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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12년 0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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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412분 |
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1.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이 1962년에 만든 칼잡이 영화 <충신장 - 47인의 자객 : 츄신구라 Chushingura :
47 Samurai>를 보았다. 모시던 윗사람이 억울하게 죽자 아랫사람들이 앙갚음하는 이야기다.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1941년에 만든 <충신장 The 47 Ronin>을 다시 만든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아무 생각없이 칼싸움에 빠져들 수 있는 영화를 고르다 손에 잡힌 영화였다.
그런데 많이 길었다. 무려 206분이나 보아야 했다.
자리에 앉아서 세 시간 반 가까이 보는 건 엉덩이를 괴롭히는 일이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잘 짜인 줄거리에다 나온 배우들의 매끄러운 연기, 찍은 영화를 잘 짜맞춘 감독의 솜씨 덕분이었다.
2.
1701년 히로시마에 있는 아사코 번의 다이묘인 아사노 나가노리(가야마 유조)는
교토에서 오는 텐노의 칙사들을 일본의 서울인 에도에서 맞이하는 일을 맡았다.
이름 뿐인 텐노에 견줘 실질적으로 일본을 다스리던 쇼군이 시킨 일이므로 잘 해야 한다.
이들에게 어떻게 교토의 귀족들을 맞이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일은
늙은 키라 요시나가(이치가와 츄사)가 맡았는데, 돈만 밝히는 사내여서 아사노와 사이가 좋지 않다.
"칙사를 맞이하는 이는 선물 담당이란 뜻이지. 알겠나? 돈은 좀 들겠지만, 잘만 하면 공을 이루는 길일세."
그런 말에 젊디 젊고 생각이 바른 아사노가 넘어갈 리가 없다. 꽉 다물어진 입과 굳어진 얼굴만 보일 뿐.
이런 모습을 본 키라는 길길이 뛰고, 괜스레 칙사가 머무는 곳의 다다미가 낡은 것이라며 생트집을 잡는다.
아랫사람들이 아사노한테 말을 붙인다. "주군, 키라 님에게 뇌물을 주면 그만 넘어갈 겁니다."
"법에는 뇌물을 주면 안 된다고 되어있어. 뇌물을 주는 게 쉽지만, 내 양심상 그럴 수 없다." 하며 버틴다.
뒤끝이 장난이 아닌 키라 때문에 돌아버린 아사노는 끝내 쇼군의 성에서 칼을 뽑는다.
쇼군의 성에서 칼을 뽑으면 그건 쇼군을 해치려는 뜻으로 보이므로, 뽑은 사람은 제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
성을 참지 못해서 억울하게 죽게 된 아사노.
그런데 같이 죽어야 할 키라는, 쇼군의 믿음을 얻고 있던 야나기사와 데바슈 덕분에 살아남는다.
이런 꼴을 보게 된 아사노의 아랫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키라한테 앙갚음을 하려고 한다.
3.
영화는 아사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꼭지들과
죽은 주군을 생각하며 앙갚음을 다짐하는 칼잡이들의 모습,
아사노의 아랫사람들이 에도로 들어가 키라의 집에 쳐들어가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세 갈래로 나뉘는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는데 영화는 길었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만든 본디 영화도 241분으로 무척 긴데, 새로 자르고 만든 이 영화도 못지 않았다.
그래서 군더더기 같이 느껴지는 대목이 더러 있었다.
에도에서 아사노가 죽은 것을 알리려고 카노 산뻬이가 가마를 타고 아사코 번으로 바쁘게 가다가
시골 아낙네를 길 아래로 떨어뜨린 일에서 엮여지는 일들이나,
칼잡이들이 아사노의 죽음을 앙갚음 하려고 나서는데 장부를 담당하던 이의 아들 에모시치가
저도 같이 끼워달라고 하는 꼭지는 꼭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에도에 간 아사노의 아랫사람들 가운데 칼잡이 하나는 술집 아가씨를 사귀었는데
둘 사이의 사랑 때문에 칼싸움에 빠지게 되었다는 대목이나,
처음 예순한 사람이 앞날을 같이 하기로 했다가 마흔일곱 사람으로 줄어들 때
제 아들이 안 올까봐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늙은 칼잡이 이야기나,
아픈데도 끝까지 칼싸움을 하러 나서는 무리에 들어가려 애쓰는 키치에몬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길게만 늘어뜨린 듯해서 나로서는 잘라내었으면 싶었다.
4.
제가 모시던 윗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마흔일곱 사람이 나서서 제 목숨을 걸고 앙갚음하는 이야기.
요즈음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1700년대의 일본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사노가 칼로 배를 가르며 스스로 죽는 일만 빼면,
감독이 옛날 있었던 일을 갖고 와서 요즈음을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내를 쇼군의 잠자리에 보내 자리를 얻었다는 야나기사와의 이야기도 조금 지나치긴 하지만
제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의 얘기로 보면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돈만 바라고 제 뱃속만 채우려는 사람들은 예나지나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꿋꿋이 맞서서 세상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밝게 비춰주었다.
생각이 바르고 나쁜 일에 맞서는 젊은 아사노의 모습은 좋게만 보일 뿐이었지만,
늙은 키라의 닳아빠지고 느끼한 모습은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
제가 바라는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고 "아사노가 날 모욕하는 거야! 그것 밖엔 없어..." 하며 투덜대거나,
아사노와 같은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며 "아들아, 도와다오. 아직 돈과 계집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어.
난 더 오래 살고 싶구나. 난 뭐든 할 것이야. 날 겁쟁이라 불러도 난 괜찮아..." 할 때의 키라의 모습은,
앞에 있으면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리고 싶을 만큼 얄밉기 짝이 없었다.
키라를 맡은 이의 연기는 비굴하기도 하지만 유들유들하고 세상 욕심을 다 가진 듯 나타내는 게 좋았다.
아사노의 죽음을 앙갚음하는 데 앞장을 서는 아사노 집안의 가로(집사장)인
오이시 쿠라노스케(마츠모토 코시로)가 이끌어가는 꼭지들은,
영화의 앞쪽에 나오는 아사노와 키라가 맞서는 꼭지들에 견주면 보는 즐거움은 적었다.
주군에 대한 충성만 앞세우다 보니까 울림을 크게 하려고 애는 썼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거꾸로 떨어졌다.
그나마 젊은 칼잡이 쿠주로가 에도에서 키라의 집을 속속들이 그린 그림을 얻어내려고
그림을 갖고 있는 사내의 누이 오츠한테 다가서는 꼭지에선 둘 사이의 애틋한 사랑이 안타까웠다.
아사노 집안의 칼잡이인 호리베 야스베와 떠돌이 칼잡이인 타와라보시 겐바(미후네 도시로)가
술벗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은 험한 시절이지만 따뜻함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마음인 듯싶었다.
겐바를 맡은 미후네 도시로가 좁쌀을 담은 가마니들을 창으로 집어던지며 제 힘을 보여주는 대목은
영화 속 줄거리에서 겐바 몫의 자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지만 볼거리로는 괜찮았다.
5.
영화 속에서 눈길을 끌어가는 볼거리가 몇 가지 있었다.
쇼군이 교토에서 온 귀족을 생각해서 연 공연은 볼만 했다.
거기에 오는 사내들의 바지는 길어서 반은 바닥에 닿아 끌렸다.
질질 끌면서 다니는 사내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그 옷들의 빛깔은 아름다웠다.
큰 방의 네 벽마다 그림이 보였는데 나무와 새, 하늘 따위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 보기에 좋았다.
1962년에 만든 일본 영화치고는 무대가 화려했다.
키라의 심술 때문에 다다미 500장을 다 바꿔야 한 아사노 집안이 에도에서 다다미 만드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마당에서 다다미를 짜는 모습은 영화 속이든 아니든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보았다.
교토에서 에도로 가는 길에 머물던 곳에서 돈이 없는 귀족이 집 임자한테 '충효' 글씨를 써주고
돈을 받아갔다는 대목은 우리네 옛 벼슬아치들이 생각나게 했다.
조선의 벼슬아치들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 사람들은 글을 잘 쓰는 우리네 벼슬아치들이
쓴 글을 받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꼭 그런 느낌이 드는 대목이었다.
쇼군이 쉬겠다며 들어간 방도 남달랐다. 처음에는 누워서 자는 곳인가 싶었는데,
아사노와 키라의 칼부림을 알리려는 이가 문을 열자 생각지 못한 것이 보였다.
수증기가 가득찬 곳에 옷을 입은 쇼군이 앉아 있다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증기 목욕을 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차가운 사우나를 했다는 것인지? 무엇일까?
6.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나쁜 욕망과 비루한 모습을 매끄럽게 보여주는 키라가 눈길을 끌지만,
길게 늘일 게 아니라 조금 줄여서 꼭 있어야 할 꼭지만 담았으면 더 나았을 듯하고,
칼잡이 사내들의 충성을 더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아픔을 더 담았으면 싶은 마음 때문에,
별은 넷만 주었다.
만든 지 쉰 해나 지난 영화였지만 디뷔디에 나오는 화면과 소리는 깨끗했다.
영화가 길어서 디뷔디는 두 장짜리로 만들었고, 덤으로 한 장짜리가 있어 모두 석 장이나 되었다.
우리말 옮김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덤은 볼 게 없었다.
예고편도 없고, 긴 영화에다 다시 영어로 나오는 영화 한 편을 넣어놓았다.
같은 영화를 말만 다르게 나오도록 한 것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긴 영화를 다른 말로 다시 보란 뜻일까?
아무튼 잘 나오지 않은 영화에다 석 장짜리에 9,900원이니까 비싼 느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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