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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1991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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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7쪽 | 429g | 152*225*20mm |
ISBN13 | 9788935201655 |
ISBN10 | 8935201650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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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진(선생님의 필체까지!)
금각사(깅가쿠지)를 중학생 때 만났다. 여행 좋아하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그가 직접 찍은 사진을 얻었다. 갖고 싶은 사진 두 장을 선택하라고 해서 첫 번째로 고른 사진이 바로 금각사였다. 물론 선생님이 설명해주기 전에는 이름조차 몰랐지만, 묘한 금빛이 일순 나를 사로잡았다. 금빛의 정체가 진짜 금이라니!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를 오래전에 구입해두고 펼치지 못했다. 창비세계문학 일본편 ‘이상한 소리’를 읽고서야 먼지 잔뜩 앉은 ‘금각사’에 손을 뻗었다.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제목이 되어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중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거미줄을 만들었다.
작은 절 주지였던 아버지로부터 금각사야말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주입받아온 ‘나’는 처음 본 금각사가 실망스러웠지만 금각사에 도제로 들어가면서 점차 불멸의 아름다움이 된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은 견실해진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기댈 데라곤 없던 나는 건축물의 완전성이 믿음이 되어간다.
허나 함께 생활하는 도제 쯔루가와는 금각사에 대한 동경이 전혀 없음을 눈치 챈다. 머잖아 나는 곧 깨닫는다. 그는 나처럼 못생기지도 말을 더듬지도 않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정맥이 비치는 흰 살결이 금각사의 금빛만큼이나 눈부신.
내가 너무 오랫동안 깅가쿠를 응시하고 있자, 진력이 난 쯔루가와는 발 밑의 자갈을 집어 투수같이 산뜻한 폼으로 교코 지에 떠 있는 깅가쿠의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파문이 수면의 물풀을 밀치고 번져 나가면서 순식간에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이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금각사의 파멸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연정을 품은 우이코의 죽음, 빛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빛에만 어울리던 육체 쯔루가와의 죽음은 나의 빛으로의 통로를 차단하고 순간인 인간의 미와 불멸의 금각사의 미가 대립한다.
인간의 멸망하기 쉬운 모습에서 도리어 영생의 환상이 떠오르고, 깅가쿠의 불멸의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멸망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인간처럼 필멸(必滅)한 것은 근절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깅가쿠와 같이 불멸한 것은 소멸시킬 수가 있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여기에 눈뜨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깅가쿠를 내가 불태워 버린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이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줄여 버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하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했던 것일까. 내가 아름다웠더라면 금각사를 이처럼 숭배할 수 있었을까. 절대적인 미를 파멸케 하는 행위는 정당성을 갖게 된다.
소극적인 파멸, 즉 공습으로 금각사가 불타길 바랐으나 교토는 불행하게도 공습 받지 않았다. 어쩔 도리 없이 적극적 파멸, 방화를 선택한다. 불타오르며 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금각사와 자살하려는 마음을 접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듯 담배를 피우는 나, 둘 사이에 기나긴 대화가 시작되는 듯하다.
아름다움을 끔찍이 경애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파멸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유를 느끼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연정을 품었던 우이코가 그의 연인으로부터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재빨리 다가가지 않고 깜빡 잠이 든다. 얼핏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고 새들만이 맑은 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금각사에 불을 놓고 산에 오른 나는 스르르 잠이 든다. 곧 의식을 회복한 것은 새들의 요란한 소리 덕분.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파멸하고서야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최고의 행위는 다름 아닌 파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미처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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