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제3의 길은 어떤 의미인가? .... 제3의 길에 대한 올바른 이해
99/11/27 김선희(rosak@hanmail.net)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화'를 소리높여 외친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첨단 정보기술을 통해 세계는 급변하고 결국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이러한 정보화의 결과는 세계화(globalization)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globalization을 지구화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문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가 괴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일상생활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계화'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이러한 세계화는 곧 국민국가 차원에서의 시민권의 약화와 더불어 시장논리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국민국가 차원에서 살펴보았을 때,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위상과 역할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급변하는 국제환경의 변화에 직면하여 국가의 역할이 일정정도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시장논리의 지배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을 통해 결국 보다 더 풍요로운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론(樂觀論)과 자본주의의 확산은 결국 전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론(悲觀論)이 팽팽이 맞서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시장논리의 지배를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세계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절대주의의 대항명제였던 자유방임주의의 복사판이며, 이것은 곧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함으로써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다시한번 강하게 표출될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신자유주의를 그 이데올로기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지나가고 제3의 길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본다. 사회민주주의가 1945년에서부터 1975년의 시기를 주도하였다면, 1975년에서부터 1995년까지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였다. 하지만 이제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권의 집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과연 신자유주의가 쇠퇴하였는가?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러한 제3의 길은 서유럽 몇몇 국가의 현상이기 때문에 만약 이들 국가들에서 정권이 또 다시 바뀐다면 그 경향 자체도 변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 정권의 집권이 곧 신자유주의의 몰락(p.10)이라고 볼수만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로는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노동당의 '현대화'로서의 제3의 길을 보는 입장은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차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에의 투항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의 또다른 가면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는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항은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저자는 토니 블레어 정부의 정책이 대처의 신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유럽적인 복지국가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결국 제3의 길을 특징짓는 것은 일하기 위한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구(舊)노동당이 복지국가를 강조한 반면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의 축소를 강조했다면, 제3의 길은 복지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개인적 책임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실험으로서의 의미를 통해 제3의 길을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의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의 자유시장 중에서 어느 것에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3의 길이 세계화라는 변화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결국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설득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통해 보았을 때 제3의 길이 등장하게된 배경과 아울러 그 정책의 방향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주창한 제3의 길에 대한 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영국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이것이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그 보편성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서 제3의 길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원칙과 정책방향을 정부의 재구성, 경제의 재구성, 시민사회의 강화, 복지국가의 개혁, 지구적 체계의 구성, 생태적 현대화라는 6가지 프로그램의 원칙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제1장에서는 노동당의 흥망성쇠를 통해 오늘날 토니 블레어가 탄생하기까지의 배경을 잘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노동당이 계급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산층을 끌어안는 국민정당(대중정당)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제2장에서는 블레어 정부의 경제정책의 윤곽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복지국가의 틀을 형성함에 있어서 케인즈주의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신자유주의는 통화주의(monetarism)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블레어 정부의 경제개혁은 균형재정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기초로 하는 통화주의적 경제정책을 기축으로 하는 동시에, 공급측면의 인력개발과 교육훈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제3의 길을 '정치철학'과 '경제학'으로 나누어서 정치철학은 중도좌파 정당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경제학은 아직 많은 이론가와 지지자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새로운 경제학은 앞으로 영국경제가 보여줄 성과 여부에 따라 이것이 새로운 경제모델로 자리잡을 지의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3장에서는 블레어의 스승인 기든스 교수의 제3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기든스에 대한 소개는 이미 여러 책들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부분이다.
'제3의 길과 한국사회'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제4장에서는 한국적 제3의 길을 위한 지향점을 시사하고 있다. 저자의 논지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부분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3의 길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제3의 길이 '영국적인' 정책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3의 길은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클린턴 정부의 정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클린턴의 제3의 길이 먼저 있었고, 이러한 클린턴 정부의 정책실험이 영국의 노동당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데모스(Demos)라는 블레어의 싱크탱크를 통해 클린턴 행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토니 블레어에거 미친 영향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3의 길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로 그것이 유교의 중용 원리와 통한다고 보는 것에 대해 저자는 분명히 잘못이라고 지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중용을 '단순하게' 양자의 중간이나 정해진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또한 그것을 '도덕적 원리'로(p.157) 보는 데에서 시작되는 듯 하다. 하지만 중용이 '단순하게' 양자의 중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유교 속에는 이미 엄연한 '정치적 프로그램'의 성격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