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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1년 0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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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91쪽 | 448g | 148*210*30mm |
ISBN13 | 9788958660941 |
ISBN10 | 895866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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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15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익숙했던 현실이 어느 순간 부자연스럽다. 타인은 눈치채지 못할 미세한 변화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느 토요일 아침. 휴일에는 울리지 않아야 할 자명종이 7시에 울리면서 주인공 K는 미궁속으로 빠져간다. 작가는 그로부터 3일의 시간을 추적하고 있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다. 육체는 눈에 보이므로 쉽게 규정된다. 정신은 다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했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를 규명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나'라는 존재는 좁게는 타인, 넓게는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증명된다. 희노애락을 예로 들어보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 느끼는 포만감, 추위에 떠는 고통 등은 제3자와 관계 없이 홀로 자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물도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일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희노애락은 타인, 나아가서 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형성되는 배경이다. 그(그녀)가 없으면 기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면, 과연 나는 무엇으로 규정될까? 심지어 자연조차 없다면 더욱 어려워진다. 우주속의 나는 아무 의미 없는 개체에 불과하다. 동일한 육체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은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드러난다. 이순신의 독백을 보면, 스스로를 '적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적의 적'이란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 나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진공 상태의 투명 용기에 나를 집어 넣어놓고 관찰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어떤 존재일지. 아무리 고민해도 나의 특징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김훈의 표현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공 용기에 나외에도 주변 사람, 공동체, 사회를 함께 집어 넣고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왜놈'이라는 적이 없다면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김훈은 이순신을 '적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서 그의 존재 목적을 명쾌하게 표현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주인공 K가 이 세상과 맺고 있던 관계를 살짝 비틀었다. 비틀려진 것이 진짜일지, 비틀리기 전이 진짜일지 알 수 없다. 다만 관계의 원형을 복원해가는 K의 여정을 통해 독자가 유추할 뿐이다. 그것은 곧 그 자신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K는 가까스로 미세한 비틀림을 복원하는데 성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현실의 삶은 끝이난다. 이것은 또 다른 비극일까?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맞이하는 노년의 죽음과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나은 결론일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작가는 고통스러운 암 투병 과정에서 매순간 '죽음'을 묵상했을 것이다. 그로인해 세상과 관계 맺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그 의문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이어졌다.
'암은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과 내가 듣는 모든 소리와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과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하느님과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모든 학문이 실은 거짓이며, 겉으로 꾸미는 우상이며, 성 바오로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환상이며, 존재하지도 않는 헛꽃임을 깨우쳐주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p6
어떤 의미에서 동물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먹고 자고 싸고. 살아가는 것에 급급할 때가 많다.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진정 '나는 무엇일까?'라는 고리타분한 질문. 거울에 보이는 육체 외에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위에 스스로를 던져놓는다. 그리고 부모, 아내, 친구, 도시, 나라 등을 하나씩 놓아가며 맺어지는 관계를 추적해보자. 각각의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그것을 통해 나의 캐릭터가 뚜렷해지는 기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배웠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보편 타당한 명제로 되돌아 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다. '나'라는 존재는 태초에 신이 '나'에게만 주신 고유한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그것은 세상과의 관계 맺음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감히 데카르트의 선언을 비틀어보고 싶어진다.
'나는 관계 맺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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