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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나는 그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림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화 베스트 200’이란 책도 보았다. 이 책엔 시대 별로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들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사조는 인상파와 점묘파이다. 인상파는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었다. 르누아르와 친구들은 친구인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란 그림의 이름을 따와 그들이 만든 사조에 인상파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점묘화는 르누아르와 같은 시대의 화가 쇠라가 만들었다. 쇠라의 대표작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오후’ 가 있다.
르누아르는 어렸을 때 집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첨화직공이란 일을 하면서 미술 강습소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하지만 도자기에 그림을 붙이는 기계가 발명되 첨화직공이 설자리가 없어졌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재능을 알아본 올르왜 선생님이 르누아르를 미술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르누아르의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 르누아르는 가난했지만 미술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르누아르는 모네, 시슬레와 바지유를 만났다. 르누아르는 그들 몰래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따라 그렸다. 르누아르는 모네, 시슬레 그리고 바지유와 라 그르누예르에 그림을 그리러 갔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새로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들은 곽선을 대충 잡고는 화면을 툭툭 건드리듯 캔버스를 채워 나갔다.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들은 살롱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낙선전에 그림을 걸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청원서를 받아줄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 내가 정부 관료였다면,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들의 청원서를 받아주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림은 그 시대에서는 처음 보는 기법이고, 그 기법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의 붓이 전하는 이야기
안녕? 나는 붓이야. 나는 미술학원 에콜 데 보자르에 있어. 몇 년째 여기서 일하고 있지. 처음에는 너무 좋았어. 많은 아름다운 그림들을 볼 수 있었거든.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돕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내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뀐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이 뻔한 사실주의 그림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어. 그때, 한 특별한 학생이 입학했어. 그 학생의 이름은 르누아르였어.
내가 처음 르누아르에게 잡혔을 땐 별 기대가 되지 않았어. 하지만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내 마음이 바뀌었어. 르누아르는 나를 슥슥 휘두르며 풍경을 표현했어. 완성된 작품은 그냥 형태만 잡은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아름다운 빛의 표현이 묘하게 그 그림이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어. 다른 그림들보다도 말이야. 나는 너무 기뻤어. 이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낸 르누아르가 대단했지. 이제 일하는 게 더 즐거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매일매일 나는 르누아르가 나를 잡길 빌었어. 다행히 르누아르는 날 자주 써줬어. 나는 당연히 르누아르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르누아르는 외광파로 불리며 인정받지 못했어. 그래도 르누아르는 계속 그림을 그렸어.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그래도 샬롱전에 뽑히지 못하자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들은 자기들만의 전시회를 열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사람도 없고 비판도 받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어. 어느날, 르누아르의 친구 모네가 나를 잡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해돋이를 그리고 있더라고. 르누아르와 비슷하게 붓결이 잘 보이도록 휘두르며 햇빛이 바다에 비치는 것을 표현했어. 제목은 <인상, 해돋이> 였어. 나는 이 그림이 미술에 미칠 영향을 알지 못했어.
며칠 뒤 신문에는 인상파에 대한 글이 실렸어. 풍경의 인상을 표현했다고 이름이 붙여졌어. 그 일로 르누아르와 모네는 점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어. 전시회도 어느새 꽉 찼어. 그리고 그때쯤, 나는 오래된 붓으로 수명을 다했어. 하지만 나는 르루아르와 르누아르의 친구인 모네가 시작한 인상주의에 대해서 더 소개하고 싶어.
르누아르 때 사람들은 뚜렷한 윤곽선과 사실적인 표현을 원했어. 르누아르는 반발심이 들어 인상주의를 시작한 거야. 인상주의는 그림을 눈에 보이는데로 그리지 않고 빛을 이용하여 그 풍경의 느낌을 표현한 거야. 사실주의 그림들이 오히려 좀 부자연스럽게 보일 때도 있어. 그것은 그 그림이 너무 보이는 것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야. 우리가 무엇을 볼 때 생각하는 인상을 르누아르는 너무나도 잘 표현한 거야. 인상주의는 미술의 벽을 깨트리고 화가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어. <물랭 드 라 갈레트> 같은 걸작도 낳았고. 르누아르 덕분에 수많은 호가들의 독창성이 빛나고 있어. 나는 르누아르의 붓으로 일하며 화가에 대해서 훨씬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세상의 모든 화가들을 응원할께
화가계의 선구자, 르누아르
‘빨간 모자를 사랑한 르누아르’를 읽고
세상엔 많은 화가들이 있다. 하지만 난 ‘화가’라고 하면 ‘고흐’나 ‘박수근’만이 떠올랐다. 딱히 관심도 없고, 잘 알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에 ‘빨간 모자를 사랑한 르누아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르누아르는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재단사, 어머니는 재봉사였는데,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어릴 때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첨화 직공을 하였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기계가 나와 공방이 문을 닫을 때 비로 서야 화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화가가 된 르누아르는 친구들과 기존엔 없었던 ‘인상파’ 그림을 그렸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사람들이 ‘인상파’를 잘 인정해주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르누아르는 마치 우리나라의 ‘이중섭’이나 ‘박수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처음엔 인정받지 못했지만, 나중엔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으니 말이다. 난 이걸 보면서 르누아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 받고 미움만 받았어도 뜻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인상파’라는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낸 것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르누아르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미래에는 또 무슨 화풍이 나올지 궁금하다. 아마 미래엔 그림의 현실성보다 창의성을 더 중요시하는 화풍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르누아르가 살던 시대엔 화가가 되기 위해선 샬롱전을 통과해야 할 만큼 샬롱전은 매우 중요한 것이였다. 그러나 르누아르와 친구들은 샬롱전 눈치 볼 것 없이 자신들끼리 ‘무명 예술가 협회 전시회’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전시회 역시 처음에는 인기가 있지 못했지만, 나중엔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서 르누아르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파리 여성들의 패션도 싹 바뀌었는데, 이걸 보면서 난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어떤 신발을 사자 사람들이 모두 그 신발을 산 것이 르누아르의 그림 속 패션을 사람들이 다 따라한 것이 윤석열 대통령과 비슷했었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화가계의 선구자인 것 같다. 나도 르누아르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난 지금까지 르누아르의 작품은 책으로만 봤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오랑주의 미술관, 워싱턴 필립스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등 여러 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나중에 코로나가 끝나면 한 번 가봐야겠다. 이번에 삼성 이건희 회장님이 돌아가시면서 기부하신 작품으로 6월까지 전시회를 하는데, 거기에 르누아르 작품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이 전시회 만큼은 꼭 가보고 싶다. 제발 르누아르의 작품을 볼 수 있기를...
인상파 화가 탄생기
‘빨간 모자를 사랑한 르누아르’를 읽고
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인 르누아르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다. 책을 읽어보니 가장 먼저 딱부리 영감이 나왔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딱부리 영감을 무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르누아르는 친구들과 함께 딱부리 영감네 우물에 낙서를 하러갔다. 한참 그림을 그리다가 딱부리 영감네 손에 잡히고 말았다. 르누아르는 영감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르누아르가 어릴 적에 이미 그림에 관심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굉장히 말썽꾸러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 후 아버지가 딱부리 영감에게 르누아르를 데려갔다. 아버지가 집에 가시고 나서 딱부리영감은 르누아르에게 접시에 꽃과 나무를 그리라고 시켰다. 르누아르는 그림을 다 그리고 집에 와서 도자기 그림 말고 꽃과 사람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사실 딱부리 영감은 올르왜 선생이라고도 불렸다. 어느 날 올르왜 선생은 자신의 집으로 르누아르를 초대했다. 그곳에서 르누아르는 올르왜 선생이 화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올르왜 선생은 르누아르에게 유화 물감을 선물했다. 난 이 장면에서 올르왜 선생이 나쁘다는 생각을 지우게 되었다. 며칠 후 올르왜 선생은 르누아르의 부모님께 미술을 시키라고 말했다. 그러자 르누아르도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르누아르가 미술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
1861년, 20세가 된 르누아르는 에코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르누아르는 글레르 선생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르누아르는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 받다 시뇰교수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런데, 르누아르가 그 쪽지를 삼켜 쪽지를 없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르누아르가 어떻게 쪽지를 삼킬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마 이런 일을 겪었기 떄문에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된 것 같았다.
며칠 후, 르누아르가 모네와 함께 그림을 그리러 갔다. 그곳에서 양산을 쓴 아가씨를 발견하게 된다. 르누아르는 아가씨에게 반했다. 하지만 이 아가씨는 시슬레의 아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르누아르는 친구들과 함께 ‘무명 예술가 협회’ 전시회를 연다. 그런데, 르누아르에게 징집 명령이 떨어져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무명 예술가 협회’ 전시회가 열렸다. 여기서 인상파란 말이 생겼다. 나는 인상파라는 말이 어디서 생겼나 궁금했었는데 모네의 <인상, 해돋이> 라는 그림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새로웠다. 만약에 나도 화가가 된다면 르누아르처럼, 아니 르누아르보다 더 유명한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상파 대표 화가 르누아르
`빨간 모자를 사랑한 르누아르`를 읽고
르누아르는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인 리모주 지역은 도자기로 유명한 곳인데, 아버지는 재단사, 어머니는 재봉사라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4살 때 파리로 이사를 갔다. 처음에는 올르왜 선생님을 만나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첨화 직공을 배웠다. 르누아르가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르누아르의 부모님은 첨화 직공이 확실한 돈벌이라고 반대하셨다. 하지만 올르왜 선생님이 르누아르에 그림 솜씨를 보고 미술 학교를 보내라고 하셨다.
나라면 르누아르의 부모님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과거 가난에 찌들리는 삶을 겪고도 다시 그 길로 들어가는 건, 사람이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 것이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미술학교에 입학해도 형편이 좋지 않아. 물감조차도 사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져, 버린 물감을 찾았다. 그 순간 모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르누아르와 모네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바지유, 시슬레도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 후 글래르 선생님이 살롱전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시슬레는 “살롱전에 낙선하면 아예 화가의 꿈을 접으라는 거군!" 이라 말하고 르누아르는 "지름길에 종류도 참 다양하군. 가난의 지름길 화가의 지름길, 뭐가 이리 복잡해!"라고도 말했다. 르누아르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루브르 미술관에 들어가 유명한 미술가의 그림을 보고 비법을 찾았다. 그런데 미술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르누아르에게 수근덕 대자, 르누아르는 애써 귀를 닫고 비법을 찾는데 집중한다. 학교에 오자, 시뇰 교수를 만났다. 시뇰 교수는 아주 악명 높은 미술가인데, 시뇰 교수가 강의를 하는 중 르누아르의 친구들과 르누아르가 쪽지를 돌리다가 시뇰 교수가 그 장면을 목격해 “거기 너희들! 모두 자리에 일어나!”라고 말했다. 이 때 르누아르가 쪽지를 꿀꺽 삼켰다. 기침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는다. 숨을 못 쉬어서 르누아르가 기절하자, 시뇰 교수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간다.
나라면 르누아르처럼 미술관에 그림을 당당히 그리지 못했을 거다. 부끄러움, 남들의 시선이 겹쳐 엄두도 못 냈을 텐데, 그런면에서 르누아르는 정말 그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뇰 교수가 나를 봤을 땐, “전 아닌데요”라고 오리발을 내밀었을 텐데, 친구들을 위한 의리가 대단한 것 같다. 나도 르누아르의 좋은 점을 본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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