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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4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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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57.98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54657419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7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심적 효과에 대해서는 시험 준비를 하며 느껴봤다. 도서관에서 다가오는 시험 때문에 불안하고 공부는 안 되고 할 때 서가에서 손에 잡힌 하루키 책을 읽고 있자니 적당히 현실감 없으며 시간 보내기에 너무나도 유익했던 경험. 지금, 불안하십니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가벼운 하루키 수필이나 단편이라도 읽어보세요- 같은 효과 말이다. 도피로서의 독서라고 해도 좋다.
하루키의 에세이집 중에서도 모든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단 '재미가 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의 힘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는 없기에.
(사진은 내가 갖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와 짧은 단편집 원서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와와 <하루키의 여행법>의 원서인 <변경·근경> 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았을 때 책장에 있는 신경안정제라도 집는 마음으로 <무라카미 라디오 3> 같은 책을 읽었듯이 이번엔 전에 일본어 원서로 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전자책으로 구매해 넘겨보았다.
전의 <우천염천> 이나 <먼 북소리>와는 좀 다르게 여기 모인 여행 에세이들은 독자에게 정보 상 도움이 되겠다는 톤으로, 잡지의 여행 란을 위해 쓰여진 게 거의 매 에세이마다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전의 여행 에세이들이 좀 더 내향적이거나 내밀하고 또 문학적인 문체라면 이 책은 보다 가볍고 실용서를 읽는 독자를 의식한다. 오래 전, 1998년에 나온 <하루키의 여행법 (다른 출판 제목: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서 여행에 대한 글을 좀 발췌해 본다.
정말 여행이란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 정말이지 집에서 스크래블이나 하고 있는 편이 훨씬 정상적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여행을 떠나곤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힘이 이끄는 대로 비틀비틀 벼랑 끝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낯익은 부드러운소파에 걸터앉아 절실하게 깨닫는다. "아아. 뭐니뭐니 해도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안 그런가?
그것은 어찌 보면 병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적어도 나의 경우엔) 서가에서 지도를 꺼내어 페이지를 열고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후에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지도라는 것은 아주 매혹적인 것이다. 지도에는 아직 자기가 가 본 적이 없는 지역이 펼쳐져 있다. 조용히, 말없이, 그러나 도전적으로. 들어본 적도 없는 지명이 허다하다.
건너 본 적 없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본 적 없는 높은 산맥이 줄을 잇고 있다. 호수나 하구는 하나같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변변치 않은 사막조차도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보낸다.
지도를 펴놓고 자기가 아직 가 본 적 없는 곳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녀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처럼 마음이 자꾸만 끌려 들어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진다. 아드레날린이굶주린 들개처럼 혈관 속을 뛰어 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부가 새로운 바람의 산들거림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일단 그 곳에 가면, 인생을 마구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중대한 일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실제로는 그런 일은 매우 상징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지만).
훨씬 더 젊었을 때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유혹적이라는 글을 남겼지만 더는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중대한… (상징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더라도) 속성으로 여행을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자신의 나이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쓴 적 있는데, 그의 말을 빌려 여행에 관해서도 말하자면 자신의 나이를 벗어나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혼자 멕시코를 여행해 보고 새삼스레 절실히 느낀 것은,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내가 자주 여행을 해보고 나서 체득한 절대적인 진리다. 여행은 피곤한 것이며,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비참함이 끝없이 이어지고, 예상했던 일이 빗나간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루키의 여행법>에서는 위와 같은 글도 있었다. 예전 책을 비교해 보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더 이상 혼자 여행을 한다거나 고생을 한 여행기를 적지는 않는 변화를 느꼈다. 또 가령 이전에 작가에겐 좀 더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취향도 확실하다. 91년에 갔다는 이스트햄프턴을 두고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작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별로 살고 싶지 않다. 그곳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말이다. “ 라고 적었다. 하루키는 혹여나 사람들의 그건 좀… 하는 반응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기주관이 강한 여행 취향 얘기는 이 책에는 거의 적지 않았다. 여행기는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고 작가 후기에도 적고 있다. 그런 그가 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하나의 책으로 묶게 된 이유는 ‘잊을 만하면 띄엄띄엄 청탁이 들어와 여행기를 쓰는 작업을 하다보니, 차츰 원고가 쌓여서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독자가 어쩌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었다고.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점은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라는 태도 같은 것이다.
나는 요즘도 앞으로도 아마 여행은 거의 하지 않을 듯한데 그런 사람으로서 여행 에세이를 읽는 행위는 어떤 종류의 탁상여행, 대리만족 여행이다. 라오스에는 가 보지 않았고 이 곳에 나온 모든 여행지를 아마 복권 당첨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갈 일이 없을 듯하다. 맨 마지막 장 쿠마모토 편에는 한 독립서점의 귀여운 흰 고양이 사진이 있다. 우와, 너무 귀여워, 실제로 보면 더 귀여울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아무리 고양이를 좋아해도 쿠마모토까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의 토스카나에 대한 짧은 에세이 ‘하얀 길과 붉은 와인’ 에서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이야기와, 한 단편에 토스카나의 루카라는 소도시의 와인에 대한 언급을 해서 와이너리의 주인도 책을 보고 알게 되어 도쿄까지 와인을 보내준 적이 있으며, 이 에세이 투고를 위해 다시 같은 와이너리를 취재해 와인도 맛보고 또다시 빈티지 와인을 선물받았다는 (유명 작가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을 듯한) 부럽고 멋진 일화도 있다. 백야를 경험할 수 있는 비슷한 시기에 나도 핀란드에 가 보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운영하는 바나, 시벨리우스가 살던 집에는 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여행기는 여행을 앞으로 하고 싶은 사람과 별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읽는 태도가 다를 것 같다. 난 ‘나도 다음에 가면 여긴 꼭 가봐야겠어.’라는 생각은 안 하고 단지 흠, 재밌겠구나나 저런 곳도 있구나 하는 대리 호기심 충족으로 여행기를 읽는 셈인데 분명히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여행은 평범하지 않고 20년 전의 여행기 같은 땀흘리고 고생하는 여행기도 아니다. 간 모임에서 옆에 앉아있던 소탈한 중년 여성이 알고 보니 그 나라의 전 대통령… 같은 경험은 보통 사람들이 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저명한 세계적인 작가로서 하는 여행 경험을 읽는 것이 어느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사진이나 동영상에 붙여진 여행기와 분명히 다른 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는 여행을 할 일이 그다지 없을 독자에게도 20년 전쯤의 것이 리얼하고 마치 맥박이 느껴질 듯 에너지 넘치고 생생하다. 98년의 <하루키의 여행법> 에 실린 작가 후기에는 잘 쓰여진 여행기를 읽는 것이 현실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때도 있다고도 썼다. 원래 여행기를 읽는 게 실제 여행보다는 안전하게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독자 한 명으로서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의 후기, 맨 마지막에는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라는 문장이 있다. 진심은 진심인 것 같은데 책 전체에서 본다면 조금 편리하도록 모호한 문장이다. 하지만 어느 여행책에나 마감의 문구로도 왠지 적당해 보인다. 론리플래닛이든 여행사의 광고문구든 여느 여행블로그의 포스트 말미에도. 이 여행에세이 컬렉션은 그 정도의 온도의 여행기, 여행이 ‘떠나고 싶은 강한 유혹’이 아닌 여행이라, 글쎄, 가성비를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들어가기 좋은 온천 물처럼 편안한 페이지터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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