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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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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58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49520 |
ISBN10 | 8954649521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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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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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전경린, 2017, 문학동네)
-그.녀.가. 돌.아.왔.다. 전.경.린.이.
전경린, 그녀가 돌아왔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이라는 가장 긴 제목을 들고서
다시 심장을 열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가 낯설다. 마치 뜨겁게 끌어안던 애인이 어느날 냉랭한 표정으로 거리를 두고 앞자리에 덤덤히 앉아 여전히 뜨겁게 바라보는 상대에게 덤덤히 입을 떼듯이..그렇게 그간의 관계를 무위로 끌어다 놓는 원치 않는 성숙을 한가득 담고.. 자리에 돌아왔다.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옛사랑에 대한 예의와 반듯함 때문에 자리를 끝내 떨치고 일어날 수 없었던 아득한 과거의 그때처럼, 난 이 책을 펼치고 몇 장 못 넘겨 가슴이 아득해지고...시렸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줄 몰랐어요. 당신 손을 잡고 당신 눈길을 따라가느라, 이렇게 높은 곳에 올려진 줄도 몰랐어요. 날개라도 달린 듯..... 그런데, 당신은 없고 이렇게 높고 외딴 곳에 나만 남겨졌어요. 세상은 나를 향해 일제히 불을 꺼버렸는데, 나 혼자 어떻게 내려가나요?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 내가 한 발도 못 움직일 거라는 거 당신도 알잖아요...” (물의 정거장에서)이렇게 욕망의 속내를 고스란히 그려내며 온통 사랑에 매달리던 그녀가
“그때는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전부였다는 말 이외엔. 사람 사이엔 함께하는 시간의 양과 깊이를 채워야 하는 관계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현실의 모든 조건이 비켜간다 해도, 둘은 정해진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타인들이 서로의 삶을 있는 힘을 다해 포개는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과 꿈과 욕망이 만들지 않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이마를 비추는에서)이렇게 차분하게 관조하는 사람이 되어 그 열정을 의심하는 자로 달라졌다.
이 소설엔 작가의 전작과의 변화만큼이나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의 서사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처지, 두 개의 세계가 아무 관계없이 내용의 씨줄과 날줄로 섞여 있다. 글의 스타일도 묘사도 심지어 책장을 넘길 때 맞틀 수 있던 냄새마저 달라졌다. 인물의 고백보다는 대화와 주변에 대한 묘사가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 또한 과거완 달라진 경향이다.
...사람이 사랑의 열정이 식은 후에 옛 경험을 돌아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진실의 한 조각을 발견해 지금의 내 생각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과거의 기억 그대로를 실체로 인정하고 꼭꼭 숨겨두는 것도 삶의 현명한 처신이 아닐지.
작가는 이 소설에서 유년의 기억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심지어 유년 시절의 동네 소꿉친구들을 현실의 자리로 불러내선 기어이 그들의 민낯을 알고 나서야 냉정히 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유년 시절의 ‘도이’는 기억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요양병원에서 병든 부랑자로 늙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은 모두 어느 장소에서 아래로 추락하거나, 어느 순간 인생의 무대에서 돌연히 사라지거나, 잊히거나, 죽음이라는 장막 뒤로 꽁꽁 숨어버린다.
“나는 언젠가 할말이 있었다. 도이야, 너를 줄곧 생각했다.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사람이 줄곧 그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 것이다. 늘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한 것이다. 평생 그럴 것이다....기억한다. 나의 진실은 이것뿐이다. 기억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영상들, 끊어지는 장면들, 흩어지는 표정들. 그러나 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깊다. 나는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줄곧 도이를 생각해온 것만 같다....” 무엇 때문에 유년 시절의 그를 잊지 못한 것인지 소설은 끝내 그것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전경린, 그녀는 왜 이렇게 그녀답지 않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꺼내고 극복하는 제의를 신작 소설에서 펼친 것일까. 등장 인물이 자신의 어머니와의 오래 묵은 상처를 극복한 뒤에 급작스럽게 포옹을 하며 모든 걸 이해해버리는 에피소드는 신파적인 위로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을 인정해버린 결과인가. 설마 “꺼져버려, 난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외치던 그녀가 몇 년 만에 이렇게 갑자기 바뀌었다는 말인가.
이 소설에서 쉽게 화해하고 이해하고 한걸음 물러나는 인물을 그린 전경린은 내게 마치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생경하고 서운했다. 간간이 소설 한 귀퉁이마다 등장하는 현실의 사건들도 과거의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이라면 절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면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을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무언가 빠져버린 넋’인 양 뜬금없고 생뚱맞게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스크랩하듯 다루고 있다. 그건 굉장히 안 어울리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적으론 끝내 전경린이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 이 소설을 읽는 사나흘 내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떨리고 행복했다. 아마 재기발랄하고 귀기어린 누이가 안 어울리는 수녀복을 입고 점잔을 빼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어쩌면 여전히 새빨개진 볼을 부여잡고 산등성이를 헤매고 있는 누이를 만날까봐 걱정했는데 그것이 지나친 기우였음을 알고 안심이 된 남동생처럼.
,,,독자로서 가학적인 즐거움을 예상한다면 더 치열하고 상처입은 인물이 그려져 가슴을 할퀴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전경린, 전경린이라는 작가마저 결국 시간이 흐르니 다소 차분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모두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이젠 나의 누이가 그녀만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사람살이의 어둠을 다 뚫고 나온 것이려니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굳이 곁에 누가 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이 혼자서도 잘 살아가겠다는 결기가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현명해질수록 내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것처럼 까닭 모르게 아쉬운 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래도,
...전경린, 그녀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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