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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6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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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4쪽 | 680g | 138*204*35mm |
ISBN13 | 9791189932633 |
ISBN10 | 1189932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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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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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의 『자두』를 읽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참고로 이 책의 번역가가 바로 이주혜이다. 그녀는 번역가로 먼저 활동했고 이후 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했다).
『자두』는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이 결혼 후 병든 시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부장제와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한 소설인데, 기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대체로 보편적인 건 상투적인 것과 동일시되기 쉬운데 이 소설은 그 함정을 스스로 잘 피해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말하자면 밑바닥을 보이며 막장에 이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품위와 품격을 지킨다고 해야 할까. 소설에는 '나'와 간병인 황영옥이 등장할 뿐 아니라 리치(이 책의 저자인 에이드리언 리치)와 비숍의 이야기가 배치되는데, 사실 이 소설을 특별하게 하는 건 이주혜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나'-황영옥, 그리고 리치-비숍 일화였다. 『자두』를 통해 부분적으로 알게 된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인물이 많이 궁금했고, 이주혜라는 인간(분명 소설 속 '나'와 동일인물이라 사료되는)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도 있어 결국 이 책을 구입하게 됐다.
이 책의 원제는 'Essential Essays: Culture, Politics, and the Art of Poetry'이다. 제목으로 몇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데, 첫번째, 이 책은 리치의 산문집이라는 점이다. 리치가 출간한 산문들 중 편집자가 선별한 글들을 실었다. 둘째, 이 책에서 리치가 다루는 것은 문화와 정치, 시이다.
문화라는 것은 '문학', 즉 시와 소설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넓게 보자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즉 가부장제와 결혼제도(혹은 이성애)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정치 역시 남성 중심의 사회와 성의 정치학의 개념을 포함한다. 어찌보면 자연인 리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순수하게 리치가 가장 좋아서 썼을 만한 주제는 바로 '시'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치는 시인이었고,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대학 졸업 후 출간한 첫 시집으로 '예일젊은시인상'을 수상하기까지 한다. 참고로 그는 살아생전 20여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하지만 20대에 결혼해서 서른 이전 세 아이를 낳은 리치는 글쓰기의 단절을 겪게 된다. 이 시기의 경험이 이후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결정적 사유가 된다.
'딸'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라면서 많은 부당함을 몸소 겪기 마련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된 이후 여성들이 아내가 되고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부당함을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여성 선배들, 그리고 어머니 세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억압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주입한 '여성됨'이라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각성하게 된다.
리치의 특이점이라면 이것이 개인 혹은 백인여성에 한정된 형태로 발현된 것이 아니라, 레즈비언과 흑인 여성들, 노동계급 여성들, 유대인으로까지 확장되었을뿐더러, 더 넓은 의미로는 몰수당한 모든 이들, 소위 '자본 난민'들에게까지 그 영역이 점점 넓어졌다는 점이다.
그 모든 과정을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다시보기로서의 글쓰기」(1971)도 좋았지만, 1976년에 출간된 『여성으로 태어남에 대하여: 경험과 제도로서 모성』에 실린 「어머니와 딸」도 좋았다. 사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제도로서의 '모성'을 경험하게 되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밖에 없는데, 이 글에서는 그러한 사적 경험 이후의 리치를 만날 수 있다. 리치는 "어머니가 됨으로서 나는 급진적인 사람이 되었다"라고 고백했는데, 모성 경험이 어떻게 여성들의 세계를 형성하거나 혹은 파괴하는지, 그러면서 어떻게 '여성'에 복무하게 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밖에도 1979년에서 1985년에 쓴 글들을 모은 『피, 빵, 그리고 시』에 실린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1980)도 읽어본만 한다. 다른 글들에 비해 훨씬 학술적이고 아카데믹한 글이기도 하지만, 레즈비언이라는 논쟁적 주제(일반 사회뿐 아니라 페미니즘 내에서도)를 다루고 있어 매우 치열하고 진지하고 열정적인 리치를 경험할 수 있을 뿐더러,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지, 이들의 한계와 극복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딸을 잘 키울지 고민인 어머니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이다.
우리는 이중적인 메시지에서 놓여나야 한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여성의 계급이나 경제적 처지가 어떠하든 절반만 진실이다. '너무 멀리 가지 마라'는 잠재의식 속의 두려운 메시지만 속삭이지 말고 빠진 부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여자 아이는 아주 일찍부터 '되고 싶은 것'을 상상할 때조차도 실질적인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에 관해 딸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머니도, 심지어 청소년기 딸에게 피임법을 가르치는 어머니조차, 딸들이 세상에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될 기대와 전형, 거짓된 약속, 잘못된 신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수 있다"라는 말은 만약 네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사회의 기대에 맞서 너 자신을 우선할 수 있다면, 여성혐오라는 적대감에 맞서 꾸준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자 아이나 여성 청소년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면하게 될 처우를 설명해주는 것은 백인이 아닌 아이에게 피부색을 바탕으로 한 반응을 설명하는 일만큼이나 필요하다. (p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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