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난 아르헤리치, 크레머, 바쉬메트, 마이스키
에발트 마클,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
1861년 11월 16일 저녁, 요하네스 브람스의 출생지인 함부르그에서 한 명의 여인과 세 명의 신사가 자리를 함께 했다.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G단조를 대중 앞에서 초연하기 위한 이 자리에서 피아노를 담당했던 그 여인이 바로 클라라 슈만이었다. 그녀와 함께 연주했던 이들은 뵈이, 브레터, 리 였다.
2002년 2월 23일 저녁, 141년 전 함부르그를 환히 비추었던 별자리와 놀랍게도 닮은 4개의 '별'이 베를린의 텔덱스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기돈 크레머, 유리 바쉬메트와 미샤 마이스키가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G단조를 녹음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 만남은 음악과 연주자 조직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도전적인 기획이었다. 피아노 사중주 연주는 실제로 기성 현악사중주단의 현악주자 3명과 피아니스트를 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 4명을 모았다는 것 만으로 음악적 완성을 보증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기획은 음악적 측면의 도전이 된다. 빡빡한 일정으로 전세계 무대를 순회하는 이 4명의 일정 조정은 연주자 조직이란 점에서 커다란 도전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도이치 그라모폰 A&R 담당 수석부사장인 마르틴 티손 엥스트룀에 의해 한 번 현실이 된 적이 있다. 2001년 베르비에 페스티벌(엥스트룀은 이 축제의 총 기획자이기도 하다)에 이들을 초청해서 따로따로 보기도 힘든 4명의 스타가 한 자리에서 연주했던 것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그녀의 삼총사 - 이들 4인의 협연은 7월 29일 메드랑 궁전에서 열렸다 - 가 연주했던 레퍼토리는 바로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이었으며 그 팽팽한 긴장감은 듣는 이 모두에게 충격적으로 전달되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연주는 반드시 녹음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해서, 녹음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 2002년 2월, 베를린이었다.
첫 녹음 세션은 2월 23일, 토요일에 열렸다 - 이 세션은 음악적, 기술적 튜닝을 위한 시간에 모두 할애되었다. 늦은 저녁, 녹음준비가 잘 되었다는 것에 모두가 동감했다. 1악장은 일요일, 6시간 만에 마쳤다. 월요일은 2악장 차례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오후 4시에 시작되었다. 오전 시간에 현악 주자들은 호텔 방에 머무르며 연습을 했고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하르덴베르그 거리에 있는 슈타인웨이 피아노 하우스에서 워밍업을 했다. 아티스트, 레코딩 팀 사람들과 함께 텔덱스 스튜디오에 매일 같이 나와 있던 이는 아르헤리치의 피아노를 수년간 '조련'하였던 피아노 기술자 세르헤 뿔랑이다. 녹음기간 내내 출근했던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피아니스트의 딸, 스테파니로 스튜디오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며 비디오 카메라로 독특한 앵글의 '기록 영화'를 찍어 주었다.
화요일에는 겨울폭풍이 도시를 덮치는 바람에 계획된 시간에 호텔을 떠날 수 없었고 당초 야외에서 진행하려 했던 앨범 사진 촬영 작업도 실내에서 하게 되었다. 3악장, 안단테 콘 모토는 모든 이들을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연주한 후, 모든 연주자들이 주조정실에 들어 가 방금 마친 녹음을 점검하려고 할 때, 기돈 크레머는 자리에서 일어 나지 않았다. "기돈, 와서 들어 봐!", 아르헤리치가 부르자 크레머는 "여기 그냥 있을래,"라고 답했다. "왜?" "안 좋으니까."
긴장감이 흐를 때 마다 - 더군다나 세계 정상급의 연주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이는 미샤 마이스키다. 이 날의 주제는 '폴란드에 간 레닌'이다. 여러 차례의 녹음을 거쳐 다섯 시간이 흐른 뒤에야 3악장 녹음은 '통 속으로' 들어 갔다. 수요일은 4악장 녹음에 전부가 할애되었다. 4악장을 어느 정도의 '집시풍'으로 연주하느냐 하는 수위를 놓고 의견이 오고 가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다시 연주해 보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멋진 녹음이 마무리되고 다시 하나로 뭉친 4인은 호텔로 향하는 대신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수많은 녹음과 공연 후 즐겨 찾았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기로 한다. 성공적인 브람스 사중주 녹음 외에도 함께 모여 축하할 일이 있었으니 이 날은 기돈 크레머의 55회 생일이었다.
다음 날, 마르타 아르헤리치, 기돈 크레머, 미샤 마이스키 이상 3인은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3중주(DG 459 326-2)와 아울러 이 앨범에 실린 슈만의 환상소곡집 작품번호 88을 녹음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브람스 사중주가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놀라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처럼 이 작품 또한 2001년, 독일 비스바덴과 오스트리아 록켄하우스에서 세 거장들의 연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녹음 작업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기돈 크레머/크레머라타 발티카 앨범의 그래미상 수상을 축하할 시간도 넉넉하게 가질 수 있었다. 감히 얘기하지만, 다음 그래미상 실내악 부문에 이 앨범이 아주 강력한 후보작으로 등장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두 명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클라라 슈만은 단지 "뮤즈"의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뛰어난 작곡가였으며 이런 점이 슈만과 브람스 작품에 대한 비판적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시켰다. 또한 그녀는 낭만주의 시대 최일선에 위치한 피아니스트중 하나였다 - 여기에 실린 삼중주곡은 그녀의 남편인 로베르트가 그녀를 위해 쓴 것이며, 브람스 사중주의 일정 지분도 그녀가 소유한다. 이 곡의 초연에 건반을 연주했던 이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이 곡을 우리 시대에 다시 연주함에 있어 가장 역동적인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섭외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두 배로 적절한 것이다.
? 로베르트 슈만의 특색 있는 네 개의 작품은 하나의 작은 모음곡을 형성한다. 그 첫 번째 에세이는 소위 작곡가의 "실내악의 해", 1842년에 피아노 삼중주 형식으로 씌어졌다가 개정을 거쳐 8년 뒤에 출판되었다. 높은 작품 번호가 이를 설명한다. 슈만은 피아노와 그의 전설적인 오중주단을 위해 확장된 형식으로 다음 에세이를 작성한다. 이후에는 다시 삼중주 형식에 최종적으로 안착하는 도정(道程)에 피아노 사중주 형식을 취한 작품을 발표한다. 거장의 작업대에 놓인 이 4개의 잘 다듬어진 실내악 곡들 - 이들은 똑 같이 판타지슈튀케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곡들이지만 이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제목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슈만은 연주자들에게 제목처럼 환상을 꾸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상상력의 활용은 이 녹음에 참여한 세 명의 뛰어난 연주가들에 의해 충분히 발휘되었다.
? 요하네스 브람스가 쓴 세 개의 피아노 사중주곡은 모두 1850년대 후반에 쓰여졌지만 서로 분명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 가장 나중에 완성된 C단조 작품은 안정되고 균형 잡힌 A장조와 달리 격정적이며 간결하다. 내용면에서 가장 충실한 G단조는 많은 이들의 애청 감상곡이다. 브람스는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비엔나 청중 앞에 첫 선을 보이는 1862년 11월 16일의 연주회 레퍼토리로 이 G단조를 선택했다. 연주회 준비를 위한 첫 번째 독회에서 그는 성공을 예감하는 찬사를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헬메스베르거가 독회가 끝나자 브람스를 껴안으며 "당신이야말로 베토벤의 후계자입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연주회를 통해 그와 헬메스베르거 사중주단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여러 거장 연주가들을 매혹시킨 걸작이다. 피아니스트만 살펴 보자면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전의 거장 계보에서 루돌프 제르킨,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에밀 길렐스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 작품은 실내악곡이다 -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남긴 교향곡 편곡은 (다소 애매한 취향의) 그의 실수 중 하나로 꼽힌다. 녹음에 참여한 네 명의 거장들은 종종 연주기술의 극한을 오르내리면서 그들만의 독창적인 대화를 들려준다.
? 세 개의 주선율과 이를 매개하는 작은 주제들이 서로 얽혀있는 1악장은 우아한 느낌을 주면서도 폭 넓은 표현력을 자랑한다 - 극히 절제된 어법을 구사하는 평소의 브람스에 비해 이 1악장은 모든 것이 풍성한 느낌이다. 가장 독특한 악장은 "간주곡"이라 이름 지어진 두 번째 악장이다. 독특한 9/8박자 리듬과 우울한 화성이 이 악장의 고아한 전반적 느낌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2악장은 대조적인 트리오와 연결되어 마무리된다. 3악장의 주제부(찬송가를 닮아 브람스의 어떤 다른 작품과도 유사하지 않은)에서 현악 주자들은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호흡해야 한다. 피아노가 주역을 담당하는 행진곡 풍의 중간부가 흐르고 나서 찬송가 스타일의 주제가 재현된다. 헝가리 풍의 피날레 - 브람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친구인 레메니와 요아킴으로부터 이 마갸르 스타일을 완전하게 전수 받았다 - 는 이른바 "집시 론도"로서 일정하고 규칙적인 보폭으로 시작하지만 곧 이어 조급한 발걸음으로 모든 악기가 내달리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능력을 시험하는 고난도(물론 아르헤리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의 곡이다. 제1주제가 재현되었다가 듬직하면서도 솔직한 표현력의 두 번째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스르르 가라앉는 현악부에 의한 세 번째 에피소드가 뒤를 따른다. 이와 같은 장치는 비엔나 청중을 사로잡았을 것임에 틀림 없다. 첫 두개의 에피소드가 다시 들리고 몇 개의 주제들이 반복되는 중간에는 호기심 많은 카덴짜가 삽입되었다. 다시 제1주제가 등장하고 맹렬하게 곡의 대단원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근엄한 브람스의 겉모습 속에는 이토록 강한 쇼맨십이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