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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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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02g | 128*188*20mm |
ISBN13 | 9788997918249 |
ISBN10 | 8997918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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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저자의 병원을 드나들어 본 환자 중 하나다. 내가 본 의사가 이 책 안의 저자와 일치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짐작해 온 그런 의사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저자에겐 대단히 죄송한 얘기지만, 이 책은 의사로서의 저자를 말해주는 데 절반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책 내용이 충분치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환자로서 만난 의사인 저자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 단지 편을 들어주는 것 이상의 무엇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편 들어 준다는 것'은 사실 언어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십여년째 대책없는 건강악화로 여러 양방, 한방 할 것 없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나는 우연히 저자가 있는 병원에 들르게 됐다. 내 맥을 짚어 본 뒤 문진을 통해 나의 병력과, 그 당시 먹고 있던 양약의 처방전을 보여달라고 한 뒤, 그 약들의 목록을 일일이 기록한 뒤 뚫어지게 그 차트를 들여다보며 한 숨을 쉬던 유일한 의사. 그리고 눈을 들었을 때, 무표정하게 앉아 있던 나를 말없이 쳐다 보았다. 그의 눈빛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겠어요."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덤덤했고, 슬퍼 보이는 건 저자였다.
-책 리뷰를 쓰려했는데, 자꾸 '저자리뷰'를 쓰는 꼴이 되고 있다. 할 수 없다.- 그리고 한두 번 치료를 받다가 내 상태는 이미 의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처지이고, 공연히 피차 끝도 보이지 않는 싸움으로 그를 괴롭게 할 수는 없다는 양심때문에, 그를 찾았다. "그냥 저를 포기해주세요. 더이상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이만 저를 포기해 달라고 말하려고 왔어요"라고 말했었다. 그런 나를 몹시 가여워(?, 또는 불쌍해?)하는 눈으로-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말없이 듣고 앉아 있다가, 이번이 마지막 치료라며 일어서는 나에게 "괜찮아요. 나는 **씨를 끝까지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그렇게 내 편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의 여러 이야기는 생략한다. 여기선 책 얘기를 해야 하니까. 아무튼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그 극심한 악성, 만성 탈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됐고, 우울증에서 헤어나는 중이고, 이 정도라면 인생은 더 살아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 지독한 무기력증에서 거짓말처럼 해방됐다. 그는 나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즈음에 (두 달이 되지 않은 사이) 이 책 소식을 들었다.
책을 읽다보니, 내 치료 중 저자인 그가 간호사들과 주고받던 용어가 정확히 어떤 말인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의료용어란, 일반 환자들에게는 암호와도 같아서, 사실 일일이 캐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암호에 따라 처치해 주시는대로 따르기만 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도 매우 자상하고 도움이 됐다. 이 책은 재미있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다소 문학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좀 불만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의사로서 어떤 식으로 환자를 대하는 지, 환자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아주 일부만 표현이 된 정도다.
나는 그간 양방, 한방을 막론하고 아주 많은 병원과 의사들 사이를 떠돌았다. 그들이 낸 다양한 유형의 책도 접해 왔다. 대개는 서로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 환자들의 사례와 스토리를 열거해 놓고, 그 증상과 상담을 통해 알아낸 (부분적인) 발병 원인, 그리고 자신의 처방, 성공적인 결과 등을 차례로 엮는 식이다. 에세이로 쓴 업적보고서라고 하면 좀 심한 얘기가 될까? 독자로서는 어쨌든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읽는 재미로 페이지를 넘기기는 하지만, 독자 본인과 공통적인 증상이나 문제가 없을 경우, 다 읽은 뒤 남는 게 별로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기존 의학 에세이와 좀 다른 이야기 방식과 내용을 갖고 있어서 좋다. 그리고 의사라고만 부르기엔 아까운 필력, 문장력, 문학적 분위기 등등. 여운이 있다.
이 책을 읽었거나 읽고 있을 다른 독자들, 또는 다른 예비 독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도 있다. 이 책을 읽고서 '편들기'의 말하는 방식만 베껴가진 말았으면 한다. 내 경우, "나는 끝까지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이라던 저자의 선언보다, 나를 이만 포기하시라고 말하는 내게 날아온,..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주아주 어떠어떠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서 오히려 "이 분은 내 편이구나"란 메시지를 강력히 받았으니까.
저자에겐 거듭 죄송한 소리인 줄 알지만, 의사로서의 저자가 가진 마음과 이야기에 비하면 이 책은 좀 부족하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있는 의학 에세이서 중엔 가장 흡족하다. 특히 관절염, 노환 그런 한의원 단골질환이 아니라, 한방과 전연 상관없을 것 같은 우울증, 불면증 환자인 내겐 말이다. 한의원을 신뢰하는 환자들뿐 아니라, 양방에서만 길을 찾고 있을 정신과적 질환의 환자들에게 특히 이 책과 저자의 메시지를 추천하고 싶다. 나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환자들의 편을 들어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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