐낸다는 식으로 끌고 간다. 영화에서 벌데오는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극의 균형 한 축을 잡고 맹수 시어칸보다 더 심각하게 모글리의 안위를 위협하는, 비록 비열한 인격이긴 하나 비중이 매우 큰 빌런으로 격상되었다.
왕의 보물을 지키는 코브라가 '(모글리에게 위력으로 제압당하고, 더불어, 너무 늙어서 이빨에 독이 다 빠진 걸 들킨 사실이)수치스러워서 살 수가 없으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자, 모글리가 가당찮다는 듯 '넌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구나'하고 핀잔을 준다. 여기서 특히 모글리의 대답 처리는 한국어 자막에서 꽤나 의역을 한 솜씨이며, 다만 영화의 원 대사는 'There has been too much talk of killing.'으로 키플링의 텍스트와 동일하다. 생명의 활력으로 눈빛, 동작, 피부의 광택 등이 주변을 압도하는 듯한 모글리의 입장에서, 어떤 사색이나 정신적 성숙의 산물이 아니라(소년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나오는 말 같았다고나 할까.
모글리는 시어칸에게 미움 받고, 동족(?)과 친구들을 해친 그에게 복수하려 드나(그 전에, 밀림의 일인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라이벌 의식이 있음. 각본은 이런 자부심과 지배욕을 모든 ape들의 통성으로 보는 듯), 자신에게는 種의 한계로 그에게 필적할 만한 이빨이 없음을 언제나 분하게 여긴다. 인간의 마을로 떠밀려와 몇 달 동안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언어를 습득하게 되고(천재?), 문명의 구조와 이점(그리고 터무니없는 단점까지)을 이해한 모글리가 가장 반겨 맞이한 건, 시어칸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 즉 신체의 약점을 보완할 도구인 '칼'이었다. 공정가격이 동전 두 닢이지만 모글리는 사냥꾼 벌데오에게 한 닢을 더 주고 칼을 구매하는데 이때 '둘이 셋보다 더 적다'는 걸 자신이 알고 있음도 분명히 전한다. 자신의 지성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지만, 정작 본인의 지능이 현저히 열악한 벌데오가 그런 메시지를 알아 먹을 리가.
원작에서도 사냥꾼 벌데오는 자신의 고집과 환상, 편견, 잘못된 지식을 막무가내로 우기고 드는 타입이다. 여기서는 보다 교활해지긴 했으나, 정교한 계획 없이 일을 벌이다 더 큰 재앙을 초래하는 등 기본적으로 감정적 격동에 의해 추동되는 인간형이어서 모글리의 적수가 못 되고, 대신 모글리는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살육을 모두 지켜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튼 생명을 해칠 의도가 없기 때문에(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이 영화에서의 벌데오는 악의, 비열함,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열등함 등 모든 면에서 시어칸보다 백 배는 더 죽어 마땅한 존재인데 왜 모글리가 끝까지 관용을 베푸는 지 알 수 없음), 이 자를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 마을이 벌데오의 어리석음 때문에(풍향을 전혀 예측 못 함. 그만큼이나 현지에 오래 살았으면서) 초토화되는 비극도 막을 수 있었으나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어차피 사악한 마을 주민 전체가 일종의 응보를 받아야 했다고 먼저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자기 손으로 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땡큐).
벌데오는 어차피 '로스트 시티'를 찾기 위해, 이발사 등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가 나중에 하는 품을 보면 마을 전체를 협박과 선동 등을 통해 정치적으로 장악한 셈인데, 힘도 없고 어리석고 비겁한 이 두 사람을 입막음할 이유가 애초에 없었음에도 구태여 팀을 짜서 보물을 노린 것부터가 패착이었다(정당한 자기 재산이므로 이발사에게 완력을 써서 도로 금화를 뺏든지, 아니면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무시하면 될 걸 뭐하러 비밀을 공유하고 후환을 키웠는지).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키플링의 원작에 없는 스탈링스의 창의(다만 진부한)이며, 관객들에게 희화적 반응을 유도하려고 구식 트렌드에 맞춰 양념처럼 끼워 넣은 장단에 불과하다.
(스포일러)
오히려 신선하게 보는 이들도 있던데, (늙은)벌데오의 동선이 일종의 액자 구실을 하며, 대화재에서 살아남아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 준다고 둘러친 건 물론 구식이긴 하다. 그러나 가장 타락한 캐릭터의 반성과 회오가 분명히 주제의식으로 다가오게 했다는 점 하나만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지. 이것 관련해서 한 마디 더 하자면, '당신 딸은? 모글리는 또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묻는 부인의 질문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시라'고 답하는 장면은, 이 당시만 해도 속편이 분명 염두에 두어졌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작년에도 한 편, 그리고 내년에도 실사판이 또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이 고전에 대한 경의를 바칠 겸해서 누가 이 사연에 그대로 이어지는 설정으로 새 이야기를 좀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원작에는 없는 설정으로 바로 저 벌데오의 딸인 마할라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모글리와 러브라인을 키울 만한 매력적인 포지션이긴 하나, 너무 악질로 발전하는 메인 빌런 벌데오의 딸이라는 데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벌데오를 이렇게 악질로 키워 나가면 나중에 저 마할라와는 어떻게 모글리의 관계와 태도를 정리시킬지 걱정도 되었는데, 일단 1) 마할라는 처음부터 모글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2) 그 부족한 확신만큼이나 일반적 정의감도 부족하며 3) 그리 정의롭지 못한 폭군(단, 왠지 딸한테는 영화에서 안 보이는 장면[ㅋ 그런 게 있을 수 없지만]에서 엄청 잘해줄 것 같은 아빠인 듯도 보임)인 부친에게 너무도 맹종하는 태도란 점에서, 모글리처럼 전 공동체를 대항하여 함께 싸울 만한 이의 곁에 설 히로인으로서는 크게 부족하다. 이런 진행 속에서 누구나 기대할 법한 원형이라면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 같은 성격이겠건만 말이다. (단, 하는 짓으로 봐서 대략 나이 서른 넘기면 메데이아처럼 못된 성깔만은 어지간히 부려댈 듯ㅋ)
야생동물은 비단뱀 카아, 코브라 트후 등 거대 파충류(적어도 일부 씬은 고무인형임. 그래서 뻣뻣함)만 빼고는 대개 실물을 직접 담았는데, 지금 봐도 별반 어색하다는 느낌은 대개 들지 않겠으며 CG 아닌 실사 화면만이 줄 수 있는 생동감이 빼어나다. 스턴트 없이 본인이 다 직접 펼치는 액션 같은데 대단하다는 느낌이 안 들 수 없을 만큼 주연 배우 사부의 활약이 돋보였다. 나머지 배우들은 다 미국 태생의 백인들이지만 레이스 리프팅이 당연시되던 예전이기도 하고, 그 전에 인도인들 중 아리아계 후손은 코카서스 기원이기도 한지라 그닥 어색해 보이는 구석은 없다. 한국 등 동아시아인들이 보면 반가울 만한 풍경이, 부락에 자리한 거대한 臥佛인데, 사실 인도 본토에 불교 신앙이 그닥 보편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인도 중앙부에 위치(키플링 원작대로라면)한, 이처럼이나 배타적이고 고립된 마을(하긴, 천민 부락이면 그럴 수도 있음)이 하필 불교를 숭앙한다는 설정은 그닥 자연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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