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위하여(현대문학, 2001년 2월)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2001)
내게 환갑 진갑 다 지난 여덟 살 아래의 사촌동생이 있다. 같은 집에서 태어나 유년을 함께 보낸 사이지만, 나는 일찌감치 공부 잘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 학교 졸업 후 결혼을 해서도 집안 살림과는 거리가 멀었던 반면, 사촌동생은 어려서부터 얼굴값 한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굴곡 진 삶을 살았다. 동생은 열두 살 연상의 유부남과 사귀어 결혼했고, 자식들 혼사를 모두 치른 후에도 남편의 빚보증과 병 수발을 홀로 감당해왔던 것. 어찌어찌하다가 살림 솜씨 야무진 그 동생 덕에 나는 여전히 집안일과 각종 대소사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해의 ‘사량도’에 갔던 동생은 홀아비 선주를 만나 다 늙어 재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40)
그 남자네 집(문학과사회, 2002년 여름호)
후배가 이사해간 돈암동, 삼선교 일대를 찾아간 나는, 오래전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옛 집터, 그리고 ‘그 남자네 집’을 떠올린다. 수십 년 전, 먼 친척 아주머니의 막내아들이었던 그를 전쟁의 화마가 쓸고 간 자리에서 재회했다. 홀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던 당시의 내 핍진한 삶 한복판으로 말쑥한 장교복 차림에 곱상한 외모를 한 그의 등장은 잔잔한 파문, 그 자체였다. 텅 빈 서울에서 나는 그해 구슬 같은 겨울을 그와 함께 보냈다. 그러나, 삼선교의 어둑시근한 포장마차의 카바이드 불빛 아래서 시 낭송을 타고 계속되던 연애는 휴전 후 내가 선을 본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하면서 끝나고 만다.
나는 내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피차 동정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닮은 불운을 관통하는 운명의 울림 같은 걸 감지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 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독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깊이 잠든 살아남은 식구들, 두 과부와 두 어린것들의 평화로운 숨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밑바닥에 도착한 안도감과 평화는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는 평화가 얼마나 더 거룩한가. 나는 내 안에서 회오리치는 위험에의 갈망과 이렇게 맞섰다. (66~67)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은이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마치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꼭지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 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한테 삐지려는 마음을 이렇게 다독거렸다. (77~78)
마흔아홉 살(문학동네, 2003년 봄호)
주인공 카타리나는 성당에서 만난 이들과 ‘효부회’를 결성,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어느 날,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들의 입방아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엿듣게 된다. 그녀가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의 뒤처리를 하고서 그 팬티를 내팽개치는 모습이 한 회원의 눈에 발견됐던 것. 유일한 여학교 동기인 동숙과 마주친 카타리나는 동네 찻집으로 자리를 피한다. 사실인즉슨, 노후에 별거하여 각자 아들네와 딸네로 옮겨가 살게 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탓이었다.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거침없는 시어머니와 너무 과묵해서 숨통을 죄어오는 시아버지를 함께 겪으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이 시아버지에게로 향한다.
“난 왜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가짜인지 나도 모르겠는 거 있지.” “모든 인관관계 속엔 위선이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돼 있어. 꼭 필요한 윤활유야. (105, 107)
명치가 등에 붙을 듯이 날씬하다가도 생명만 잉태했다 하면 보름달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던 배는 이제 두꺼운 비계 층으로 낙타 등처럼 확실한 두 개의 구릉을 이루고 있었다. 허리의 후크를 풀자 역겨운 트림이 올라왔다. 자신이 비곗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메마른 설움이 복받쳤다. 위선도 용기도 둘 다 자신이 없었다. 울고 싶은 갈망과는 동떨어진, 여자들이 찧고 까불고 비웃는 소리가 귓전에서 잉잉댔다. (108)
후남아, 밥 먹어라(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빠듯한 살림의 오남매 가운데 셋째 딸인 후남은 재미교포 남자 존과 결혼한다. 피붙이들의 착각과 선망 속에 앤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타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시작한 후남은, 처음엔 물질적 풍요에 들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잊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그녀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처지에 이르렀을 때 남편의 힘겨운 배려로 한국에 들어온 후남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드디어 마주한다.
남의 무관심에 익숙해왔기 때문에 남이 나를 부러워하기를 바라는 이렇게도 강력한 욕망이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120)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 밥 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와 흙냄새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가 콧구멍뿐 아니라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쾌적하게 스며들었다. 잠깐만, 어머니가 후남아 밥 먹어라, 다시 한 번 불러줄 때까지 잠깐만 눈 붙이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지리라. (141)
거저나 마찬가지(문학과사회, 2005년 봄호)
사십대 초반의 나이에 유독 건망증이 심한 나, 김영숙은 고등학교 선배가 집주인인 서울 근교의 아담한 집에 세 들어 있다. 나와 선배언니는 한때 같은 봉제공장에서 사무원 노동자와 위장취업자로 만났다. 현재 선배언니는 운동권 출신이나 지금은 어엿한 대학강사인 남편과 잘살고 있는 데 반해, 나는 공장 기술자를 거쳐 지금은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는 기남과 동거 중이며 번역물 교정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일감이 늘어 작업공간이 필요해지자 선배 소유의 빈집을 오백 만원, 그녀의 표현대로면 ‘거저나 마찬가지’의 전세로 들어가 살게 된다. 집을 살뜰하게 가꾸고 주변 땅값도 오르자 선배 부부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무시로 사람들과 들이닥치며 나를 별장지기 대하듯 마구 부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전세 든 사람에게 이렇게 일을 시켜도 되냐고 묻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괜찮아, 괜찮다니까. 거저나 마찬가지로 차지하고 있는 집이니까. 나는 언니가 뻔질나게 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거저나 마찬가지란 소리도 그만큼 자주 듣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말에 길들게 되었다. 그런 게 체념이라는 것일 것이다. 언니가 남편까지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내 호칭은 별장지기로 바뀌었다. 나는 비로소 ‘거저나 마찬가지’를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저면 거저고 아니면 아니지 마찬가지란 무엇일까. 그러나 내가 이런 심각한 의문에 사로잡혔을 때는 이미 나의 오백만 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176~178)
촛불 밝힌 식탁(『촛불 밝힌 식탁』, 동아일보사, 2005)
시골초등학교 교장에서 정년퇴임한 나는 서울의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당초 아들 내외와 함께 살기 위한 결단이었으나, 중학교 사회선생인 며느리의 다부진 훈계조의 말대답과 줏대 없이 맞장구만 쳐대는 아들놈의 머리 굴림에 간신히 같은 단지 앞뒤 동으로 타협하고 이사를 왔다. 매일 아들네로 음식을 해 나르는 아내가 딱했지만 부러 말리지는 않았다. 베란다 창밖으로 새나오는 불빛에 의지하여 아들내외의 출입을 짐작하던 나는 차츰 그 불빛에서 수상한 낌새를 챈다.
모닥불의 잔광 같은 희미한 빛을 보았다기보다는 느낀 어느 날 저녁, 그날은 마누라가 아들을 위한 별식 같은 걸 한 날도 아닌데 나는 슬쩍 산책 나가는 척 혼자 나가 맞은편 아들네 아파트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연거푸 두 번 세 번까지 눌러보았다.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느낌으로 안에서 웅성대는 인기척과 현관문에 달린 동그란 렌즈가 비정한 외눈으로 변하는 걸 알았다. (195)
대범한 밥상(현대문학, 2006년 1월호)
남편을 췌장암으로 잃은 지 삼 년, 나 역시 삼 개월 판정을 받아놓고 있다. 돈의 치사한 맛도 뜨거운 맛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마치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는 이로 느껴지면서 무심결에 여고동창 경실이가 보고싶다. 딸과 사위를 한꺼번에 비행기 사고로 잃고 어린 손자손녀와 남은 그녀를 만나러 간 날, 나는 마치 늦둥이를 낳은 중년부부마냥 틈새 없이 다정한 안팎의 그들, 두 사돈을 목격한다. 풍문은 더더욱 험해져서 시골로 내려간 경실과 사돈영감이 살림을 차렸다고도 했다. 그 사돈영감이 죽고 난 어느 가을날, 나는 경실을 찾아 C군에 내려간다.
남편의 마지막 나날도 그러했겠지만 나도 끝까지 걸리는 게 자식들인데 돈이 걸린 문제는 자식들과 터놓고 의논을 할 수 없다는 게 나를 꼬이고 꼬이다가 종영 시기를 놓친 티브이 연속극처럼 구제 불능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207)
전화로 듣는 경실이의 참한 목소리는 소문으로 듣던 그녀의 인상을 서서히 밀어내고 한동네의 오래 같이 살던 여고 동창의 친밀감을 회복시켜주었다. 말수가 적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그녀에게 돈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다는 게 사실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돈 때문에 인면수심이 되는 것도 마다한 경실이의 말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돈에 관한 한 도사가 다 돼 있을 그녀로부터 자문이나 하다못해 암시라고 받고 싶다. (215)
친절한 복희씨(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문인 100인 선정 ‘2006 가장 좋은 소설’
‘나’는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서울 와서 처음 취직한 가게의 주인과, 그러니까 서른 넘은 애까지 딸린 홀아비와 결혼했고, 어린 외손자를 걱정하여 딸이 죽고 없는 사위집의 안방을 버젓이 차지한 장모와 남편 가게의 군식구들까지 복잡한 가족 구성원의 일원이 됐다. 전처소생과 내가 낳아 기른 아이까지 오남매를 모두 결혼시켜 손자손녀까지 보게 된 이 나이에도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중풍에 걸려 오른쪽 반신이 흐느적대고, 제 입 안의 침도 수습하지 못하게 된 탓이다. 뭐라고 말을 하지만 웅얼웅얼 버벌거릴 따름이다. 그런 그가 온전했을 때와 여전한 것은 왕성한 성욕이다. 일을 보고 뒤처리를 해줄 때의 내 손길에 쾌감을 느끼는 건 물론이고 약사에게 내 핑계를 대며 비아그라를 달라고 떼를 쓰는 그에게서 치욕감과 소름을 동시에 느낀다.
나를 ‘복희야’라고 부르고 싶을 때는 입가에 심한 경련이 인다. 나는 그게 불쌍하지 않고 고소하다. 처녀 적 그의 집에서 식모살이할 때부터 함부로 부르던 이름을,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그의 마누라가 된 후에도 기분이 좋을 때나 화가 날 때는 연달아 불러대곤 했다. 반신이 무력해진 후에도 속에서 뻗치는 기운은 여전한 듯 말이 잘 안 돼 고함으로 변할 때는 유리창이 다 들들댄다. 원래 기운이 넘치는 장대한 남자였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이상인 단순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썩은 포대자루처럼 처져 있는 걸 보면서 나는 측은하단 생각이 들기보다는 기괴한 환상에 시달린다. 저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거침없이 말할 때도 그의 생각은 주로 욕망에 관해서였다. 물욕, 식욕, 성욕이 남보다 강하고 표현하는 데 망설임도 수치심도 없었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그런 욕망을 채울 길이 막혀버린 지금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은 무슨, 그의 속이 텅 비어 있다고 생각해도 불안하고, 텅 비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다 자꾸자꾸 쑤셔 넣고 싶어 하는 나는 더 불안하다. 내가 불안한 건 그가 아니라 나다. (238)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죽기도 억울하고, 누굴 죽일 용기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너 죽고 나 죽기를 선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그 갑은 너무 작아서 허공에 어떤 선을 그었는지, 한강에 무슨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엔 그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만 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幻)을, 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한 환희로 지켜본다. (264)
그래도 해피 엔드(『문학관』 통권32호, 한국현대문학관, 2006)
정년퇴임한 남편과 함께 서울 근교로 낙향한 ‘나’는 전원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는 중이다. 서울에서 동창 모임이 있어 나가는 날, 뾰족구두에 정장을 차려입고 나선 내가 낯선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나’는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한다. 승하차문과 요금납부 등 모두 설기만 한 나를 되바라져 보이는 젊은 운전기사와 한통속으로 보이는 시골사람들 모두가 우스갯거리로 삼는다. 급기야 약속장소와 반대노선 전철을 타는 등 백주의 악몽은 계속된다.
좀 전에 혹독한 교육을 받은 걸 복습하려 했지만 혼란만 점점 더해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좀 낳을 것 같은데 너무 창피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던 맏딸한테도 차마 그 얘기만은 못할 것 같았다. 겨우 그까짓 일이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이 되다니. 가당찮게도 내가 살아온 비교적 평탄한 일생까지 무가치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27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