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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0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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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08쪽 | 322g | 221*188*20mm |
ISBN13 | 9788954614443 |
ISBN10 | 8954614442 |
[예스리커버] 필경사 바틀비 - 문장 머그를 드립니다.
2021년 04월 20일 ~ 2025년 04월 18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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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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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자체를 넘어 세계를 거부하는 인간 '바틀비'<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오래전 우연히 읽었던 <좀머씨 이야기>의 대사가 생각이 났다. 내용이 다 기억에 나지는 않았지만, 그 문장 하나만큼은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두시오." 하고 외치던 외로운 좀머 씨. 수채화처럼 서정적인 배경과 어릴 적의 추억이 생각나는 <좀머씨 이야기>와 이 책의 분위기는 한참 다르긴 하지만, 죽음의 이미지가 투영되어있는 두 주인공의 짠한 모습이 겹쳐졌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곤 어떠한 내용도 짐작하지 못 했다. '필경사'라는 호칭 자체가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필경사(筆耕士)'를 찾아보면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판'을 제작하기 위해 글씨를 쓰던 사람들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일단은 글씨를 쓰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변호사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법률문서를 필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그들은 작가에게도 "흥미롭고 별스러운 사람들"이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글씨를 베껴야 했던 그들 직업은 유난히 특별했는데 (화자 '나'의 곁에 있는 필경사들의 특성은 모두 남다르지만), 그중에서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바틀비'였다.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남아있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필경사 '바틀비'는 기계적으로, 거의 미친 듯이 업무를 소화해냈다. 그런 그에게, 변호사인 '나'는 만족스럽게 필사를 검증하라는 임무를 준다. (필경사들이 자신의 필사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해야되는 작업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귀를 의심한다. 혹시나 잘못 들었다 싶어 아니면 무언가 잘못 전달된 듯싶어 다시 물어본다. 또다시 돌아오는 대답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감한 발언이라고 혹자는 '남들이 예 하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떠올리고 감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에 포함된 행동, 그리고 기본적인 매너와 요구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답을 하는 '바틀비'의 행동은 '용기'보다도 '주제넘은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바틀비를 보고 고용자인 '나'는 어떤 강력한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그는 마치 인간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하지 않겠습니다."도 아닌, "하고 싶지 않습니다."도 아닌 부자연스러운 대답이다. 그는 어떠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 만든 현실 자체를,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흐트러짐 없지만 주검 같은 느낌을 주는 확고하고 침착한 바틀비"라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에게는 죽음과 무기력이 깔려있다. 그의 대답은, 막막함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발버둥질처럼 보인다. 유일하게 실존을 부르짖을 수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주검 같은 바틀비의 모습과 행동에 따른 아이러니한 것들이 있는데, 같은 팀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의 행동으로 인해 불뚝불뚝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이해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샌가 '부정(否定)의 선택'인 그의 대답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변호사 '나'조차도 그에게 어떤 애정을 느끼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너무나도 특이한 인간인 '바틀비'의 원래 직업은 '사서(死書) 우편물 관리 직원'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죽은 사람의 편지를 분류하여 소각하는 업무를 맡았던 하급 직원이었다. 죽음과 절망을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직업이었다. 그의 온몸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까.
짧은 소설인데다가 의미를 암시하는 어떤 것들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 나름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소설이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의미를 적용해도 맞아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야기 자체와 마지막 대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의미에 대한 것은 책을 다 덮은 후 한참 뒤에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모로 답답하고 절망적인 소설이다.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먹먹하기도 하고. "아, 바틀비여!"
Underline
그 자세로 앉아, 나는 그를 부르며 용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말해주었다. 나와 함께 적은 양의 문서를 검증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틀비가 그의 은둔처에서 나오지 않고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당황했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나는 충격받은 감각기관들을 추스르며 잠시 완벽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곧 내가 뭘 잘못 들었거나, 바틀비가 내 말뜻을 완전히 잘못 알아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어조로 요구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만큼 분명한 어조로 그 전과 같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30p)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나는 대체로 바틀비와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가엾은 친구로군!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악의가 없어. 무례하게 굴려는 의도가 없는 건 분명해. 그의 용모를 보면 그의 기행들이 본의가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지. 그는 내게 유용한 사람이야. 나는 그와 잘 지낼 수 있어. 내가 해고하면 그는 아마 덜 관대한 고용주를 만나겠지. 그러면 그는 무례한 취급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굶어죽도록 비참하게 내몰릴지도 몰라. 그래. 나는 여기서 달콤한 자기승인을 값싸게 획득하는 거야. (38p)
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에 머물렀다. 내 사무실의 붙박이였다. 아니, 그는 전보다 더 - 그것이 가능하기나 하다면 - 붙박이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 그런데 왜 거기에 계속 있어야 하지? 명백한 사실은 이제 그는 내게 목걸이로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감당하기 괴로운 맷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동정이 갔다. 내가 그를 위해서만 근심했다고 하면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없다. 그가 단 한 사람이라도 친척이나 친구의 이름을 댔더라면, 나는 바로 편지를 써서 그 가엾은 친구를 적절한 요양소에 데려가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인 듯했다. 우주에서 철저하게 혼자인 듯했다. 대서양 한복판의 난파선 조각이었다. (60p)
정해진 그날, 나는 사무실로 가는 길에 짐마차와 인부를 고용했다. 가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몇 시간 내에 모든 짐이 다 나갔다. 그 필경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칸막이 뒤에 선 채로 있었다. 나는 칸막이를 제일 나중에 내가도록 했다. 그들이 칸막이를 거두었다. 칸막이가 거대한 이절지처럼 접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드러난 것은 헐벗은 방의 움직이지 않는 거주자였다. 나는 입구에 서서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질책했다.
나는 다시 들어갔다. 내 손은 호주머니 안에 있었고...... 그리고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잘 있게, 바틀비. 나는 이제 가네...... 잘 있게. 모쪼록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겠네. 그리고 이거 받게."
그의 손에 얼마간 쥐여주었지만 돈은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그토록 간절히 벗어나기를 원했는데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야 했다. (75p)
P.S
1) 바틀비의 대답이 단순히 "하고 싶지 않다-"였다면 소설의 매력도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여기서 처음으로 '번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대답 자체가, 소설을 읽고난뒤 참 짠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2) 작가 허먼 멜빌은 <모비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인기도 없었고 혹평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해요.
책상에 앉아 영혼없이 글을 쓰곤 했던 작가의 운명과 '바틀비'는 꽤 닮아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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