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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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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9쪽 | 302g | 148*210*20mm |
ISBN13 | 9788952216472 |
ISBN10 | 8952216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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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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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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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렵고,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국사 책이 마르고 닳도록 외워가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 중에서 재미있다는 드라마가 사극인 경우가 많아서 TV를 통해서 공부 아닌 공부를 꽤 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드라마 중간에 나래이션으로 깔리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때면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검색해보기까지 합니다. 보통 드라마 내에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주연급으로 매번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왕입니다.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판을 크게 키워야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역사 자료에서도 그렇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구요. 각 왕들마다 당시대에 얽힌 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고, 시행했던 정책들이 후세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해서 검색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설명 이외에 순종이 무엇을 했고 어떤 왕이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보다 순종 주변에 있었던 친일 인물들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만 나왔습니다. 순종의 생애와 활동사항에 대한 설명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만 나오다니, 무엇인가가 이상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박영규 님도 머리말에서 이전에 집필했던 책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순종에 대해 단 한 문장의 표현으로 끝냈었고, 더 이상 그의 행적을 묘사하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떤 사람이었단 말인가. 부끄러운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모두가 입에 담기를 꺼려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이야기가 <길 위의 황제>에 담겨져 있습니다.
<길 위의 황제>는 소설입니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려는 차가운 머리, 그리고 상상을 통해 한 인물을 재조명하려는 따뜻한 가슴이 어울어져 만들어진 박영규 님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소설이긴 하지만 기승전결의 흐름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꼭 기승전결의 극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도 않거니와 순종의 일생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일생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매 순간이 위기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계속해서 말이죠. 오히려 죽음이 그에게는 해방과 자유였습니다. 책에서도 죽음의 순간을 '편안했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순종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본이 고종을 강제로 폐위시켰고, 그 뒤를 이어 오른 황제입니다. 아니, 황제였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즉위 즉시 한일 합병이 되었고, 모든 주권은 조선총독부가 가져갔기 때문에 말뿐인 왕이었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회유와 압박을 통해 강제로 이루어진 일이었고, 사방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눈에 의해 만천하에 자신을 드러내 놓은 채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던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충신이든 역적이든 따지고 보면 생존이 목적이었다. 그래, 목숨 앞에서 의연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자들도 모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일 뿐이지. 약한 것이 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나약함이다. 나라 잃은 군주가 충성스런 신하를 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이다. 가자들은 단지 충성을 바칠 주군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주군을 찾은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그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35쪽)
그렇게 순종이 나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소설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순종은 어미인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사건을 경험했고, 고종과 함께 아관파천을 겪었으며, 일본인과 맺으려 했던 세자의 결혼에 반대하던 아비의 의문사를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위해 움츠려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종이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공민왕의 이야기를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동생 유길에게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국엔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남은 사람이 곧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군함따위가 아니다. 진성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무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기가 없다면 사람이 무기가 되면 되는 것이다. (114쪽)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
역사의 굴레를 짊어지다 끝내 잊혀져버린 한 남자.
그런 생각들이 오고가면서 순종은 도쿄를 방문합니다. 오라, 가라 한다고 한 나라의 왕이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한탄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기차와 배에서 같이 동행하게 된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오로지 순종은 듣기만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대부분이 순종의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순종이 어떠한 생각을 가진 왕이였는지 알 길이 없었고, 남겨진 것이 많이 있질 않나 봅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친일분자이기에 일본을 칭송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아득한 존재였다. 그 사실을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161쪽)
처음 여행을 나섰을 때 순종은 동행하는 주위의 인물들 때문에 불편해합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뱃멀미와 지병 때문에 고생을 합니다. 또 일본왕에게 굴욕적인 절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막상 도쿄에 도착하고 일본의 왕을 만난 뒤로는 그 모든 괴로움들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도쿄라는 도시를 보자마자 일본이 거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산항에서 허세를 부리며 일본인들에게 보이기 위해 갖가지 제를 올리도록 명한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도쿄를 보고서야 세상을 배우고 힘을 느끼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으로 바다를 경험했다고 하니,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 왕이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두려움, 그리고 세월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반응 뿐이라 갑갑했습니다.
적들을 안심시켜라. 비수를 품어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그런데 죽어버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몫이 있기 마련이네. 나는 지금 내 몫을 다하고 있는 중이네. 나라와 백성을 빼앗긴 폐왕으로서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이렇게 갇혀서 사는 것이네. 이제 왕좌는 그저 감옥일 뿐이네. 창덕궁도 감옥일 뿐이네. 내가 입은 이 화려한 옷들이 모두 죄수복이네. 아니 나의 모든 살갗이 죄다 죄수복이네. 나는 지금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네. 죄인이니까, 이렇게라도 살아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네. (235쪽)
그렇게 굴욕적인 일본 방문을 마친 순종은 돌아와서도 이렇다할 업적없이 창덕궁에서 조용히 지냅니다. 위에서 말한 그가 생각했던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생존하기. 그리고 폐왕인 자신의 죗값을 감옥같은 궁궐에서 치르기. 그런데 그것 마저도 끝까지 이행하지 못합니다. 일본이라는 큰 산은 조금식 금이 갈 것이고, 살아남은 자들로 인해 세월이 독립을 이루게 해줄 것이라는 그의 소극적인 독립운동은 죽음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토록 유길에게 공민왕 이야기를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기를 다짐했건만, 그의 허무한 죽음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음을 통해 개인적인 자유와 해방을 맞이했다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행이고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이완용.
이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편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를 현명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생존을 위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소신있는 행동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비록 생존의 대상이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굴욕적인 역사가 생겨난 것이지만 말이죠. 말 장난일지도 모르지만,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모두의 입장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할지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명확하게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래 인용 글은 이완용이 순종에게 했던 말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이런 말만 듣고 당시대에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백성이 무지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세상을 읽지 못해 백성을 무지에 가둬놓은 황실의 무능함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이 강대국의 발 아래 놓인 것은 황제가 계몽되지 못하여 과거의 인습과 미개한 학습에 연연한 탓입니다. 오늘날 이 모든 변고와 몰락은 모두 황제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온 백성이 가난과 무지로 고통받고 있는데 황제만이 거대한 궁궐에서 사치와 향략에 젖어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그 황제의 위에서 내려와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십시오. 그것만이 백성에게 지은 죄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입니다. (86쪽)
소설 <길 위의 황제>에서 모두가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친일파 인물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본 사람들 모두에게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박영규 님의 소설가다운 감수성 때문에 그렇게 보여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고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나쁘게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만행과 그것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고통을 말하는 역사적 사실을 떠나서, 소설로써 이들의 삶과 인물을 바라보는 생각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안중근을 생각하는 이토의 양아들 히로쿠니의 시선과 일본 왕 요시히토를 보고 느낀 순종의 동병상련, 그리고 조선 통감 이토와 데라우치의 인물됨 같은 것들에서 말입니다.
모쪼록 이 소설이 그를 기피하고,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했던 나 같은 이들에게 그를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머리말 중)
한편 소설은 소설이고, 역사는 역사입니다. 결국엔 살아 남은 자가 역사를 쓰고, 소설도 쓰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살아 남았어야 하는데 살아남지 못한 순종 황제가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살아남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역사에서 생존이 가장 큰 무기이자 방패이고, 힘이자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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