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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1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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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8쪽 | 590g | 148*210*30mm |
ISBN13 | 9788959402533 |
ISBN10 | 8959402532 |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3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십대 청년이던 지은이는 작정이라도 한 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할만한 일자리만 찾아 전전했고,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단상을 세세히 담아 책으로 펴냈다. 처음 진도 꽃게잡이 부분에서는 마치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기라도 하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지은이는 깨알 같은 상황묘사와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참 맛깔스럽게도 담아내서, 그 일이 대단히 고된 과정의 연속임을 잊게 할 정도였다. 지은이를 따라 편의점과 주유소와 고시원의 애달픈 삶을 따라가다 보니, 점차 지치기도 했다. 다양한 부류의 손님들로 인해 겪는 감정의 피로, 최저임금조차도 주지 않으려는 저열한 고용주에 대한 분노를 전하는 지은이의 경험은 부당한 대우에 울분을 토했던 나의 과거를 떠오르게 했다. 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곤 했는데, 꿈속에서 지은이가 되어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깨는 아침이면 힘들고 우울했다. 슬슬 편의점과 주유소 일이 마지막을 향해갈 때 쯤 손님의 무례함에는 같은 무례함으로 맞서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적힌 어깨띠와 녹슨 못을 박은 각목을 상상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몹시 대담해서 믿겨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지은이는 할말은 하는 -어른들이 보기에 당돌하다 여길만한- 성격이고, 냉소적으로 비꼬는 유머가 있는,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인 것 같았다.
지은이는 젊은이가 귀한 어느 작업장에서나 막내로 통했는데, 큰 키에 느리고 어설프지만 식욕만큼은 대단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묘사했다. 고된 일의 특성도 있고, 여가를 즐길 만한 환경과 비용이 없는 상황에서 먹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낙이었던 것 같다. 때때로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내비추기도 하고,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경험한 온갖 것들을 탁월하게 설명해 나가기도 한다. 또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주장을 열렬히 펼쳐낸다. 그 자세한 설명과 이야기가 이해를 돕기도 했지만, 때로는 지루하기도, 숨 가쁘기도 했다. 활자로 빽빽하게 채워진 책의 구성도 한 몫을 했다.
글은 거칠고 투박하기만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과 활기도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호의적으로 대하려던 지은이었다. 그러나 나이 많은 몽골 아저씨가 잘못한 일을 바로잡아 주자, 수면에서 눈만 내놓고 있는 악어처럼 숨겨져 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무시와 적개심이 순식간에 튀어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 당진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힘들 땐 한국인 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정작 열악한 근무조건과 환경을 제공하고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잊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젊은 친구들에게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면서 돈만 밝힌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지은이는 반박한다. 젊은 사람들은 힘도 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라고. 또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사회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일갈한다.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문득 어느 라이프 코칭 강사가 쓴 자기계발서를 보며 쓴웃음 지었던 생각이 났다. ‘모모사의 회장은 늘 웃음으로 생활하고,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몇 백 억 매출의 신화를 이뤄냈다’는 식으로 여러 기업의 이름과 회장들의 실명을 밝히며 구구절절 찬양해댔던 시답잖은 내용이었다. 말이 되는가. 그들의 기름진 웃음 뒤에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눈물이 가득할 것은 자명한데 말이다. 그 대단한 기업의 회장님들은 무노조 원칙을 지향하고, 분식회계와 배임 횡령으로 비자금을 조성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정치권에 불법자금을 대고, 설령 잘못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마크스와 휠체어로 법의 심판을 가뿐히 물리쳐 버린다. 그 뒤에는 지은이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절박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칠 것이다.
나는 여러 권을 책을 동시에 읽어나간다. 이 책에서 한 챕터를 읽고나면 다른 책을 집어 드는 식이다. [인간의 조건] 펼치기 전에 읽은 책은 어느 유명인사의 신작 여행기였는데, 내용도 무척 좋았지만 디자인은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색감과 구성, 인용구마다 빨간색 활자로 강조한 모양새가 베스트셀러가 될 책임을 예견한 출판사의 열렬한 지지를 증명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을 낸 이름 꽤나 알려진 이들은 언론에 오르내리고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출판사의 지지만 얻게 되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신작을 쏟아낸다. 유명세라는 후광효과를 이용한 ‘다 잘 될거다’라는 위로인지 격려인지 별 내용 없는 공허한 말들로 채워진 책을 나는 혐오한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이들이 쏟아낸 텅 빈 내용의 책들보다, 제목하나도 제 맘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는 이 신예작가의 생각이 가득한 글이 훨씬 마음을 흔든다. 지은이는 한 칸씩 이동하는 체스게임의 졸이 상대진영의 끝에서 여왕으로 변신하는 뜻의 ‘퀴닝’을 제목으로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과연 우리 사회가 체스판의 졸처럼 묵묵히 움직이면 밑바닥 노동자들도 퀴닝이 가능한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매고를 생각해야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은 제목이었나보다. 나 역시 출판사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유명작가였더라면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는 제목을 새겨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책장을 처음 펼칠 때만해도 좀 냉소적이었다. 워킹 푸어의 현실을 담기 위해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는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현장에서 직접 경험을 하는 것은 대단하고 옳은 일이지만, 과연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일까 의심을 했다. 목표한 글을 쓰기위해서, 그 글로 인해 작가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작가는 잠시만 그 일을 체험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목표가 있고 끝이 보이니 그 일을 해내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열악한 환경에서 끝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를 모욕하는 처사는 아닐까 하는 속 좁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쯤엔, 책 속에 담긴 지은이의 힘든 경험이 편협한 나의 생각을 물리치고,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그 힘든 노동환경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열망이 내 차가운 마음에 온기를 넣어주었음은 물론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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