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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08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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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1.53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20.5만자, 약 6.3만 단어, A4 약 129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88958201533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25일 ~ 2024년 10월 25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친구들 중 몇몇은 취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생과 실업계 고등학생이 함께 모여서 우정을 나눌 수 있던 곳은 교회 고등부였다. 지금은 민영화된 XX 중공업에 취직한 친구 한 명은 반에서 1,2 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다. 취업을 하게 되면서 일요일 오전에도 특근이 있다면서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한 달이 지나서 드디어 첫 월급을 탔다고 빵집으로 우리를 데려가서 마음껏 먹으라고 큰소리치던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두꺼운 책 한 권을 끼고 교회에 나타났다. 예배와 성경공부가 끝나고 교회 로비 소파에 앉아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이고 있는 우리 곁에서 녀석은 그 책을 읽고 있었다. 취업 나간 놈이 무슨 공부하냐고 책을 뺏어보니 “자본론” 이라고 써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게 자본론은 18대 조상 족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형들과 아저씨들이 이 책을 읽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이 내 주변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을 읽는 첫 사람의 모습이었다.
칼 마르크스의 주저(主著)는 당연히 “자본(론)” 이다. 유럽 대륙의 혁명의 소용돌이를 뒤로 하고, 친구 엥겔스를 믿고 가족과 함께 도버 해협을 건넌 마르크스는 이후 죽을 때까지 런던 소호 거리에 자리를 잡고 매일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으로 출퇴근하면서 19세기 꿈틀대면서 일어서기 시작하던 자본(資本)시스템을 분석했다.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를 공산주의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그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없다. “자본” 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 들, 소련을 비롯한 현실공산주의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는 고리를 찾기는 어렵다. 마르크스는 자본에 기반한 생산시스템을 연구하는데 남은 여생을 다 바치게 된다.
아쉬운 점은 읽는 이의 피를 끓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공산당 선언” 에 비해 “자본” 은 그 내용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 으로 일단 이쪽으로 노동자 계급을 끌어오는 호객행위가 성공했다면, 낯선 땅을 방문한 이들에게 ‘메인 코스’ 를 화끈하게 선사해야 하는데, “자본” 이라는 마르크스의 메인 코스는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고, 복잡하며, 미완성이었다. 마르크스 스스로 구상한 분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로 끝난 “자본” 은 마침내 제목과 서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분량을 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미답(未踏)의 영역으로 남겨놓았다. 하루 종일 노동하느라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노동자들이 손에 들고 펼쳤다 하면 잠이라는 축복을 내려주는 책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강철군화” 란 책이 있다. 통속작가로 이름을 알린 미국 작가 잭 런던(Jack London)이 1908년 출간한 책이다. ‘소설 자본론’ 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마르크스의 오리지널이 주는 깊이와 통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어렵지 않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과 이에 맞서 싸우는 당위성, 그리고 대리만족까지 얻게 된다. 마르크스의 글 쓰는 재능이 잭 런던의 그것과 비슷했더라면 좀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 을 읽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 모습을 알게 되고, 깨달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갇힌 족쇄를 더 많이 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지만, “강철군화” 의 세계 역시 그리 만만하지 만은 않다.
“강철군화” 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걸 써먹어 본다면, ‘액자소설’ 이다. 이야기의 틀을 지탱하고 있는 바깥액자는 B.O.M.(the Brotherhood of Man) – 인류형제애 시대 – 419년이자 서기로는 2618년, 앤서니 메러디스라는 문헌학자가 발견한 에이비스 에버하드라는 한 여성이 쓴 원고가 된다. 에이비스 에버하드는 당대를 대표하던 공산주의 혁명운동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아내이자 동반자로서 함께 자본주의와 그 앞잡이인 ‘강철군화’ 에 대항하여 1918년 일어난 시카고 코뮌을 이끈 동지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녀의 원고를 읽어나감으로써 펼쳐진다. 남편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으로 그려진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목이 굵고 덩치가 산 만한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당대의 지식인들과의 논쟁에서 절대 지는 일이 없는 혁명이론가요 행동가로 그려진다. 칼 마르크스의 두뇌를 크로캅의 몸뚱이에다 얹은 것 같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입을 통해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 자본주의 이윤저하설 같은, “자본” 에서 한 장을 북 찢어놓아서 붙여놓은 듯한 공산주의 이론이 전개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득세한 사회에서 이를 극복하고 전복하기 위해 자본의 편에선 군대와 경찰과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폭력투쟁이 그려지고 있다.
“강철군화” 에서는 이론과 실천이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다. “자본”의 방대한 분량과 난해함에 혀를 내두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강철군화” 앞에서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어떻게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할 것인가를 잘 아는 잭 런던을 통해 독자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 다소 폭력적인 – 방식을 배우게 된다.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마르크스, 다윈, 니체,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상을 독학으로 배운 작가의 이력답게 “강철군화” 는 “자본” 을 차마 손에 들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훌륭한 대증요법이 된다. 그곳에는 이론서의 깊이는 없지만, 실제 살아온 삶에 기반한 절실한 목소리가 있고, 철학서의 난해함 대신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잭 런던이 “강철군화(1908)” 를 버려낸 당대는 강도 귀족(robber barons)이 판을 치던 도금 시대(The Gilded Age)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사방에서 날 뛰던 바로 그 시점이 기준이었기에, 소설에서 그려지는 노동자의 삶은 어느 시절보다 더 참혹하고 읽는 이를 분노하게 한다. 그러기에 런던은 이 모든 악(惡)에 맞서는 주인공 어니스트 에버하드를 초인(超人) 중의 초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완벽하기 그지 없는 인물로, 마르크스+레닌+ 예수 그리스도의 집합체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강철군화” 를 처음 만난 건 “자본론” 을 열심히 읽던 친구와 헤어지고 서울로 이사와서 대학교 신입생이 되던 무렵이었다. 못 다 이룬 혁명을 힘주어 외치는 낡고 오래된 책들이 과방의 책장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책을 골라 읽던 그 시절, 발견한 “강철군화” 는 고리타분한 이념서적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책이었다. 마르크스나 레닌보다는 하루키와 재즈에 탐닉하던 청춘들이 늘어만 가던 90년대 중후반의 대학가에서 “강철군화” 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의 감시 아래 이념서적으로 분류되었던 “강철군화” 는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잭 런던 걸작선” 이라는 산뜻한 이름과 스타일리시한 표지를 입고 세련된 모습으로 재 탄생하였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높아만 가운데 다시 등장한 “강철군화” 는 1908년 당시 잭 런던의 현실과 2011년 지금의 현실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본”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자본” 을 3권까지 읽어낼 끈기와 스테미너가 없는 지적(知的) 약골이라 스스로 생각하거든, “강철군화” 라는 맛있는 영양식이라도 먹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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