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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0년 08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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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4쪽 | 632g | 140*210*30mm |
ISBN13 | 9788971848432 |
ISBN10 | 897184843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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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12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 책이 참으로 읽기 어려웠던 책이라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비속어의 연속이다. 책을 읽을 때 비속어가 나오는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주 보수적인 성향의 독자로서 이 점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어려웠던 또 하나의 이유는 분명 원어로 읽었다면 유쾌하게 웃었을 많은 말장난들이 번역과 더불어 그 유머와 비꼼과 재치를 상실한 탓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원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Red-Rose Chain', 붉은 장미의 사슬, 그 문장을 통해 나는 이 책이 문학과 관련될 것이라고 짐작했고 그 짐작은 맞았다. 세잌스피어와 그 동시대 작가들, 혹은 다른 작가들의 문구가 난무하는 이 책은 어찌 보면 사람을 혼돈속으로 몰고 간다.
그 혼돈 속에서 중심축이 되기도 하고 혼돈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것은 주인공 제러미다. 마치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은 발 밑이 꺼질 듯한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는 그는 몽환 속에 사로잡혀있다. 그것은 오디세우스와도 같으나 몽환이 현실과 얽히면서 주체와 객체가 모두 본인에 속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마치 조이스의 소설을 읽는 듯한 시간의 감각과 진실과 거짓을 모호하게 버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디세우스가 하나의 세상을 여행하듯, 블룸이 더블린을 배회하듯 제러미는 페이지에 얽혀 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국에서 캐나다를 관통하는 그 여행에서 제러미는 밀레나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연적에 대해 분노와 광기를 품는다. 그리고 자신 속으로 빠져든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모두 맹목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 핑계를 대어 페이지에 대입시키는 것, 그래서 정열적인 붉은 장미의 사슬은 어쩌면 하나의 페이지가 연결한 모든 것, 아니 연결한다고 믿은 제러미가 은연중에 매여있기를 바란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마력이 있는 그 장미의 사슬은 제러미를 편집증적으로 몰고간다. 끊고자 마음먹는다면 강철도 아닌데 끊지 못할 것은 없건만 그저 순종적으로 오히려 자신을 더 얽어매는 것이 제러미의 의지다. 아마 그래서 제러미의 허상과 망상과 현실 속에 좀 더 잘 몰입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제러미와 대척되는 것은 밀레나다. 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사랑만큼 대조를 이루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둘은 너무도 다르면서 같다. 감추고 있는 것들, 상처입은 자와 상처를 만드는 자, 남자와 여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현실을 보는 자와 현실을 기만하는 자, 내가 잘못 파악한 것일지도 모르나 밀레나와 제러미는 그와 같다. 더불어 사랑에 빠져버린 어리숙하고 하나의 목적에만 매달리는 제러미라면 더 할 나위 없이 밀레나와 반대편에 선다. 그러나 그 둘은 현실에서 디디고 설 공간이 적다는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둘의 사랑은 위태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그 무엇으로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상 속에 현실이 있고, 기만 속에 진실이 있는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제러미는 현실 속으로 떠오르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룬 사랑은 어디까지 견고할 것이며, 결코 특별한 것은 없었으되 모든 것이 있었던, 말로 표현 못할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전개될 지 보여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늠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사고 속에 그들에게 남은 것과 남겨진 것, 그들이 공유한 것과 공유할 수 없는 것, 그들이 회피한 것과 직시해야하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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