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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8년 0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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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4쪽 | 740g | 152*224*25mm |
ISBN13 | 9791186542491 |
ISBN10 | 1186542497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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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정당정치를 위해
- 이덕일, 『조선 선비 당쟁사』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나의 의견이 지배하는 사회는 말 그대로 닫힌 사회이다. 사람들이 내보이는 다양한 의견을 막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전체주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통해 우리는 전체주의가 정치에 도입되면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회가 형성되는지 알고 있다. 전체주의는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를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빨갱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로 여전히 정치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정당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자행되는 정당 우선의 당리당략들을 생각해 보라. 국민을 위해 정당이 있는 게 아니라 정당을 위해 국민이 있다. 국민은 선거철에만 잠시 호명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개돼지, 쥐새끼와 같은 말로 국민들을 호명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걸 보면 공공성을 상실한 정당 정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폐해를 내장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덕일이 지은 『조선 선비 당쟁사』(인문서원, 2018)를 읽으며 우리나라 정당정치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당정치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이 많으면 의견도 다양할 것이고, 자연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양한 정당들이 생겨날 것이다. 각각의 정당들이 당략에서 벗어나 공공성을 중시한다면, 정당 간 경쟁은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겠다. 문제는 정당이 사익(私益)에 치중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겉으로는 공익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사익을 챙기는 정당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들은 항상 국가와 국민이라는 말을 앞에 내세우지만 정략을 사용하는 도구로만 국가와 국민들을 이용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이라는 말에는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조선 시대에 벌어진 당쟁사를 살핌으로써 우리 시대 정당들이 가야 할 길을 에둘러 제시한다. 훈구파 세력을 비판하는 공감대를 지녔던 사림파가 당쟁을 거치며 당략에 치우친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신하가 임금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조선 특유의 사회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여기서 신하는 사대부를 가리킨다. 왕조 국가에서 권력은 왕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왕이 어떤 의향을 내비치느냐에 따라 사회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 선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정을 장악한 사림파는 ‘이조전랑(吏曹銓郞)’이라는 정5품 관직을 둘러싼 권력 다툼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다. 이조전랑은 삼사(三司 : 사헌부·사간원·홍문관) 관리의 추천권을 가진 자리로 품계에 비해 그 권한이 큰 자리였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분당(分黨)이 이루어졌다는 건 그만큼 사림 세력이 권력의 단맛에 빠져들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에 갔다 온 통신사들이 국가 안위보다는 당략에 치우쳐 일본의 상황을 보고한 사례에도 나타나는 대로 당대 사대부들에게 정당은 국가에 우선한 것이었다.
사대부들은 좋은 임금보다는 자기 당을 지원하는 임금을 원했다.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친 선조를 대신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한 광해군을 그들은 자기 당과 뜻이 맞지 않다고 하여 몰아냈다. 인조반정으로 세워진 서인 정권은 사대주의 사상에 집착하여 명나라를 숭배했다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들은 명분만 내세웠을 뿐, 그것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러도 그들은 당략을 포기할 줄 몰랐다. 임금의 의향이 자기 당에 머물라 치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여 몰살해 버렸다. 지은이 말마따나 당쟁은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살육을 낳았다. 임금의 권위를 넘어서는 신하들이 제 뜻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꿈을 그들은 이러한 개인의 욕망으로 변질시켜 버린 셈이다.
대동법(大同法)만 해도 그렇다. 이 법은 임진왜란 중에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실시한 작미법(作米法)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작미법이 전시 체제에 잠시 운영된 정책이었다면, 대동법은 평시에 논의가 진척된 정책이었다. 대동법은 쉽게 말하면 세법(稅法)을 가리킨다. 세금을 어떻게 걷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인 것이다. 당시 세금을 낼 의무는 양민들이 지고 있었다. 실제 땅 주인인 양반 지주들은 세금을 낼 의무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말이다. 자연 무거운 세금을 견디지 못한 양민들이 대거 도망치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대동법은 양민들에게 부과되는 잡다한 공납을 쌀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땅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내는 정책이었으므로 양민들에게는 아주 유리한 세법이었던 것이다. 땅이 많은 양반 지주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고 하는 건 똑같은가 보다. 양반들이 반발하다 보니 대동법은 처음 제기된 이후 100여 년 동안 일부 지역에서 시험조로 실시되기만 했다. 재산이 많으면 당연히 세금도 많이 내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지금도 요원하기만 하다. 기업이 내는 세금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세력도 있는 걸 보면 어느 시대에나 세금 문제는 곧 세계관 문제와 이어져 있는 듯도 싶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세력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인이나 소론, 남인 등에 비해 이들 정당이 조선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인들은 대명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조선 왕을 단지 제후로만 생각했다. 조선 왕이 제후가 되면 명나라 황제 입장에서 조선 임금은 사대부인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왕 위에 정당이 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조반정 이후에 펼쳐지는 왕실의 비극은 어찌 보면 정당을 키우는 구실로 왕실을 이용하려는 서인들의 사심(私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소현세자, 사도세자는 이러한 서인=노론과 다른 길을 걸으려 하다가 제거되었다. 경종 독살설이나 정조 독살설에도 드러나듯 신하들이 마음에 차지 않는 임금을 죽이고 마음에 드는 임금을 세우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조선 왕조는 이씨 왕조가 주인이 아니라 사대부가 주인이라는 주장은 이 자리에서 뻗어 나온 셈이다.
정조 1년(1777년) 7월. 국왕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청(扈衛廳) 소속의 호위(扈衛) 군관 강용휘(姜龍輝)는 전흥문(田興文)이란 사내에게 전립(戰笠)을 쓰고 칼을 차게 해 호위군관처럼 변장시킨 후 입궐시켰다. 전흥문이 강용휘의 조카인 대궐 별감(別監) 강계창(姜繼昌)의 방을 찾자 강계창이 “왜 칼을 찾고 있소?”라고 물었다.
“존현각(尊賢閣) 위에 올라가려 하는데,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찌르려는 것이오.”
강계창은 짐짓 놀라는 척하면서 “나까지 연루돼 처형되겠소.”라고 말했다. 존현각은 정조의 침실이 있는 곳이므로 정조를 암살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날 정조가 거처하는 편전의 정문을 지키는 인물이 강계창이었다. 강용휘는 딸인 궁녀 강월혜를 불렀고, 강월혜는 정조 암살 계획을 방주(房主)인 상궁 고수애(高秀愛)에게 전했다. 대비 정순왕후 김씨 쪽 사람이었던 고수애는 반색했다. 궁중의 청소부인 조라치(照羅赤) 황가(黃哥)도 가담했다. 위로는 대궐의 가장 웃어른인 대비 정순왕후부터 국왕의 호위군관과 내시·상궁·궁녀에서 청소부까지 모두 가담했으니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밤이 깊자 강용휘와 전흥문은 존현각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 잠든 정조를 살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야심한 시각에 정조가 잠을 자지 않고 독서를 하고 있던 바람에 계획이 어그러졌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노론 벽파의 암살 위협 때문에 밤을 새워 독서하는 날이 많았다. 정조는 보장문(寶章門) 동북쪽 행랑채 지붕 위에서 들리던 소리가 존현각 지붕 위에 와서 멈추는 것을 느끼고 소리를 질렀고, 내시들과 액정서(掖庭署)의 액예(掖隸)들이 몰려왔다. 지붕 위에 올라가 보니 기와가 뜯겨지고 자갈·모래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자객이 정확히 존현각 지붕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궁내에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379~380쪽)
정조 1년, 1777년 7월 정조를 암살하려는 사건이 수포로 돌아간다. 신하들이 임금을 암살할 정도로 조선 사회는 왕조 국가로서 그 위상을 상실했다. 조선은 왕 아래 양반과 양민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아니라 양반 사대부들이 왕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로 변했다. 사대부들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왕은 살아남거나 죽을 수 있었다. 숙종처럼 당파를 상황에 따라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한 임금도 있었다. 하지만 지은이는 숙종의 이런 환국(換局) 정치를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우리에게는 인현왕후 민씨와 장희빈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아내인 왕비를 교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강화된 왕권이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로 이어지지 못한 점에 있다. 지은이 말마따나 숙종은 왕권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다. 왕권 강화를 통해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의지는 없었다는 얘기다. 아들(경종)을 낳은 장희빈을 총애하다가 다시 인현왕후를 왕비로 복위시키는 과정에는 거대한 그림 없이 상황에 따라 당파를 이용하는 임금의 헛된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사대부들이 당략에 따라 움직였다면, 대다수 임금들은 신하들에게 끊임없이 휘둘리며 왕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 광해군, 경종, 정조나 흥선대원군처럼 개혁 정치를 표방하는 군주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신하들의 막강한 힘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지막 노론인 이완용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는 상황으로 지은이는 이 책을 맺고 있다. 당략이 개인의 욕망으로 화하는 자리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사대부들이 생겨난 것이다. 자기 당에 대한 집착이 조선의 멸망을 부추기는 사례는 사실 당리당략에 빠져 국민의 살림살이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환기한다.
정당이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면 그 사회에는 당연히 미래가 없다. 정당은 공익 집단이다. 사익을 버린 자리에서 정당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존을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정당의 역할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정당이란 곧 한 사회를 이끄는 여론을 형성하는 집단이 아니던가? 조선 사회에서 펼쳐진 당쟁사를 들여다보며 우리 사회 정당정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새삼 느낀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것은 공익이다. 이 당연한 말에 우리 사회가 내보이는 치부가 들어 있다. 공익을 무시한 정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정당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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