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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0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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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10.14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15.7만자, 약 5.3만 단어, A4 약 99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88937479243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2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적어도 번역된 소설 마지막 권이다. 순서대로 읽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날때마다 구입해서 읽었기때문에 이 소설이 1986년작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는 꼭 최신판처럼 느껴진다. 전후를 배경으로 한 '창백한 풍경의 언덕', '남아있는 나날'과 함께하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연도별로 '창백한 언덕의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있는 나날' 순이다. 재미있는 것이 첫번째 작품이 영국에서 일본을 회상하는 배경으로 썼고, 다음 작품은 오로지 일본을 배경으로, 마지막은 영국을 배경으로 해서 썼다는 것이다. 모두 2차세계대전을 이후를 배경이 현재이나, '남아있는 나날'같은 경우는 1차세계대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를 배경을 한다는 것은 사실, 많은 혼란을 가져온다. 승리와 패배가 존재하고, 당시만의 선악도 존재한다. 주관적이긴해도 승리가 곧 선인 된다. 적어도 2차 세계대전은 그렇지 않은가? 전범국가들은 악이 되고 사죄했다. 작가는 일본이라는 패망국에서 태어나 승전국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패망국이 된 모국을 배경으로 혹은 승전국이 된 제2의 모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 그래서 패망한 일본이 '악'이 되지 못하고 승리한 '영국'이 선이 되지 못한다. '창백한 풍경의 언덕',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일본은 전후 갈등이 점철한 사회임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당연히 일상적인 필부필녀들이 주인공이어서 그럴테지만,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국가를 동경 혹은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한 소설에서는 미국인을 따라가려고 애쓰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본서는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가는 전후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둘 다 주인공들은 '의심'을 갖고 다른 생각을 소극적으로 전달한다.
'남아있는 나날'에서 영국은 승전국이나 '선'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집사의 소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역자의 해설을 약간 빌리자면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소설화 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렇다고 일본을 좋게, 영국을 나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굳이 영국과 일본, 승전국과 패전국으로 구분해서 살펴본다면 저자는 일본은 비교적 우호적으로 영국은 상대적으로 '창백한 풍경'으로(주인공의 딸이 자살한 곳은 영국이다.)미국은 '창백한 풍경의 언던'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는 의심스러운 국가로 보고 있다. 물론, 영국과 미국이 반드시 '선'일 필요도 없고 일본이 '악'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소설 속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일본을 우호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전쟁을 배경으로 썼지만, 국가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개인의 삶이 더 큰 관심사이다. 사실, 당시를 다루면서 개인의 삶만 귀추했을 수는 없다. 저자의 글은 분명 사회를 상당히 깊게 살펴보고, 생각해 봤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본서의 화풍의 변화를 따져보고 그 변화를 세밀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소설 속에 배경으로 스케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야망', '덧없음'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시구로의 소설 속에서 어떤 단어가 본 소설에서처럼 드러나는 것을 본적이 없다. '파묻힌 거인'에서 '망각'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긴 하지만, '망각'이 갖는 안개같은 뉘앙스로 '야망'과 같은 언어의 느낌을 갖지 못한다. 소설속에서 주인공의 야망, 그리고 그 야망은 일반인들에게 없는 것이어서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라는 판단은 실제로는 무서운 생각이다. 소설속에서 일본이 실제로 그랬다는 것을 주인공은 비록 실패했고, 그것의 과오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마땅히 해볼만했다라는 인식은 전범국가이나, 공개적인 사죄를 거부하는 일본의 현재 모습의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이 의식을 솔직히,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한 인간이 평범을 넘어서기를, 보통을 능가하는 그 무엇이 되기를 열망한다는 것은, 설사 실패하고 그 야망으로 인해 재산을 잃는다 해도 찬탄받아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소설 중-
개인이라고 할 때 이 구절은 그다지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역사, 국가, 전쟁이라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위의 구절은 참람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을 저자는 독자의 판단으로 넘긴다. 철저히 작가로서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점이 이시구로의 소설을 더 읽게 만드는 매력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부유하는 세상'은 무엇일까? 전작인 '창백한 풍경의 언덕'은 제목이 소설 전체를 은유하면서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본서는 제목이 내용과는 역설적이다. '부유'는 떠도는 것을 의미하는데, "밤과 일체가 되었다가 아침과 함께 사라지는 환락의 세계"(역자의 말 중)를 의미한다. 실제로 존재했던 '유키에요'라는 일본미술의 유파과 중요시 여기는 주제, 혹은 배경이라고 할 것이다. 주인공은 실제로 이러한 유파에서 양육을 받았고, 그 유파에서 떨어져 나와서 자기재능을 새롭게 발휘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를 안내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분명 국가기관과 연계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한 부류.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은 빈민굴에 갔다가 충격을 먹고, 공산주의도 모르면서 아는척하고, 마르크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아는척하고 레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아는척하다가 결국, 동참하게 된다. 이시구로는 세상을 잘 모르면서 오로지 그림에만 매몰되어 있는 예술가를 비꼬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들에게 이데올로기가 주입되면 그 어떤 일이라도 당위성을 갖고 하게 되는 모습을 비판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독자로서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무지'는 무서운 적이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지는 일방적이다. 게다가 권력이라는 것,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력까지도 어느 정도 주어진다면, 더 열심히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가운데 최선을 다할 것 아닌가? 조금은 똑똑한 아이히만이 등장하는 것인가?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하는 군인이 아니라, 그것이 명령인줄도 모르고 자신의 야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예술가를 보여주는 것인가?
"우리는 적어도 믿는 바를 위해 행동했고, 최선을 다했다. 말년에 자신의 성취를 재평가한다고 해도, 내가 그날 그 높은 산길에서 느꼈던 것 같은 진짜 만족감이 깃든 한두 순간들이 자신의 삶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 소설 중 -
스스로가 타협하고 있다. 주인공은 둘째 딸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비판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느껴야 할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살한 음악의 거장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들은 이러한 비극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한다. 물론, 주인공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왜? 그는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단지 과오를 인정할 뿐 이다. 그 시대에는 그렇게 하는게 맞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인 것이다. 현재 비판도 달게 받겠고, 제자의 무례함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것을 부인할정도로 꽉 막힌 파렴치한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자살한 음악가만큼이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것도 그가 죽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필부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제자들을 아끼고. 그리고 상처도 잘 받고, 자상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어떻게보면 열린 사고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도 비교적 잘 수용한다. 여기서 작가는 주인공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또 넘긴다. 일반적인 필부, 그는 야망이 있었고, 그 야망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다. 그는 그러한 노력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그와 같은 위치의 거장이 자살을 택해도 주인공은 죽을 이유가 없다. 면죄부를 주는 것인가? 살아가기 위해서 내면 속에서 타협하는 인간을 그려낸 것인가? 작은 죄책감으로도 죽어야 한다면, 인류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독자들 마음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참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 인간, 망각, 야망, 생각, 복제인간, 영혼 등. 소설은 허구이기에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계가 있다. 단, 주제의식이 명확한 소설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소설이 있다.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 늘 판단의 조건을 충분히 제공하면서 저자는 끼어들지 않는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하기야 포스트모던을 한 참 넘어오는 시대에 이것이 답이다라고 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회피아닌 회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 세 소설은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 서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본문에 수용된 양이 적은 두 소설은 그렇기 때문에 더 분명히 드러나고, 영국을 배경으로 전개된 소설은 주인공의 신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크지도 않다고 생각되는데, 역자가 아이히만을 데려올 정도로 맹렬하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는 변명을 한다. 역자는 그저 예술로써 소설을 번역했기에 '역사'는 별로 따지지 않는다. 역사 의식을 통해 이시구로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의 과오가 분명한 문제, 특히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수천만명이 사망한 전쟁에서의 변명과 타협은 솔직히 몰지각한 발상이다. 저자가 주인공에 몰입된 거라면, 그래서 공산주의도 모르고 마르크스와 레닌이 동료정도로 생각하는 무지한 수준이라고 자기 비판하며 소설을 쓴거라면? 그렇다면 용납될까?
소설은 문학이다. 문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소설가로서 이시구로의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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