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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7년 1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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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54g | 130*205*20mm |
ISBN13 | 9791130614779 |
ISBN10 | 1130614778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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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단편집에 참여한 작가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이 단편집이 나왔을 때 제목을 보고 뜨끔하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 짧은 평들을 보며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었다.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는 읽어보면 별 내용 없다. <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그냥 평범한 누군가의 회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인 폭로이겠지만 내겐 무던한 전개였다. 아마 일종의 의식화 과정에서 그 단계는 통과한 모양이다. 현남 오빠가 깔아준 (꽃은 없는) 길을 걸어온 주인공의 20대. 그 중에서도 이것 봐라? 싶었던 게 친구 지은이 이야기였다. 현남은 야구를 핑계로 3인 데이트를 하며 지은이를 꼬셔보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지은이는 주관이 뚜렷해서 현남의 꾀에 잘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고 지은이가 현남에게 여지를 주거나 한 건 전혀 아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안다. 전후 상황을 보면 지은은 현남에게 관심도 없고, 정말 말 그대로 친구와 야구장에 놀러간 것일 뿐. 십년이 가까운 연애 속에 수많은 지은이들이 있었을 거다. 두 사람이 한 것은 연애지 사랑이 아니기에 이 길고도 짧은 편지가 탄생한 것이다. 대다수는 이 커플 같은 연애를 한다. 평범하다. 하지만 사랑 같지는 않다. 계산하는 사랑도 사랑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두 사람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면 괜찮지 않나 생각도 했다. 어느 선까지는 양보할 수 있는 것니까 말이다. 나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순 없으니... 어떻게 모두가 소설같은, 영화같은 그런 열렬한 사랑을 하겠는가? 모두가 그런 사랑을 한다면 로맨스 장르는 벌써 폐업했을 것이다.
조남주 작가 스스로도 작가 후기에서 밝혔듯, 주인공과 현남의 이별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식민지가 독립 선언을 한다고 쉽게 풀어주던가? 주민번호를 비롯한 모든 것을 공유한 관계가 그리 쉽게 끝이 나겠는가? 현실을 조금 비튼 글이기에 그런 우려를 품게 된다는 점이 좀 슬프다. 단편집에서 세 편을 골라 읽었는데 조남주와 최정화, 구병모의 글이었다. 최정화의 단편이 참 좋았다. 후기에도 공감했다. 라면을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 노랭이 커피 믹스를 한 번도 안 마셔본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마셔본 사람은 없다. 이런 느낌으로, 페미니즘을 모르던 사람은 있어도 알게 된 후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냥 직진만 있을 뿐이다. 세계를 보는 눈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담아낸 단편이 바로 <모든 것을 제자리에>다. 주인공 율은 건물잔해를 찍는 촬영기사인데, 습진으로 고생중이다. 과장은 율의 상처-외모에 관심이 많다. 율이 나중에 숏커트로 머리를 자른 후에도 굉장히 아쉬워한다. 율은 그런 관심이 달갑지 않고 알은체 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습진이 심해지니 붕대를 칭칭 감을 뿐이다. 보여주기 싫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율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무너진 건물의 일부를 치우고 정리해서 사진을 찍는다. 누가 봐도 정리된 사진에 당황하던 율은 자신의 손이 모르는 남성의 손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된다. 습진 좀 걸리면 어떤가. 머리 좀 자르면 어떤가. 무너졌으면 무너진대로 그대로 놔두면 어떻겠는가. 뭐가 그렇게 달라진단 말인가?
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아야 할까? 제자리에 둔다는 것은 누가 정했나? 제자리라는 것, 옳다는 기준- 사회의 통념을 누가 내게 가르쳐주었나? 율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쓰고 나서야 자기의 손이 누군지 모를 남성의 손이 된 것을 깨닫는다. 내 몸은 몸이되, 행동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구성하는 모든 사고가 정말 나만의 것인가. 그런 고민이 드러난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좋았다. 역시 최정화... 구병모 작가도 기대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신화를 옮겨온 축제. 내가 벌받아야할 것을 다른 이를 내세워 처단하는 비겁자도, 그 자리를 채운 것이 나는 여기에 책임이 없다고 했던 방관자라는 것도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이건 아니라며 반대를 선언한 이가 실은 피해자와 다름없으며 그가 스러지는 것 마저도.
김이설 작가의 소설을 비롯한 나머지 작품들은 조금 더 찬찬히 읽을 예정이다.
2017. 12. 7. 목.
최근 잘 나가는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요즘 가장 핫한 이슈인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단편소설집을 냈다. 각자가 쓴 소설을 우연히 모은 게 아니고, 처음부터 주제를 정해주고 단편소설을 주문했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쓸까 작가들의 고민이 컸으리라고 추측이 된다. 이런저런 불평등에 대한 이슈가 많은 세상인데, 특별히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여성의 시각과 생각으로 얘기하다 보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을까 살짝 우려도 되었다. 게다가 여성혐오 혹은 남성혐오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현실에서 어떤 이야기로 독자에게 각성을 주고, 남성과 여성 서로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얘기가 나올 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개성이 강한 여성 작가들이라서 그런지 같은 주제를 향하고 있지만 소재들이 하나도 겹치지 않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을 썼기에 읽는데 무리가 없었고, 아주 잘 읽혔다. 편지글의 형식, 장차 시어머니가 될 엄마를 바로보는 딸의 시선, 여성의 맘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상처받은 여성이 일하는 방식, 타협하지 않는 여성 경찰의 삶,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일삼던 남자들을 향한 복수의 환타지, 우주로 보내지는 미래인(?) 혹은 동물의 정착하는 모습 등, 이야기의 소재와 전개가 다채로와서 읽기도 수월하고 재미있었다.
첫 번째 작품인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는 캠퍼스커플로 시작해서 10년을 사귀었기에 당연히 남들은 결혼하는 줄 알고 있지만, 친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각성을 한 여자가 강현남 오빠의 청혼에 편지로 답을 보내는 글이다. 아주 공손한 말투로 그동안 자상하게 자신을 돌봐주고, 조금만 힘든 일도 알아서 해주고, 심지어 자신의 진로까지 결정해준 현남오빠의 모습이 좋게 보면 아빠 같기도 하고 친오빠 같기도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는 나는 청혼을 거절한다. 그리고 청혼을 거절하는 편지 말미에 시원한 멘트를 날린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가 좋았니? 청혼 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 38p.
로 끝을 맺는다. 완전 내마음까지 후련해지는 마무리다.
두 번째 작품인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고, 남편에게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산 정순이 며느리가 될 선영을 집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여기서 화자는 정순도 며느리감 선영도 아니고, 정순의 딸인 유진이다. 유진은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어려서부터 봐왔기에 늘 어머니의 편이었고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말벗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시집살이를 새로 올케가 될 선영에게 똑같이 돌려주려는 모습을 보이자, 계속 말린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면서 며느리에게 다시 똑같이 되갚아줘서 자신도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를 강하게 보인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가부장제라는 틀 속에서 어느새 스스로가 시어머니와 똑같이 닮은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습을 며느리감은 황당하게 바라보지만, 딸 유진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더이상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찌보면 어머니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안타깝다.
유진의 할아버지는 효자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자기 집안, 자기 어머니의 사노비 보듯 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빠는 자랐다. 아빠에게 본인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존재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보상을 해줄 여자를 구했다. 어머니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줄 여자,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모든 궂은 일을 맡아 해줄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의 생일상을 새벽부터 일어나 차려줄 여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고 현명하게 키워낼 수 있는 여자. 아빠는 고액 연봉을 받는 파일럿이었고, 그런 여자를 얻을 자격이 있었다.
--- 55p.
유진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방식대로 유진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지만, 유진의 동생인 준호는 전혀 그렇질 않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앞으로 어머니 정순과 얼마나 갈등을 빚을 지 불 보듯 훤하다. 그리고 시누이로서 어머니와 올케 사이에서 유진이 참 힘들것 같아서 갑갑하기만 하다.
세 번째 작품인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은 갱년기에 접어든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의 이야기로 다른 학부모에게 아들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된다. 공부도 잘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문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귀가한 아들에게 물으니 오히려 자신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한 가지는 있어야하지 않냐며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고 콘돔도 사용했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엄마가 원하는 대학교에 가주면 별문제가 없지않냐고 하니, 엄마는 기가 막힐 뿐이다. 열다섯 살의 소년이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게 실제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충격적이었다. 좋아해서도 아니고, 호기심으로도 아니고,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니... 아이아빠에게 물어보니 아들이 강간을 한 것도 아니고, 공부도 잘 하고 있으니, 아들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함부로 몸을 던지는 여자아이들을 탓한다. 자신도 딸이 있으면서 내 딸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빠...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윤서 엄마는 봉인이 풀린 듯이 거침없이 소문을 풀어놓았다. 윤서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성적에 목숨 건 여자아이는 되바라진 여자애였고, 성적에 관심 없는 여자애들은 아이돌이나 따라다니면서 화장이나 하는 골빈 여자애였다. 윤서도 내 딸아이도 요즘 여자애들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 같았다...중략... 윤서 엄마와 헤어질 무렵에야 윤서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윤서는 잘 지내지? 야무져서 엄마 걱정할 일을 만들지도 않을테고. 윤서 엄마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우리 윤서는 그저 순재해빠져서 공부밖에 몰라요." 윤서는 되바라진 여자애구나. 그럼 윤서 엄마는 어떤 여자아이였을까. 나는 또 어떤 여자아이로 사람들에게 평가받았을까. 그 평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왔던 걸까. 그나저나 그 평가는 누구의 시선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111p. - 114p.
아들의 충격적인 일탈에 엄마는 아들과 관계를 가졌을 여자아이들을 걱정하고, 또 초경을 시작하는 딸아이를 보며 안타깝기만 하다.
네 번째 작품인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습진을 오래 앓다가 오른손이 흉해져서 붕대를 감고 다니는 율씨는 붕괴되어 버린 폐건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해서 기록물을 남기는 직업을 갖고 있다. 건물의 층마다 다니면서 꼼꼼하게 촬영을 하는데, 하루는 어지럽혀진 층을 촬영하다가 쓰러진 소파 틈에 천을 발견하고 잡아당겨 보니 그게 치마다. 본능적으로 치마를 얼른 가방에 넣고, 다시 발견한 모자를 또 가방에 넣고 다시 돌아보다가 하나씩 자신도 모르게 그 장소를 정리정돈 하게 된다. 그리고 정리가 끝나고 나와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기 위해 치마와 모자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뭔가 제자리가 아님을 느끼며 오른손에 감긴 붕대를 푸는데, 어느새 손은 말끔하게 나아있다. 근데 그 손은 내 손이 아니고 내 손보다 후러씬 크고 킨 남자의 손이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정말 난감했다. 다시 한 번 읽었는데, 그래도 역시 난감하다. 앞의 세 작품과는 방향이 다른데, 마지막에 다 나은 손이 남자의 손이라는 데에 힌트가 있는 듯 하다. 습진을 앓던 손은 남자에게 폭행을 당했거나 성희롱을 당한 손이 아니었을가. 그래서 자신의 삶이 폐건물처럼 무너졌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치마가 버려져 있는 공간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음을 못견디고 치운 것은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 촬영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정리를 한 것은 그 장소 뿐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과거까지 제자리에 놓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게 정리가 끝난 뒤에 오른손은 상처가 없어졌지만, 그 손은 자신의 손이 아닌 남자의 손이다.
그 남자의 손은 내 손목에 붙은 채로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152p.
그 남자가 누구지는 모르지만, 그 남자는 이미 잊었겠지만, 율씨에겐 커다란 상처와 아픈 기억으로 남아서 끝내 지우질 못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작품인 손보미 작가의「이방인」은 추리소설처럼 읽히는 여자 경찰의 이야기다. 과거의 어떤 잘못으로 혼자 은둔해 있는 여자경찰에게 후배 남자 경찰이 찾아오고 계속 사건을 해결하자고 말하지만 거절한다. 어느 도시에서 계속 벌어지는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을 함께 조사하자는 후배의 말에 마음은 흔들리지만 계속 거절을 하다가 결국엔 함께 하게 되고, 사건과 연관된 인물을 쫓다가 안타깝게도 후배가 죽게 된다. 사건의 뒤에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힘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해고하려던 국장은 그녀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받은 뒤에 복귀를 허가하며 그녀에게 이방인이 납시었다고 한다. 보통의 이런 류의 소설은 남성이 주인공이 되고, 여성은 옆에서 도와주는 주변인으로 나오는데, 이 소설은 그 반대이다. 왜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서 남성이 서포트하는 것은 상상하질 못했을까. 그 동안의 고정관념 때문인지, 이 소설의 말미에 국장이 그녀에게 내뱉는 "이방인"이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녀가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수사국의 멤버로서 제대로 섞여서 제대로 경찰의 일을 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이 기획을 청탁 받았을 때, 나는 막연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느와르풍의 소설을 한 편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이러한 소설의 '여성' 주인공은 섹스어필 해서도 안 되고, 사랑에 빠져서도 안 되고, 다른 누군가 -- 특히 남성 -- 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제한은 사실, 우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풍의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들은 섹스어필을 하고, 사랑에 마음껏 빠지고, 여성의 도움을 수도 없이 받기 때문이다. --- 198p. 작가노트 중에서.
여섯 번째 작품인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한편의 엽기 환타지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처음엔 여성이 주인공인줄 알았더니 남성이었다. 외딴섬에서 여장남자대회가 열리고 그 대회에 초대받은 남자들은 오천만원이라는 상금에 혹해서 나온건데, 잘 지워지지 않는 진한 화장과 혼자서는 벗을 수 없는 원피스와 부츠를 입고 무대에 서는 순간 화살세례를 받고 살기 위해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쓰러져서 피범벅이 된 여장남자들... 홀로그램같이 잡을 수 없는 사냥꾼들의 공격 속에서 회사 동료 대신 참가한 표는 그저 살기 위해서 다른 여장남자와 함께 도망치다가 공격을 하던 한 무리에게 잡히는데, 화장이 반 정도 지워진 덕분에 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무섭고 끔찍하다.
좋아, 허물이 벗겨지는 자는 무죄. 벗겨지지 않으면 유죄. 반만 벗겨지면……. 반만 벗겨진다니 대체, 벗겨지다 만다는 뜻인지, 벗겨지다 말아버리면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무엇보다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즉결심판을 내리려는 것인지 표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을 따지기 전에 사냥꾼들--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행인들--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표를 밀어 넘어뜨리고 팔다리를 하나씩 맡아 붙들었다. --- 239p.
...중략...
통조림 뚜껑으로 흠집조차 나지 않던 원피스는 금속성과 함께 피냄새를 허공에 뿌리며 거짓말처럼 갈라졌다. 손들이 달려들어 옷을 잡아당기자 그전까지 피부의 일부인 양 들러붙었던 한꺼풀의 옷이 떨어져……뜯어져 나갔다. 옷 곳곳에 붙어 나온 살점에서 악취가 풍겼다. --- 240p.
여기에 초대된 남자들은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하고도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은, 자신의 죄를 모르는 남자들이었는데, 이들에게 여성들이 벌을 주고자 일을 꾸민 것이다. 첫장면부터 스펙타클하고 영화를 보는 듯하게 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퍽퍽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여장남자들의 모습은 전혀 반항을 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추행이나 공격 앞에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자이기 때문에 표가 당해야 한다면 억울하겠지만, 남자이기때문에 다른 남자의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해서 분명 방관하거나 외면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니 그 죗값을 반정도만 치른다고 봐야할까. 어쨌든 이 작품, 잔인한 듯 했지만 완전 신선하고 좋았다. 참고로, 여성의 얼굴과 독수리의 몸을 지닌 하르피아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명으로 신의 비밀을 누설한 트라키아왕인 피네우스의 식탁의 음식을 먹어치우고 어지럽히는 괴물들로 나온다. 죄에 대한 복수를 해주는 정령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곱 번째 작품인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쏘아올린 열 두 마리의 실험 동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가 화성에 정착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류의 동물인지 사람을 닮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만나는 라이카는 오래전 소련에서 쏘아올린 우주선에 타고 있던 개로 이미 죽었지만(?) 화성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라이카를 포옹했을 때 라이카는 내가 임신했음을 알려주며 내 성별까지 확인해 준다. 화성을 함께 돌아다니다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탐사로봇 데이모스를 발견하고 그와도 함께 하게 된다. 데이모스는 나의 피 한방울로 내가 임신 12주임을 알려주고 아이는 잘 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철저하게 나를 챙겨주며 출산을 기다린다.
나는 이 모든 풍경에, 익숙한 이미지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내 둥지에 와락 안심이 된다. 그러자 너로 인해 발생한 나의 말, 다정한 말을 아이에게 건네고 싶어진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들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아이는 태어날 것이다. 나 말고 이모가 둘이나 더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이런 말을 읊조리자 데이모스가 내 성별이 여자냐고 되묻는다. 라이카가 윙크하듯 귀를 쫑긋 세운다.
소리에 화답하듯 배가 한 번 꿈틀거렸다. --- 271p.
작품 한 편 한 편이 너무도 잘 읽힌다. 앞의 작품들은 어디서 많이 들은듯 하면서도 왠지 입으로 내뱉기는 힘들었던 이야기들이고, 뒤로 갈수록 작품들은 낯선 풍경에 당황하게 하면서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여성이야기를 하면 "페미니즘"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일단 남성들과 한판 붙으려고 하는 남성혐오자쯤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페미니즘은 그 동안에 억눌려온 여성의 삶과 이미지, 잘못된 생각들에 대한 개선, 혹은 재정립을 위한 주의인데,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적대감을 갖는 남성들이 많다. 게다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마저도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 못하고 말할 때마다,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도 한다. 여기에 이 책을 쓴 여성작가들은 말한다. 여성이 남성 위에 서겠다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도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당연히 차이가 있으므로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함께 공존하자는 말이다. 지독하게 뿌리박힌 남존여비나, 남아선호, 게다가 요즘들어 나오는 여성혐오에 남성혐오까지 분명 함께 손잡고 살아야할 여성과 남성이 왜 서로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정말 이해가 안가는 현상들이다. 분명 가족 중에 남성과 여성은 섞여서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여성이기에 참고 살아야 했고, 여성이기에 마녀로 몰려서 죽임을 당했고, 여성이기에 멋진 작품을 내놓고도 외면당했고, 여성이기에 희생과 봉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강요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성적으로 상징 되는 정복, 약탈, 전쟁으로 인해 가장 많이 희생을 당했던 건 여성이었고, 어렵고 힘든 시절 남성들을 세워주고 빛내 주던 것은 어머니, 할머니, 누이들의 희생이 밑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어려웠던 시절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의 말로 못할 숱한 고난과 지금 이시대에 어려움을 겪으며 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아버지들의 희생도 우리는 알고 있다.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은 누가 우월한 것도, 누가 이기거나 져야 살아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함께 힘을 주고, 함께 도우며,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어차피 어느 한쪽 만으로는 세상이 유지될 수는 없다. 화성만 빼고... (화성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 나오는 이민경 작가의 발문 중 일부를 적으며 리뷰를 마친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바로 거기서부터 이어진다. 컸던 혼란과 두려움이 보다 작은 혼란과 두려움을 낳은 데로부터.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는 데 지쳐 세상과 자신 중에 틀린 쪽이 아마도 자신이라고 생각할 뻔한 어떤 여성을 구해줄 것이다. 그 여성은 홀로 품고 있던 마음이 활자로 태연히 찍힌 것을 보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조금 거두어 볼 것이다. 이미 자신은 틀렸다는 마음을 먹은 지 오래인 여성의 마음마저도 조금 돌려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자신을 꺼내어놓는 데 필요한 혼란과 두려움은 점점 작아지다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귀퉁이에 등장하는 조연의 모습에서 자신과 닮은 데를 찾고 반가워하던 여성은 주연이 아닌 것을 상상해본 적 없는 여성 인물들을 잔뜩 보다가 자신도 어느 결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문학의 힘이라도들 했나. 좀체 와 닿지 않던 말뜻을 이제야 다시 헤아려본다. --- 282p.-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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