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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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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316g | 140*210*12mm |
ISBN13 | 9788954613965 |
ISBN10 | 8954613969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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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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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10월의 굿즈 : POINT OF VIEW 북커버/스탬프/유리 티포트/페이퍼 아크릴 문진/북 백/저널 노트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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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피하고 싶지만 매력적인 잔혹한 여행
평소 좋아하는 소설가의 추천이 있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길 위를 떠도는 주인공을 대하며 나도 이 겨울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그냥 홀로 원 없이 걷고 싶었다. 감기 따위 걸리는 것쯤이야, 이겨낼 자신과 세상을 향한 면역력을 검증받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움직임의 발로를 추적하는 일이 녹록치 않았다. 서른 살 남성 희곡작가의 혼잣말과 방황에 빠져들어 몰입하는 일이 내겐 쉽지 않았다. 유디트와 헤어진 이유, 클레어를 다시 만나는 이유, 화가 부부와 연극평론가가 등장하는 이유, 동생 그레고어를 찾아가 만나지 않고 돌아서는 이유, 존 포드를 만나 유디트와 극적으로 화해하는 이유 등을 내 말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기승전결보다는 개별 인물들을 부각시켜 다룬 것 같다. 모더니즘풍의 내적 독백 같은 문체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유들, 동시에 소설 <위대한 개츠비>나 <녹색의 하인리히>, 공연 <돈 카를로스>, 존 포드 감독의 영화들을 거론하여 더 난해했다. 조심스럽고 섬세한 남자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가장 낯설고 어려웠다.
그래서 한 주 후 다시 읽어야 했다. 처음 읽었을 때 의문점으로 남아 있던 부분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마침표나 감탄문으로 바뀌어갔다. 문득 살면서 마주쳐온 작고 큰 만남과 어설픈 이별들이 떠올랐다. 살면서 부득이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이별들 앞에 미성숙하게 굴었던 모습들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어떤 이별을 위해 주인공처럼 시공간의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지만 나의 허울을 벗고 빠져나와 (도플갱어가 되어) 나를 지긋이 오래 바라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 ‘남에게 상처주는 것도 내가 상처입는 것도 싫다’고 말하면서 그간 어긋난 관계에 대해 없었던 일로 최면을 걸며 지내왔던 것 같다. 남녀관계를 떠나 인생의 전환점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죽일 것 죽이고 다시 사는 생일) 의식을 치르지 못한 채 얼렁뚱땅 지나쳐온 듯하다. 삶이라는 책에서 분명 접어둔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 제대로 펴주지 못하고 바삐 넘겨온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낯선 거리로 또는 익숙한 거리로의 시간여행을 했다. 이 책은 매서운 추위와 겨울공기 속으로 나를 내몰았다. 서울의 익숙한 방안이 아닌 곳에서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밤기차를 타고 바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 다시 길 위에서, 시골길을 걸으며
주인공은 유디트와의 황홀했던 첫 만남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를 관통했던 큐피트의 화살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 유디트라는 이름도 신화 속 홀로페르네스와의 관계처럼 치명적인 매력으로 그를 유혹하지만 그를 죽일 듯이 압박한다(감전 소포, 돈 털이, 권총). 이런 점에서 화가 부부나 영화감독 부부는 권태를 다스리는 중년과 말년 부부상이다[지금 너희는 너희가 살아온 인생 전체를 노래할 찬가를 가지고 있는 셈이야... 너희가 경험했던 모든 것이 점차 하나의 경험으로 수렴되어 가고 있으니까(145)].
주인공이 그르친 관계에 대해 품는 원망과 증오, 자기정당화가 소설 초반에 두드러지다가 클레어에게 유디트와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그의 우울함과 히스테리도 줄고 비로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예전에는 단지 고통스러운 기억만 떠올렸지만 이제야 활력이 넘치는 추억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80)]. 아내와의 일그러진 사이에서 빚어진 출혈을 다른 관계들을 통해 수혈받으면서 남성다움과 용기를 되찾는다.
주인공은 결속과 자유에 대해 곤혹스러울 만큼 고민한다. 원래 있던 익숙한 시공간에서 과거의 나를 지우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한때 살았던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에서 지낸다. “내게는 책에서 읽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그 대상이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내게 변화를 독려했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충동적 욕구가 불현듯 솟구쳐 올랐다... 적어도 당분간은 옛날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낯선 이곳에서 나는 아주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20)” 여행 중에, 특히 단독 여행자인 경우 걷기와 사색, 그리고 독서와 연극 감상 등의 문화생활은 빠질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이 주인공은 유디트를 두려워하고 살의를 느끼며 저주하면서도 그녀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고 열어둔다. 그녀가 두고 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회수하고, 호텔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거처를 알려주고, 그녀일 것으로 사료되는 사진엽서와 소포를 받고 바닷가로 찾아간다. 여러 사람들과 장소 이동 속에 그는 자신이 지난 결혼생활에서 느긋함과 관용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을 향해 이전에는 없던 연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어긋났지만 유디트와의 지나간 시절이 그의 황금시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자연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것처럼 유디트와의 관계도 그랬던 것이다. “언제나 내 신경을 건드려놓으면서 불만을 갖게 했던 자연조차도 나는 점차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어. (73)”라는 진술은 유디트를 향한 심적 변화로 이어진다. “이번만큼은 갑자기 무언가와 관계를 맺고 싶은 갈증 같은 것을 느꼈다. 철저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절실해졌다... 왜 유디트에게는 지금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171)”
주인공은 존 포드 감독의 ‘개별적인’ 회상을 들으며 <녹색의 하인리히> 구절 같은 변화를 겪는다[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옆에서 듣기만 해도 나의 그러한 암울했던 기억에서 해방되어 지나간 세월을 객관적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상태로 마음이 가다듬어집니다(146)]. 정신적인 멘토나 다름없는 감독이 하는 누군가와 적이 되는 아픔과 폭력에 대한 발언은 주인공에게 강렬하게 각인된다(195). 미국 여정은 주인공에게 아내와의 평화로운 이별 뿐 아니라 극작가로서의 성장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는 적어도 그럴 만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일 거야. (78)”, “하나의 경험을 그 밖의 모든 경험에 보편적으로 적용시키려 하지 않게 되었다. (129)”, “나는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게 가능한 한도 내에서 그들을 닮고 싶은 것이다. (140)” 감독은 미국인들의 역사의식과 성향을 비판하며 쭉쭉 뻗은 대로말고 자연으로 환원되는 소박한 길의 의미와 개별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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