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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1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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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이 듬뿍 녹아들어간 봄의 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신다. (283p)
애니메이션 <초속 5cm>, <언어의 정원> 감독 신카이 마코토, 그의 최신작 <너의 이름은.>이 메가 히트를 치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소설 <너의 이름은.>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수개월 째 놓치지 않고 있다.
소설을 읽어 보면 문장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풍경화하고 배경음악을 덧씌운다.
돌층계를 몇 개 올라가 돌아보니 저녁놀로 붉게 물든 호수를 배경으로 둘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풍경에 서정적인 피아노곡을 슬며시 덧씌워본다. 그래그래, 역시 잘 어울려. 나는 지금부터 불행한 밤이 되겠지만 너희만큼은 젊음을 마음껏 누리기를...... (39-40p)
'작가 후기'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음악이 소설과 영화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영화 음악을 담당해준 RADWIMPS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소설에는 배경 음악은 흐르지 않지만, 이 소설은 RADWIMPS의 가사 세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는 음악의 역할이 매우 큰데, 그것이 영화와 소설에서 각각 어떻게 연출되는지 확인해주셨으면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도 꼭 봐야겠네요. 꼭 보세요!). (288p)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평범한 일상 속 어느 순간에 배경음악을 깔고 감각적인 문장을 써 보고자 마음먹는다. 풍경을 잡고 그 풍경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깔아 본다. 그런 포착과 디자인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를테면 영하 12도의 새벽, 옷을 단단히 입고 달리기를 할 때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무엇.. 햇살이 따뜻한 주말 오전 거리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으로는 무엇.. 그렇게 덧씌워본다. 평범한 삶이지만 소중하다는 생각,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 끝자락에서 아침 해가
떠오른다
호수의 마을이 태양빛에
서서히 씻긴다
아침의 새소리
낮의 정적
저녁의 벌레 소리
밤하늘의 반짝임
(90p)
마을의 공간감이 잘 느껴진다. 마을을 원경에서 바라보며 아침, 낮, 저녁의 풍경을 그릴 수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부터 밤하늘이 별로 반짝이는 때로 독자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남자 주인공 타키가 사는 도쿄의 풍경도 시처럼 그려진다.
아스팔트 냄새가 풍기는 비 내리는 날
양떼구름이 빛나는 쾌청한 날
황사가 섞인 강풍이 부는 날
매일 아침 붐비는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간다.
(123p)
아름다운 스토리
신카이 마코토의 문장을 읽는 즐거움도 크지만 <너의 이름은.>이라는 스토리가 주는 울림도 크다. <너의 이름은.> 스토리의 깊이는 여자 주인공 미츠하의 할머니의 지혜로운 말들을 통해 확보된다. 미츠하의 할머니는 ‘세상 만물의 연결되어 있음’이라는 진리를 ‘무스비(むすび[結び])’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무스부 : むすぶ[結ぶ] : 잇다, 매다:묶다, 맺다)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같은 말을 쓰지. 그 말은 신을 부르는 말이자 신의 힘이란다. 우리가 만드는 실매듭도 신의 솜씨,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지.“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딘가에서 계곡이 흐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모아서 모양을 만든 후에 꼬아서 휘감고, 때로는 되돌리고, 끊기고, 또 이어지고, 그것이 실매듭. 그것이 시간. 그것이 ‘무스비’.”
나는 투명한 물의 흐름을 떠올렸다. 돌에 부딪혀 갈라지고 다른 물줄기와 섞이고 합류하지만 전체를 보면 하나로 이어진 것. 할머니의 말씀은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무척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스비’. 잠에서 깨더라도 이 말은 기억해둬야지. 턱에 맺힌 땀이 큰 소리를 내며 지면에 뚝뚝 떨어져 마른 산에 스몄다. (99p)
이 세상을 전체로서 포괄하고 있는 힘이 신이다. 그 신의 힘이 작용하여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에 대해 할머니는 ‘무스비’라고 말한다. ‘무스비’, ‘무스비’, ‘무스비’... 실매듭을 만드는 동안에도,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도,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때에도 기도처럼 되뇌는 말이다. 그 되뇜이 신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미츠하의 할머니는 이 '무스비'를 계속하는 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 (...) 우리가 꼬는 실매듭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춤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됐지. 남은 건 형식뿐이고. 하지만 의미가 지워졌다고 형식까지 없어지게 둬서는 안 돼.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나는 법이니까.“
할머니의 말에는 옛 노래 같은 독특한 박자가 살아 있다. 나는 실매듭을 꼬면서 같은 말을 입속에서 작게 되뇐다.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난다. (...) (42p)
신이라는 '의미'는 '형식'에 새겨져 있다. 지금은 그 의미를 모른다 하더라도 언젠가 형식으로부터 의미가 되살아나게 되어있다. 그것을 믿고 계속 해 나가는 것이다. 실매듭을 꼬고 무녀 춤을 추고 쿠치사케를 바치는 제사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미츠하 할머니가 실매듭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며 '무스비'를 계속해 가는 노력과 여자 주인공 미츠하와 남자 주인공 타키가 거듭 '너의 이름은.'을 되내는 일이 서로 다르지 않다. 의미는 형식에 새겨져 있다.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 되살아나는 법'이다. 신과 만날 수 있고 당신과 만날 수 있다.
“소중한 사람,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
슬픔도, 사랑스러움도 모두 사라져간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모래성을 허물 듯이 감정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누구지, 누구야. 누구야......?”
모래성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사라지지 않는 덩어리가 하나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아쉬움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순간에 나는 깨닫는다. 앞으로 내게 남은 것은 이 감정뿐이라는 것을. 누군가 억지로 맡긴 짐처럼 나는 아쉬움만을 떠안는다는 것을.
- 괜찮겠지. 문득 나는 강하게, 아주 강하게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한 장소라면 나는 이 아쉬움만 가지고도 혼신의 힘을 쏟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감정만으로 계속 발버둥 칠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다 해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어도, 나는 발버둥 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이해해 줄 것 같으냐고 신에게 시비 거는 기분으로. 나는 한때 강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 그 자체도 나는 곧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감정 하나만을 디딤돌로 삼아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너의 이름은?”
그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밤이 내려앉은 산을 울렸다.
공허하게 반복적으로 질문하더니 조금씩 잦아든다.
이윽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233p)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작가 후기'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신이 스토리를 들고 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야기 한다.
소중한 사람이나 장소를 잃고 말았지만 발버둥 치자고 결심한 사람. 아직 만나지 못한 무엇인가에, 언젠가 반드시 만날 것이라 믿으며 계속 손을 뻗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마음은 영화의 화려함과는 다른 절실함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느꼈기에 나는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선택해주셔서, 그리고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16년 3월 신카이 마코토 (289p)
<너의 이름은.>은 힘듦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다. 소설과 영화와 음악으로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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