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글쓰기와 글읽기의 즐거움
참으로 닮고 싶은 삶이 있다. 생활의 어느 한 면도 놓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가며 가꾸어 가는 삶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대학의 행정을 책임지는 보직자로서, 학술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로서, 여가를 즐기는 생활인으로서,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분이 있다. 나의 대학시절 은사이신 이성호 선생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 이성호 선생님과 나의 인연은 각별하다. 대학시절, 선생님께서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을 하실 때 나는 영문과 학생회장을 했고, 졸업 후에도 선생님께서 한국영미문학교육학회 회장을 지내실 때 나는 그 학회 총무이사로 일했다. 그 밖에도 선생님과의 수많은 인연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란 힘들지만, 선생님께서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나는 실무자로서 그 현장에 있었던 셈이다. 정년퇴임을 하신 뒤 지금도 나는 선생님께서 쓰신 글모음의 발문을 쓰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늘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셨을 때, 여러 제자들이 조금 걱정을 했었다. 대부분의 은사님들이 퇴임을 하시고 난 직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무한한 자유 시간을 감당키 어려워 금단현상에 시달리셨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생님께서는 대학의 중요 직책을 수행하며 바쁘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등산과 골프를 즐기시고 서양문화와 연관된 여행을 다니시면서 틈틈이 써오신 글 솜씨를 뽐내시며 수필과 산문을 많이 발표하셨다. 그 동안에 쓰신 글을 모아 두 권의 글모음을 책으로 출판하셨지만, 세 번째 글모음이 될 이번 책은 앞의 두 권과는 다른 특별한 면모를 가졌다. 현대영미소설을 연구 강의해 오신 선생님께서 시 창작으로 글쓰기 영역을 넓히셨고 산문에서도 시 작품 감상을 주요 주제로 다루셨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현대영미시를 전공하는 내가 이 책의 발문을 쓰게 된 까닭이리라.
간간이 보내주신 글을 가끔 읽기도 했지만 이번에 한데 묶은 원고를 단숨에 다시 읽으며 나는 이 발문의 방향을 비평이나 분석이 아닌 ‘즐거운 글 읽기’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실제로 선생께서는 《문학에 대한 독자반응의 비교연구》라는 학위논문과 관련된 학술연구논문을 써오셨으며, 이 책에서도 독자 중심의 감성적 글 읽기를 강조하고 계시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자가 문학텍스트를 만나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영미시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또는 시인으로서 국내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늘 논리적인 지적활동을 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보다는 시를 연구대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며 파악하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선생님의 주장처럼, 어차피 문학은 허구이고 원천적으로 감성의 영역이므로 상상력을 활용하여 정서적 접근을 해보려 나 자신 애를 썼다. 이 책의 [문학텍스트 읽기] 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한 사람의 독자로서 “즐거움과 놀라움”을 만끽하기 위해 “무엇을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그 속으로 끼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이 글모음에서 선생님이 무엇보다 일반 독자들이 선호하는 ‘즐거운 글 읽기’를 강조하며 그것을 자신의 글쓰기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시인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잠재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독자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라. 텍스트와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그 즐거움에 몸을 떠는 상상력의 잔치를 말이다.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맨 앞에 나오는 〈시작하는 글: 아름답다고 말하는 독자〉는 총론 격으로 책 전체의 내용을 소제목으로 나누어 인상적으로 짧게 요약하고 있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시와 산문을 대비시켜 각각의 특징을 도드라지게 그려낸다. 시는 태생적으로 음악과 한 몸이다. 음성적 자질을 주요 특성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밤낮이 바뀌는 데서부터 별들이 일정한 궤도로 도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주만물의 움직임이 리듬 아닌 것이 없다. 그 리듬을 언어로 재현해 낸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유행하는 산문시조차도 “시의 특질인 리듬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산문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시”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소리 내서 읽을 때 제 맛이 드러난다. 그런데 시는 이 리듬을 타고 가다가 간간이 침묵을 한다. 이 침묵은 각각 행과 연 사이에 끼어든다고 한다.
산문에 비해 시는 압축적이고 간결한 형식에 걸맞은 내용을 담아야 하므로 보다 상상의 너비가 넓어야 한다. 따라서 독자가 끼어들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이 바로 독자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채워갈 수 있는 여백이고 독자와 텍스트가 소통할 수 있는 틈새이다. 틈새와 여백은 행과 연의 물리적 공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시어가 함축적이고 다의적이기 때문에 풍요로운 수사법이 또한 독자가 텍스트와 소통할 수 있는 놀라운 언어적 공간이 된다는 설명은 적절하다.
두 번째 글모음은 귀여운 손녀에게서 비롯된 심상을 시 쓰기로 승화시킨 글들이다. 아마도 선생님이 처음으로 발표하시는 여기의 시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적 리듬과 적절한 공간의 활용을 몸소 실현하는 경험의 장이다. 할머니의 등을 껴안고 옆으로 잠든 손녀의 천진무구한 모습을 칭송하려다 자신을 향한 사색의 글이 되었다고 고백한 시 쓰기의 현장이다. 긴장감이 팽팽하지 않은 것은 연륜이 깊어지면서 얻어진 세상사에 대한 긍정과 포용의 힘이 스며든 까닭이리라.
반면, 앞서 강조했던 리듬과 공간의 운용이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산 도화 남기고 겨울이 떠납니다]와 [수경이 잠 청하기]는 정형시와 다른 리듬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레 흐르고 있고, 행과 연의 운용에서 비롯된 틈새와 여백은 독자의 느낌과 생각이 끼어들기를 기다리며 소통의 공간을 지어내고 있다. 여기에 실린 열한 편의 시들이 대부분 순수, 청순, 천진무구에 대한 칭송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묶어 본다.
이어지는 〈시를 읽는 산문〉에서는 국내외 시인들의 시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몇 편의 영시를 우리말로 옮기고 구절구절의 느낌을 분석이나 해설이 아닌 감성적인 글쓰기로 풀어 낸다.
김선영 시인의 시 [작파하다]에서는 도자기를 굽는 선배 영문학자의 이야기가 끼어들고, 주페의 [시인과 농부]를 이야기하다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목장]으로 넘어가고,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에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넘나들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의 [빨간 외바퀴 손수레]와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을 씨줄과 날줄 삼아 엮어 짜는 식이다. 이렇듯 선생님은 국내외 시작품에서 시작해서 실생활의 에피소드로, 음악 이야기로, 단편소설로, 미술 작품으로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상상의 유영을 한다. 즉 즐거운 글읽기를 몸소 체험하며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산문으로 넘어가는 〈수필〉과 〈담론〉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꼭 시가 인용되지 않았더라도 시적 감성으로 사물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살아가는 일들을 조금은 가벼운, 조금은 무거운 터치로 다룬 글들을 갈라 선생님은 여행기, 추억담, 시사 담론, 제의와 제안 등에 이르기까지 잔잔하게, 애틋하게,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때로는 번득이는 기지로, 연륜이 배어나는 깊은 통찰력에서 비롯된 시적 산문을 써내려 간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수필도 흥미롭지만 나는 연륜과 통찰력이 배어있는 시사 담론에 눈길이 간다. 이 담론들은 필자가 평생 놓지 않았던 교육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교육이라는 화두와 문학을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가 부담 없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도록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
이 글모음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를 나는 천진무구함에 대한 찬양과 교육이라는 화두로 요약하고 싶다. 이 요약은 참으로 거칠기 짝이 없지만 이 글모음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터 잡고 앉은 무언가를 가감 없이 표현한 것이다. 선생님은 이 두 가지 주제를 ‘즐거운 글쓰기’로 실천해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운 글 읽기’를 체험케 하고 있다. 나 또한 이 글모음에 대한 ‘즐거운 글 읽기’를 체험하며 ‘즐거운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선생님의 글에 따르면, 독자의 의미는 텍스트의 수동적 이해에서 능동적 참여로 확대된다. 능동적 참여자로서의 독자와 잠재적 화두를 갖고 있는 텍스트 간의 의사소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본래 지니고 있는 빈틈을 독자가 의미 있게 채워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기 모은 글들은 선생님이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 또는 작가가 되어 텍스트를 만나고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의 기록인 셈이다. 벌써부터, 앞으로 쓰일 선생님의 새 글들이 기다려진다.
홍은택 (시인. 대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