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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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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26.04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20.1만자, 약 6.5만 단어, A4 약 126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88954646222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2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삶이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지독한 바닥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내 삶에 아직 써볼만한 여백이 남아 있을 때, 나에게 뭐라도 그리고 싶은 용기가 남았을 때 그것을 북돋아 줄 타인은 필요하다. 하지만 완전히 '0'이 되었을 때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수가 대학원에서 쫓겨나고 매일 만취한 채 기숙사 문을 잠그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지아 류에게 인기척조차 내지 못했을 때의 기분도 그랬을 것이다. 문을 잠근 채 책상을 정리하다 종수는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책상에 처박아 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혹은 잊어버리고 싶었던 그녀의 청첩장이다. '그녀와 나는 왜 만났더라.'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종수에게 영어로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수신자는 '랄프로렌'.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랄프로렌 컬렉션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가지, 랄프로렌은 시계를 만들지 않았다. 수영은 종수를 통해 랄프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편지를 써달라 한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다 종수는 랄프로렌의 이야기를 파헤치기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도 구해줄 수 없는 삶의 구렁텅이에서 유일하게 자기가 매달릴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어쩌면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그토록 무모한 시도를 시작한다. 우연히 에머슨 씨 식당에서 랄프로렌의 동생인 메이지 그랜트의 글이 실린 3류 잡지를 보다가 그는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메이지 크랜트의 말에 따르면 랄프로렌은 절대 시계만은 만들지 말라고 유언했다는 것이었다. 랄프로렌의 삶을 추적하던 중 그를 길거리에서 데려와서 키운 조셉 프랭클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종수는 주변 인물들을 찾아 다니며 랄프로렌의 삶을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조셉 프랭클의 집안일을 맡아 했던 레이첼 잭슨 여사를 만나고, 그녀를 간병하고 있는 섀넌 헤이스와 만난다.
랄프로렌의 전기를 썼던 앤 라이스는 '사랑의 휴가'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느 순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마치 갑자기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새로운 감정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떨어져나감과 관련된 감정이고, 내동댕이 쳐지는 것과 관련된 감성이다. 그것은 추락이고, 그것은 비루한 중얼거림이다.'
그녀의 말을 인용해 이 소설은 그토록 중요한 가치를 좇아 박사의 꿈을 이뤄가던 종수라는 인물이, 하루 아침에 벼락에 맞은 것처럼 새로운 삶으로 내동댕이 쳐지고, 추락하는 중얼거림에 대한 기록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사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부모님의 그늘에서 그들의 꿈과 명예를 위해 살아온 종수의 삶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수영에게도 중요한 것은 랄프로렌의 컬렉션이 아니라 무언가를 끝없이 갈망하는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설에서, 아니 진지하게 우리 삶에서 조차도 '결과'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 그것을 욕구하는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종수나 수영, 혹은 섀넌의 삶처럼 이 소설도 여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모두 헛된 일이 된다. 소설에서는 진짜 시계를 만든 이유도 나오지 않을 것이고, 정작 랄프로렌의 삶도 어깨 너머로 조금 엿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랄프로렌'을 내세우는 것은 정작 중요한 것은 결코 목적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소설 형식에서 보면 전체적으로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 연상된다. 녹음된 자료들을 다시 듣는 장면에서는 김연수의 '달로간 코미디언'도 떠오른다. 섀넌과 함께 잡지를 찢은 에머슨 씨의 가게에 찾아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면은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과 비슷하고, 거기서 화난 에머슨 씨가 음식을 차려 내오는 장면은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형식과 또 비슷하다. 섀넌은 손보미 작가의 '임시교사'에서 나온 P부인과 캐릭터가 조금 겹친다. 자기역할에 매우 충실하면서도 타인의 울타리를 결코 넘지 않고, 넘으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 여기서 그녀는 종수와 함께 은은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확실하고 반전없을 것 같은 종수의 삶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불안하고 불확정적인 수영의 삶이 행복해지고, 임시적이고 남을 보조만 하는 섀넌의 삶이 특별해지고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것은 노벨상을 꿈꾸는 기쿠 교수가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완벽한 시계공의 삶을 꿈꾸는 조셉 프랭클이 권투를 하는 것처럼 '메인'일 수 없는 것들의 중심됨이 무슨 의밀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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