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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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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0쪽 | 542g | 170*183*30mm |
ISBN13 | 9791160400960 |
ISBN10 | 1160400962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08월 29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걷다, 묻다, 살아가다
막 히말라야 여행에서 돌아왔다. 설산의 위용을 자랑하는 안나푸르나의 길을 걸었다.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신을 만났고,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도 감사했다. 끊임없는 물음의 길이었고 물음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목표점에 도달했고, 내려오는 길도 만끽했다. 아! 혼자 다녀온 것은 아니다. 한 인문학자의 여행에 무임승차했다. 물론 책값은 치렀지만 말이다.
<생각을 걷다>(휴, 2017)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히말라야 여행과 그 길에서의 사유를 담고 있는 책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고민한 18가지 삶의 질문과 그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기행문이자 인문학서이다. 저자는 안나푸르나의 높은 길을 숨가빠하며 걷다가 어느 순간 사유의 늪으로 빠진다. 그런 저자의 여정을 책상머리에서 동행한다는 것은 도리어 행운이다. 저자와 함께 히말라야로 떠났다면 그 길은 공유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의 사유는 공유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사유한 삶의 질문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며 농밀하다. 그의 몸은 여행을 통해 비일상적인 장소로 옮겨가있지만, 그 떠남은 오히려 한 발 떨어져 일상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이 책은 비일상적인 장소에서의 일상에 관한 고찰을 통해 삶의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들 방법을 일러준다. 그것은 바로 일상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물었고, 내일은 또 무엇을 물을 것인가?”(p.97) 나를 만나기 위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은 순례자의 특별한 여행과 다르지 않다. 순례자와 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 때, 삶은 마치 순례처럼 경건해지고 겸손해진다.
저자의 히말라야 트레킹이 낯선 여행이었듯 우리의 인생도 낯선 여행이다. 이 낯섦 속에서 우리는 설렘을 발견하고, 기대를 품고, 희망을 갖는다. 이 여행에서 우리는 언제나 초행자이기에 모든 길은 새롭고 의미있다. 그러나 이 낯선 길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은 내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한다. "내가 생각했던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나를 뛰어넘을 수는 있는 것일까? 정답은 있는 걸까? 그 정답을 내가 가지고 있는데 나만 몰랐다는 것일까? 진정한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p.37)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하다. 일단 숨 쉴 공기만 있다면 살 수 있다. 먹을 음식도 잠잘 집도 부차적이다.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아주 단순하다는 것은 삶의 본질 역시 단순하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삶에 욕망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으면 그 본질이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우리가 소유한 그것들은 삶의 본질을 더욱 깊숙이 숨긴다. 그러나 본질을 파악하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고 인간답게 한다. 나도 모르게 쌓여버린 욕망의 더께를 덜어내고 단순한 본질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사는 건 아주 단순함을 새삼 깨닫는다. 산소만 있어도 살 것 같다. 아무런 욕망도 없다. 그저 숨만 편히 쉴 수 있다면, 다 내줄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것들은 빈껍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이고 지고 끌고 다니며 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탓한 삶이었구나 싶다. 산소가 넘치게 풍부한 저지대로 내려가도 이 욕망의 더께를 벗어낼 수 있을까? 아는 것과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래도 그 간격을 조금은 줄여야 한다. 히말라야는 내게 그것을 요구한다.”(p.183)
목적지가 아닌 길에 널린 돌멩이에 눈길을 뺏기고 꽃과 잠자리에 마음을 뺏기던 ‘나였던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최단거리, 최고속도의 삶이 버겁다면 이 책이 던지는 화두에 귀기울여 볼 일이다. 가로가 넓은 이 책의 여백을 노트삼아 저자의 사유에 이어지는 나의 생각을 메모해가며 읽는 쏠쏠한 재미는 덤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내 앞의 인생을 나만의 속도로 걷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빨리 걸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반면 너무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금물이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고, 질문하고 답하며 걷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관건일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온전하게 누리려면 서둘면 안 된다. 갈 길은 멀다. 그러니 서둘지 말고 즐기는 법을 마련하며 살자. 삶도, 사랑도, 일도. 때론 밭게 때론 성기게.”(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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