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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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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128*188*20mm |
ISBN13 | 9788993818888 |
ISBN10 | 8993818886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한줄평]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의 예술철학을 담은 에세이.
[멀리서 읽기]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다. 예술을 향한 열정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 그들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을 향한 통렬한 비판을 읽으면서 " '든든한 우리편'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이번에 '젊은 예술가에게'를 읽으며 그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든든함'보다는 '애정'에 초점에 맞춰졌다. 예술을 향한, 후배 예술가를 향한 진심어린 애정과 사랑을 읽으며, "정말이지 멋진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지만은 않다. 어쩌면 나도 예술가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흔하게 인정받는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를 '협의의 예술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극히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창작 내지는 창조해내는 사람을 '광의의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적어도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니 나도, 우리도, 모두 나름의 예술가다.
170 '우리가 연주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면에서 이 책의 독서는 나에게 괴리된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를 담금질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삶을 채워나가는 사람으로서, 나의 과업을 조각해가는 사람으로서,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을 마음에 품게 만들었다. '내가 삶을 연주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으로서의 태도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창작자의 세계, 연주자의 세계를 만나봄으로써, 그들이 경험하는 고뇌와 마주함으로써, 관객으로서 나의 세계는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귓가에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몇 개의 물음표가 떠오른다. 과연 이 곡의 작곡가는 어떤 의도로 음표를 적어내렸을까? 연주자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의도와 해석은 일치할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대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선율을 타고온 은유의 언어로부터 어떤 영감과 해석을 피워낼 것인가? 이제부터 다가올 감상의 여행은, 예전보다 더 풍성한 물음표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보이는 작품 너머에 위치한 예술가의 세계를 향한 존중의 진지함을 함께 품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 읽기]
음악가를 위한 음악, 음악을 위한 음악가
92 무엇보다 연주자는 '작품'을 사랑해야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된다. 그 사랑은 작품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힘이며, 그 사랑에는 모든 것을 영원하게 만들어주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음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이 깃들어 있다. ... 피셔 디스카우는 이를 멋진 말로 표현했다. "음악가가 음악을 위해 헌신해야지, 음악이 음악가를 위해 존재해선 안 된다."
94 진정한 음악가는 자신이 한 '해석'에서 신화를 창조해서는 안 되며, 다른 더 좋은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153 연주자들은 악보를 충실히 받들어야 할 그들의 본분을 망각한 채 각자의 자아를 마음껏 뽐낼 온상이자 '장식의 도구'로 음악에 접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154 사랑은 교태 표현의 총량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깊은 감정의 표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67 연주자에게 씌울 수 있는 최악의 혐의는 자신의 에고를 작품보다 윗길에 놓는 것인데, 열 종의 음반은 모두 최소한 그러한 혐의로부터는 자유로웠다.
저자는 음악을 '이용'하는 음악가들을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음악을 위해 음악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음악가를 위해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거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한편으로는 그러한 깊은 사랑 덕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던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보다 사랑하는 무엇'을 만나고 그것에 헌신한다는것이 쉬운일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가? 아니면 일을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전자의 대답을 하는 이가 모름지기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이 거장과 보통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다.
예전에 하나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쓸 때는 즐겁게 적어나갔는데, 일주일쯤 지나 다시 읽어보니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곧장 창을 닫았다가 얼마 뒤 다시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글의 목적이라는 큰 줄기를 일탈한 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맥락과 어울리지도 않고 굳이 없어도 되는 말의 덩어리였다. '내가 이걸 왜 넣었을까?'라고 생각하던 중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다. 글 자체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뽐내기 위해 덕지덕지 붙여놓은 덩어리였다. 글의 맥락에서 이어진 자연스런 흐름이 아닌, 나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억지로 이어붙인 작위적 엮음이었다. 그리고 그 덩어리를 삭제하고 편집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오롯이 글만을 위해서, 담백하고 정제된 글을 적어내렸다면 충분히 만족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의미를 주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오롯이 헌신하는 태도가, 충분한 결과물과 충만한 만족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물을 쟁취함으로써 획득하는 보상이 아닌, 그것 자체에 헌신하는 과정에서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화, 작곡가와 연주자의 대화
138 무릇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독주자와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여야 할 일이지 양자 사이의 '경쟁'이어선 곤란하다. ... 이상적인 연주는 참가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 연주다
143 훌륭한 파트너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상대가 연주한 음표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음악데 대해 가진 '비전'이나 프레이징 방법 등을 그때그때 필요에 맞추어 조정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파트너십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145 연주의 동반자가 얼마나 열심히 진실된 대화에 매달리느냐, 그것을 내 비교 청취의 척도로 삼기로 했다
202 해석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곡가와 '대화'해나갈 권리가 있다고 했던 굴드의 말이 품은 의미는 이해하고 있다.
이 책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대화'다. 작곡가가 창작을 하면 연주자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영감을 읽어낸다. 그리고 개별 연주자는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이라는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영감의 흐름과 같다. 이제껏 하나의 작품을 보고 품었던 질문은 보통 '메세지가 뭐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최초의 영감과 작곡가 사이의 대화, 악보에 내려앉은 영감과 연주자 사이의 대화, 공연을 구성하는 개별 연주자 사이의 대화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접근법이 아니다. 연극, 영화, 무용 등 다양한 범주의 예술에 적용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풍성한 호기심과 깊은 진지함으로 더 많은 작품들과 만나게 될 기회를 기대한다.
대화, 작품과 관객의 대화
194 이전 세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놀라운 독법이 믿기 힘든 성취로서 언제나 기억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달통한 악기 연주 솜씨가 아니라 '말을 걸어오는'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과거의 많은 연주자들은 그들의 소리로 뭔가 중요한 것을 '말'했다. 그들의 연주는 굉장히 가다듬은 연주 기법의 과시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이다.
예술이 마움을 두드리는 경험은 흔하게 경험하기 힘든 소중한 선물이다. 소박하고 투박한 소극장에서의 공연이 예상치 못한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화려한 공연이 순간의 유희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이 의도한 바가 과시인가, 혹은 대화인가의 차이였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짚어봐야할 것이 있다. 나는 관객으로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이 건넨 물음표의 굴곡을 따라 여행할 채비를 갖추었는가이다. 작곡가에서 연주자에게로 이어진 소중한 영감이 도달하는 종착지는 관객이다. 그러니 긴 영감의 여정을 완성하는 예술과정의 참여자로서, 관객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주어진다. 조금 더 진지해지자. 마음을 열고 밑줄을 긋자. 그럼으로써 신비한 공명을 통해 영감이라는 선물을 받는 소중한 경험을 기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
149 내게 도대체 무슨 권리가 있어서 다른 이들의 연주를 재단할 수 있단 말인가?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다른 연주에서 뭐라도 하나 배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연주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내 연주 스타일의 지평을 넓히는 상생책이 아닐까? 여러 위대한 해석을 앞에 두고 어깃장을 높을 권위가 과연 내게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 스스로를 비평하고 비판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내게도 유익한 일일 텐데 말이다.
166 대법원 판사 행세를 하고픈 마음은 없다. 나는 일개 '수사관'에 불과하고 따라서 내 의도 역시 가장 적절한 해결책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167 어쨌거나 나는 내 주관적 의견을 내놓으면 된다. 골치 아픈 곤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의견을 법정에서 얼마나 받아들여 줄까? 검사 측에 서건 변호인 측에 서건 말이다. 결국 자명한 결론은 하나, 내 의견을 개진하고 뒷받침해야 할 의무는내게 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없는 것이다.
202 단 하나의 해석을 선정해야 하는 나의 시련 역시 실패로 돌아갈 운명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부터 객관성이란 잣대는 돌풍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내가 '이거다'하고 골라낼 음반은 결국 나의 선택일 뿐이다. 나의 개성과 나의 취향이 묻어 있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4부 '루드비히를 찾아서'는 저자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담은 여러 벌의 아카이브 레코딩을 품평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업을 맡게됨으로써, 최고의 음반을 찾아가는 사색의 과정을 담고 있다. 책의 전반부를 워낙 인상깊게 읽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음악적 지식이 얕은 나임에도 빨려들어가듯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밀한 숙고와 성찰과 번민이라는 사색의 과정이, 호기심과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비평'이라는 짐을 짊어진 저자의 고민과 번민이었다. 저자가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베토벤'의 곡을, 하나같이 일류 음악가들이 연주한 음반들을 비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저자인 기돈 크레머는 〈BBC 뮤직 매거진〉이 1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로 꼽힌 바 있는 명망높은 아티스트다. 충분히 평가의 자격이 있다고 자부할수도 있지만, 자신의 기준과 판단에 대해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자격을 자문하는 과정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거장이 지닌 겸허함과 열린마음도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며 작업을 진행한다. 파트너십, 템포, 슬라이드, 페르마타, 카덴차, 내용, 개성 등을 심사 기준 삼아 까다롭게 비교하며 틀을 세워나간다. 그리고 끝내 예상치 못한 하나의 기준을 발견하며 실마리를 풀어내고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몸과 말을 사리게 되는 시대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이전까지의 모든 이력과 경력이 무너지기도 한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말을 함부로 해서 안된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정제되지 않은 한 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수도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말'들조차 조심스레 마굿간 한켠으로 몸을 숨기는 것 같다. 숙고하지 않은 판단과 단정이라는 막말의 향연속에서 애정어린 관심과 진심어린 조언도 '꼰대짓'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도매로 묶인다. 모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적당하게 좋은 말만 하는것이 상책이다.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좋은게 좋은거니까, 서로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적당히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위안과 지지는 필요하다. 삶의 어려움을 버텨내는데 이보다 고마운 안식처는 없다. 하지만 버팀을 넘어 거듭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냉정한 비판 역시 필요하다. 숙고와 성찰을 통한 내적 성숙을 통해,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여 경험하지 않을 지혜와 강함을 획득할 수 있다.
나만의 템포로, 슬라이드로, 페르마타로, 단호하게 내적 성찰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본다. 타인에게 진심의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타인의 비판을 반갑게 수용하는 담대함과, 고마움을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래본다. 음악을 향한 기돈 크레머의 애정과 진심을 기억하며.
[인용]
106 미학과 윤리학이 서로 관련 깊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또 작곡가와 연주자가 서로 손을 잡아야 해석이 더 강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야만 악보를 채우고 있는 '모든 기호와 모든 점'이 생생히 살아날 수 있다.
143 음악이란 그저 '올바른 시점에 올바른 음표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내 믿음이다.
147 각각의 시대는 저마다의 보폭과 각자의 '메트로놈'을 가지고 있다.
165 최고의 관객은 소리만큼이나 정적 또한 즐길 줄 아는 관객이다
195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속에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다. '더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연주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럼에도 듣는 사람의 심장을 움직이는 '울림'이 없어서야 무슨 소용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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