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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23일 리뷰 총점9.8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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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98쪽 | 276g | 148*210*20mm
ISBN13 9788932022543
ISBN10 893202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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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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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이후 『투명사회』, 『권력...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이후 『투명사회』, 『권력이란 무엇인가』, 『에로스의 종말』, 『고통 없는 사회』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저자는 최신작 『서사의 위기』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뉴스라는 스토리를 좇느라 방향도, 의미도 잃은 채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삶을 ‘서사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스토리 중독에서 벗어나 내면의 서사를 회복하고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역자 : 김남시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베를린 훔볼트 대학 문화학과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모스크바 일기』 『노동을 거부하라』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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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권력의 윤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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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권력이란 무엇인가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o****2 | 2016-04-10 | 신고

내용이 매우 구조적이고 분량이 적은 문고판임에도 불구하고 내 공부를 위해 서평을 길게 남겨둔다. 스크롤 압박이 있으니 주의 바란다.

 

 

최근에 “에로스의 종말”을 재미있게 읽고 내친 김에 번역 출간한 저자 책을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단위학교에서 세밀한 통치술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2016년에 개인 연구프로젝트로 삼고 있기도 하다. 지난 겨울 좋은교사운동 정책위 캠프에서 읽은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엄밀히 말하면 나는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다 못 읽었다)의 연장선상에서 ‘권력’, ‘힘’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과 정의를 정리하고 싶었다. 꼭 윗사람, 아랫사람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단위학교 안에서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는 미시 권력을 드러내고 싶다. 이미 연구계획서를 정리할 때 역사, 권력 계보학에서 ‘미시사, 미시 권력’을 드러냈던 푸코 연구물을 공부하고 싶다고 적어낸 바 있다. 특히 후기 푸코는 (신자유주의적인) 통치성의 장단점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지금 적용하기에 유효하다. 한병철의 초기(?) 연구물일 이 책을 선택할 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이름이 푸코였다.

 

저자는 설득력 있는 구조를 세워 권력에 대한 여러 근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권력에 대한 모든 생각을 읽은 듯하다. 저자가 책 전체에서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권력과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 권력에는 우리가 생각하듯 폐해만 있지 않고 효용성도 있다, 각 권력에는 수준이나 층위가 있다(즉 좀 더 좋은 권력과 수준 낮아 효율성 떨어지는 권력이 있다)는 입장이다.

 

 

1. 권력의 논리

권력은 폭력과 자유 사이에 있다. 저자는 권력이 (강압적인 폭력)과 다른 만큼 자유를 전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 전체에서 대학원 파견 때 여러 번 강의 들었던 ㅂㄷ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자기중심, 타자중심 끊임없는 경계고침’ 이론이 떠오르곤 했다. 비슷한 주장을 읽는 듯해 이 책이 잘 읽혔다. 권력이란 자아를 타자에게 확장시키는 행위이다. 타자가 나의 의지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할수록 세련된 권력이다. 책 뒷부분에도 나오고 상술한 강의에서도 함께 고민했지만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타자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동식물을 죽여 나에게 포섭시킨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울리히 벡)16쪽.

 

그러므로 권력자 입장에서는 타자에게 거의 항상 ‘아니오’가 아니라 ‘네’라고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야 개연성 있고 안정적인(예측 가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테면 권력을 행사할 때 의사소통(책 뒷부분에서는 ‘매개’, ‘친절함’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함)이 잘 이루어져야 하며 그때 전폭적인 ‘네’까지도 가능하다.

 

"해고와 같은 부정적 제재 조치로 위협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관철시키려는 상급자의 시도는 그의 권력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권력관계는 그 매개 수준이 낮아서 쉽게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결정을 자발적으로 수용한다면 상급자는 더 큰 권력을 얻을 것이다." 32쪽.

 

그런데 권력 문제에서 나의 문제의식은 근대 이후 권력 행사 과정이 미시적, 세밀해졌다는 점이다. 저자는 권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폭력과는 다르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며 왜 권력이 미시적이어 졌는지 논리를 드러낸다. 비인간적으로 변한 권력은 때로 애초에 그 권력 작동 내용이 생겨난 이유나 상황 맥락마저도 무시하고 자동으로 작동한다. 원래 권력은 폭력적이지 않을수록 효율적이지만, 미시 권력의 이런 비인간적인 특성이 권력을 따르는 이에게 권력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는 가설을 세워본다.

"근대의 분화된 세계는 간접적이고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하는 권력의 토대를 생산해내는데, 그러한 권력 토대의 복잡성과 간접성 때문에 권력이 "무정형적으로" 작동한다는 인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명령의 지배와는 반대로 권력은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권력의 힘은 공공연한 "명령" 없이도 결정과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26쪽.

“... 조직의 논리에 따라 기괴한 일들이 요구되고 관철된다. 노동자는 매시간 똑같은 구멍을 뚫어야 하고, 입원한 환자는 몸이 아파도 아침 6시에 일어나 열을 재야하고, 교수는 중요하지도 않고 거의 늘 결론도 나지 않는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런 메커니즘의 도움으로, 폭력을 통해 동원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종류의 행위 선택지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조직에 위임될 수 있다.” (루만)35쪽.

 

최근 권보드래 선생님께서 한겨레에 학교에 대한 칼럼을 쓰셨던데 아래 내용이 바로 단위학교에서 작동하는 미시 권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했다. 행정적으로 세밀해진 제도와 규칙, 매뉴얼은 그 안에서 감시와 통제 당하는 인간들을 훈육한다. 다시 말해 제도가 인간의 언행을 훈육한다. 물론 그 규칙을 만든 권력들이 가진 특정한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요즘 학교는 규칙투성이 정글이다. 체벌이 사라졌다지만 규칙은 훨씬 촘촘해져 숨통을 옥죈다. 숙제 하나까지 학교생활기록부가 감시하고 봉사와 여가마저 자유롭지 않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기분일 것만 같다. 차라리 단판 시험, 무조건 성적으로 줄 세웠던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다. 깜박 방심하면 탈락이다. 애정 많고 욕심도 많은 부모는 혹여 자식이 미끄러질세라 맘을 졸인다. 그러다 보면 정글은 나날이 잔인해질 수밖에.”

 

이렇게 세밀해진 권력 행사 방식은 후기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에서 계보학 방법으로 통치성을 분석한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 권력은 '주권-> 규율-> 안전' 순서로 생겨났다. 주권 단계에서는 전제 군주(왕)가 눈에 보이는 (폭력에 가까운)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다. 규율 단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인간의 몸과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안전 단계에서는 인간을 인구(균일한 속성을 가진 존재들로 보고 숫자로 파악)로 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관리하고 통치하고 있다. 현대 시민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권력은(정의로운지 여부를 일단 접어두고) ‘법’과 ‘행정’이다. 루만은 법치 국가에서 권력 행사 과정을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일정 부분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는 권력을 설명할 만하다. 쉽게 말하면 국가이성은 자기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때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시민 중에는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에 대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국가를 이길 수 있는 거의 다른 효율적인 방법이 없다). 그리고 다양한 행위 선택지들은 조직에 위임되어 있다. 선택은 (자유롭지 않고) 매뉴얼에 따르듯 구조 의존적일 수 있다.

 "법치국가에는 법질서가 훼손되었을 경우 활성화되는 폭력 사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폭력의 가상화/ 부정적 제재 조치를 통해서만 자신의 결정을 관철할 수 있는 자는 별다른 권력을 갖지 못한 자이다." 34-35쪽.

"시스템은 권력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행위 가능성들을 배치한다... 시스템은 그 안에서 선택 과정이 이루어지는 대안적 배치들을 조건 짓는다." 37쪽.

“매개가 결핍되어 있는 경우에 전체는 개별자와 위압적으로 관계 맺는다. 이때 권력은 금지나 명령을 활용해야 한다. 전체는 강제를 통해서만 개별자에게 자신을 지속시킬 수 있다. 그에 반해 높은 수준의 매개가 존재할 때는 강제가 없어도 지속성이 형성된다. 개별자 스스로가 전체를 자기 스스로의 규정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전체에 대한 개별자의 관계에 있어서도 개별자에게 강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치국가에서 법질서는 개별 시민들에게 낯선 강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내린 규정으로 여겨지며, 그것이 시민을 비로소 자유로운 시민으로 만든다. 반대로 전체주의 국가에서 전체는 개별자들에게 낯선 규정으로 체험된다. 이러한 무매개성은 여러 강제를 만들어내는데, 이렇게 강제된 지속성은 금방 부서지기 쉽다.” 39-40쪽.

 

 

2. 권력의 의미론

“모든 의미 구조물은 관점을 가진 가치평가들”이며, “그 덕택에 우리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원력 의지, 권력의 성장에 대한 의지 속에서 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성장하려고 의욕하는 어떤 것”은 “성장하려고 의욕하는 다른 모든 것”을 자신의 가치에 따라, 자신의 권력 증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의미에 따라 “해석”한다. 이러한 방식의 “해석”의 근저에는 “무엇인가에 대해 주인이 되려는” 의도가 놓여 있는 것이다. (니체) 56-57쪽.

 

상술했듯 저자는 근대 여러 (정치)철학자들이 권력에 단점 뿐만 아니라 장점도 있다고 주장했음을 드러낸다. 필요가 있기에 생겨났다는 말이다. 푸코는 권력이 시공간을 배치하며 질서를 부여하며, 규율권력은 은밀하고도 미세하게, 직접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그 권력은 깊이 성찰해보면 간계, 교묘함 같은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 아래 내용은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에서 계보학적으로 드러낸 통치성 이론과 유사한 주장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의 세 가지 테크놀로지”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 의미론적 작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다. 그가 첫 번째로 다루는 것은 주권자적 권력이다. 이 권력은 칼의 권력으로 위에서 아래로 빛을 비추듯 작동한다. 이 권력은 육중한 방식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복수나 투쟁, 승리라는 형태를 띤다(피, 고문... 신체에 남은 상징)...

권력의 두 번째 테크놀로지인 시민적 법률의 권력은 자신의 고유한 기호 체계를 사용한다... 여기에는 칼이 아니라 법을 만들어내는 펜이 동원된다. 이를 통해 권력은 강제적 폭력이 아니라 ‘강제적인 확실성’으로 등장한다. 이 권력은 테러가 아니라 이성을 통해 작용하려 한다. 펜은 권력을 칼보다 더 안정적인 토대 위에 세운다... 이 구너력은 주권자적 권력보다 더 안정적이다. 왜냐하면 이 권력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다시 말해 외적 강제 없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권력은 자유와 복종이 함께 일어나게 한다.

권력의 세 번째 테크놀로지인 규율권력은 상처나 표상보다 더 깊숙하게 주체 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이 권력은 신체 내부로 들어가 거기에 “흔적”을 남기며, 그를 통해 습관의 자동주의를 만들어낸다. 규율권력은 법전의 권력처럼 은밀하고도 미세하게 작용하면서도 표상이라는 우회로를 거치지 않기에 더 직접적이다. 규율권력은 반성이 아니라 반응을 통해 작동한다... (감옥이 법적 주체 아닌 순종적 주체를 형성하듯) 습관의 자동주의가 자리 잡게 되면 권력은 “더 이상 이전의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푸코는 말한다. 그렇기에 이 권력은 일상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규율권력은 칼이 아니라 규범 혹은 규범성을 통해 작동한다. 64-70쪽.

 

미시 권력의 세밀한 통치술을 드러내려고 하는 이유는 권력의 이러한 속성을 알아야 권력을 행사하는 자와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위학교에는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는 세밀한 통치술이 많다. 저자는 스스로의 선택인 듯하게 만드는 세밀한 통치술에 ‘아비투스 관습의 맹점’이 있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는 평균 인간을 만드는 통치, 감시, 보이지 않는 억압이 존재한다. 하이데거는 ‘sein= 아무도 아닌 자’라는 개념을 가져와 통치 당하는 평균 인간을 드러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타자들의 통치권이 난무한다.

 

3. 권력의 형이상학

ㅂㄷ 교수님의 ‘자기중심 타자중심 경계고침’ 이론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책 결말로 갈수록 권력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유하며 타자에게 친절함을 행사할 여지가 없음이 밝혀지지만 어쨌거나 이 부분에서는 권력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다면, 수준 높은 권력이 되리라고 주장한다. 윗사람,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면, 주체들 각자가 권력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책 내내 권력의 ‘매개 수준이 높을수록 폭력이 덜하고 효율적이며 수준 높은 권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매개’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권력을 행사 당하는 자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그 권력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있으면 그 권력은 수준 높은 권력, 효율적인 권력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아는 가장 압제적 정체인 노예제도-수적으로는 지배되는 노예가 주인보다 훨씬 많았다- 폭력 수단 자체의 우위에 근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로 연대하고 있던 노예주들의 우월한 조직, 곧 권력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 사례에 등장하는 것은 소위 의사소통적 권력이 아니다. 지배자의 전략과 조직 앞에서 노예들의 ‘견해’만으로는 어떠한 권력도 생겨나지 못한다. 노예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지도, 전략을 발전시키지도 못했다. 노예주들의 권력은 그 집단의 우월성이며, 그것은 “우월한 조직”, 다시 말해 효과적 전략 덕택이다. 이 권력은 상호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의사소통적 권력이 아니라 성공을 지향하는 집합적 권력이다.” (아렌트)140쪽.

 

4. 권력의 정치학

권력은 공간적이다(엄청 세밀하게 느껴지겠지만 작년 2학기 사회실천창의상상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학교에서 있었던 갈등 중 하나가 ‘게시물을 깔끔하게 붙이고, 기한이 지났거나 민감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은 철거하라’는 방침 때문에 일어났다. 심지어 사전 공지 없이 게시물이 철거되기도 했기에 철거하신 분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학교공간을 소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세밀한 통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또한 권력은 정보를 독점하다시피 한다(우리학교에서는 기획위 등 각종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주간업무계획’이나 메신저를 통해 통보받는다. 그러한 교육활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들을 기회를 종종 갖지 못해 교사들 간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권력을 서로에게 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분명 권력 행사를 당하는 자들에게도 ‘대항 품행’을 행사할 여지가 있을 테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아렌트 이론을 가져와 ‘공공여론’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 공론장이 필요하며 함께 말이나 행동하기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그 정점이 권력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담지하고 긍정하며 정당화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권력은 정점에 집중되어 있다 하더라도 공간의 사건, 함께함 또는 전체성의 사건이다. 개별화와 고립은 권력에 유해하다." 131쪽.

 

지난 겨울 읽었던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 생각나는 주장을 저자는 하고 있다. 권력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소통 행위가 필요하다고 나는 이해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상적이고 착하기만 한 권력 행사 과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동의와 투쟁 모두 권력의 한 속성들이며 어느 한 쪽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편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런 비대칭적 관계에서 폭력에 가까운 수준 낮은 권력을 행사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구조적 폭력을 가져와 저자는 권력에서 ‘매개’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역설한다.

"투쟁이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 이는 각 집단 구성원의 결단적인 공동행위를 전제로 한다. 논박적이거나 전략적인 행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공동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146쪽.

 "비대칭적 관계는 폭력이 아니라 매개가 결핍된 권력 형태에서 나온다. 폭력이란 매개가 제로 상태까지 축소된 특수한 권력관계를 지칭할 뿐이다. 이러한 매개의 결핍으로 인해 폭력은 소통 참여자들에게서 자유의 감정을 앗아간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들이 권력자의 지배를 완전히 승인하는 권력관계는, 그 관계 자체가 강한 비대칭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폭력관계가 아닌 것이다.

폭력과는 달리 권력은 자유의 감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은 자신의 안정화를 위해 의식적으로 자유의 감정을 산출해낸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서사의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매개의 시도이며, 그로부터 권력이 시작된다." 149쪽.

 

5. 권력의 윤리학

책에서 종종 반복하는 주장이지만 권력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타자에게 연장 시키는 행위이다. 저자 주장처럼 권력 행사 시 ‘매개, 친절함’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면, 데리다 주장처럼 ‘자기 면역성’을 가지고 권력 행사에 대해 성찰하고 숙고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권력의 장점과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테다. 다시 말해 타자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취하기, 다양함을 받아들이기, 내 기준을 절대적으로 삼지 말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정과 누구나 틀려도 괜찮다는 마음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별히 나는 이 자발적으로 권력에 따르기를 생각하면 교육 혁신을 하고 싶어 했던 선생님들이 모인 혁신학교가 생각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은 교육활동의 필요성에 납득한 교사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며 자발적으로 노력을 쏟는 건강한 권력 메커니즘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권력이 갖는 이러한 결집적 구조로 인해 권력의 윤리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권력은 중앙 집중적이다. 권력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하나로 모이게 한다. 이러한 일자로의 결집이 절대화되면 그 주위에 있거나 다수성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일자를 벗어나거나 거기에 대립하는 공간들은 폐기 장소로 탈장소화 되고 평가절하 된다. 그렇기에 이런 폐기 장소들을 어딘가에 다시 자리매김하는 힘, 곧 친절함이 권력 자체에 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분명 권력에는 매개 능력이 있으며 그렇기에 근본적으로 자유를 배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권력적인 매개에는 한계가 있다.권력은 자기중심적이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장소는 모두 자기로 향하고 자기를 주장한다...

자기의 절대적 면역성, 절대적 통치성에 바로 권력의 절대성이 있다. 그래서 데리다는 권력의 윤리를 자기성을 약화시키는 “자기 면역성”과 관련시킨다.” 158-159쪽.

 

카를 슈미트는 공간적인 권력이 법을 통해 장소 통제, 질서 잡기를 수행한다고 본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윤리적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윤리학을 말하는 이 장에서 저자는 권력자가 타자와 공간을 공유하기를, 타자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갖기를 은연 중에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의 윤리화는 장소가 자신의 자기중심적 추구를 넘어서 나아가기를, 장소가 일자뿐 아닌 다수와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도 체류 공간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권력 그 자체에는 타자성에 대한 개방이 없다. 권력을 자기를 반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160쪽.

 

다시 푸코로 돌아와 저자는 푸코의 권력 이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며 글로 푸코와 논쟁을 주고받는다. 상술했지만 푸코는 자유가 권력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선택할 여지가 있어야 폭력 아닌 권력이 가능하다. 아주 극단적인 예이지만 노예도 복종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그 권력 관계는 폭력이 아닐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노예가 자유롭게 선택하기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주장하며 "권력자에게 아무 저항도 닥쳐오지 않는 곳에서 권력은 가장 강고하다. 163쪽."고 주장한다. 푸코는 (다소 마음 편하게)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일종의 ‘놀이’처럼 그리고 있는데 이론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면 혁명과 저항이란 얼마나 유쾌할까 싶어졌다. 푸코가 당시 핫한 체제였던 신자유주의를 옹호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푸코 연구자도 있지만, 아래 내용을 참고하면 역시 자유를 추구했던 푸코는 세밀한 통치와 규율권력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비판적인 입장을 기반에 두고 이론을 전개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제 도덕을 넘어설 여지를 마련해준 ‘자기배려의 윤리학’은 권력의 윤리화에서도 유효하다.

 

"지배관계란 권력관계가 안정성을 원하고 있는 상태이다. 나아가 놀이의 개방성이 권력의 본질적 특성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개방성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띤다. 개방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킨다. 자신을 확고하게 안정시키려 하는 권력은 열린 놀이 공간이나 예측 불가능한 공간을 제거한다. 권력공간은 전략적인 공간이다. 전략적 개방성은 놀이에 내재하는 쾌락적 개방성 또는 불확실성과 다르다." 164쪽.

(푸코) "권력을 "개방적" 놀이라고 정의하고, "자유의 실천"을 강하게 요구하는 푸코의 권력 개념은 이미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 푸코의 새로운 권력 개념은 자유의 에토스에 상응한다.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법질서, 지도 기술, 도덕을 부여하고, 최소한의 지배를 통해 권력 놀이의 내부에서 유희할 수 있게 하는 에토스, 자기의 실천"인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에토스가 권력이 지배로 고착되지 않도록, 권력이 개방된 놀이로 머무를 수 있도록 감시한다는 것이다." 164-165쪽.

"푸코는 권력의 생성을 "강제적인 도덕"에서의 "해방"을 전제로 하는 "자유의 실천"과 연결시킨다. 165쪽.

"... 다시 말해 자신을 소유하는 것이다. 자유를 위한 이러한 자기배려는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배려를 함축한다... 푸코는 자기배려의 실천을 권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연결시킨다." 166-167쪽.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권위"는 정치적 권력 행사의 "내적 규제 원리"이다.167쪽.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정의’가 권력의 반대 급부에 있는 듯 제시한다. 권력(혹은 힘)을 나쁘게만 보지 않았던 니체는 반대로 정의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타자의 견해를 듣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권력 자체에는 타자의 견해를 들을 만한 친절함이 공존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정의는 모든 것을 수렴시키는 권력 구조에 대립적인 운동을 산출해낸다. 권력에는 하나를 향한 특성이 내재한다. 그렇기에 권력으로부터는 다수적인 것, 다종적인 것, 다양한 것, 부차적인 것 혹은 빗나가 있는 것에 대한 호의가 나오지 않는다. 그에 반해 정의는 “모두에게, 살아 있건 죽어 있건, 현실적인 것이건 생각의 소산이건, 자신의 몫을 주려고” 한다. 그러하기에 정의는 자기중심적이지도 중앙적이지도 않다. 니체는 한발 더 나아가 정의를 “확신의 반대자”라고 칭한다. 정의로운 자는 자기 자신보다 사물에 더 귀를 기울인다. 확신에 거리를 두는 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정의로운 자는 늘 너무 빨리 오는 자신의 판단을 보류한다. 그런 판단은 그 자체로 이미 타자에 대한 배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타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유동적으로 열어두고, 듣고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판단, 곧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제하는 자는 정의를 행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은 늘 타자를 위하는 것보다 먼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 자체로부터는 개별적인 자제가 나올 수 없다... 그 자체로서 권력은 타자를 판단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은 판단과 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174-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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