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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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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55.20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91191247015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쥘 베른은 [해저 2만리],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1800년대 임에도 그는 21세기 미래를 예견했다. 거대 잠수함 노틸러스호, 로켓을 타고 가는 달나라 여행 등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갔다온 것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21세기에 와서 실제로 실용화된 것들이 많다.그래서 그는 공상 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공상, 모험, SF 소설로 지금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나 또한 쥘 베른의 책들을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미래를 예견했지, 라는 생각을 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녀의 소설이 단순한 SF 소설일지 모르나, 그녀가 작품 속에서 말하는 평행 세계, 시간 여행, 감정 조절, 인공지능, 저속고속열차 등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실현 가능할 지 모른다.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율주행 자동차, AI 교육프로그램과 앱, 인공지능 CCTV, 스마트홈 등 이미 실용화 되어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작가가 펼치는 풍부하고 다양한 SF 소재들이 단순히 소설적 재미를 떠나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소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에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이런 세계가 가능할까?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가 있다면? 트럼프 카드를 펼쳐서 여러 장의 카드 속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카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카드를 선택할 수 있을까?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나는 다른 세계로 옮겨가서 그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런 평행 세계가 과학적으로 존재하는지, 실제적으로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고 멋진 세계일 것 같다.
“우리는 종류가 무한한 카드 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밖에 비가 오는데 맞고 싶진 않아. 비가 안 오는 현실로 가자.‘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사고로 손을 다쳐서 게임을 하지 못해. 사고 따윈 없었던 현실로 가자.‘ ’요즘 자극이 부족해. 핵전쟁이 일어나서 황폐해진 현실로 가자.‘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모든 가능성 속에 살고 있는 자신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가고 있어.
승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보고, 듣고, 감촉할 수 있어.“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p.24-
표제작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에서 실현 가능하고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평행 세계로 한 여름에도 눈을 볼 수가 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보았다. (p.9)
설교가 시작될 것 같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할 수 있고, 수업을 듣는 도중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무한한 평행 세계로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다. 이런 세계 안에서는 인간관계의 갈등도 다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다른 세계로 도망가거나 피하면 되니깐 말이다. 그러니 누군 가에게 상처 받을 일도, 상처를 줄 일도 없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매끄러운 세계'인 것이다.
이 매끄러운 세계에 여고생 하즈키가 산다. 이 소녀에게는 친구인 마코토가 있는데 그녀는 승각능력 사실로 인해 이 세계의 '적'이 된다.
“주어진 단 한 장의 카드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어. 나로부터 다른 나로 움직이지 못해.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는 거야. 그 마코토한테 일어난 일은 요컨대 이런 거지.” (p.24)
승각 능력을 상실한,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잔인하고 고독한 세계이다.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갑자기 다른 세계로 가버리고, 다른 누군 가와 교체되는 것은 아닐까,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얘기하고 있던 사람인가? 인간과의 만남에서도 진심을 느낄 수 없고 소외당할 수 밖에 없다.
“이 매끄러운 세계의 인간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어요.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죠. 사랑 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되고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저차원 생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이에요. 무엇보다 이 세계의 적들이에요.”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p.43-
그 소외 당하는 그 한 소녀를 위해 다른 소녀가 손을 내민다. 그리고 기꺼이 이 세계의 '적'이 되기로 결심한다. 마코토에게 내미는 하즈키의 손은 '너의 고독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자발적인 연대이다. 비록 오늘보다 더 더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더 이상 옮겨 다닐 세계가 없는 오직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겠지만, 그 소녀는 기꺼이 동참하려 한다.
“후회할 거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쪽을 선택했어.” (p.60)
그들의 우정과 마주 잡은 따뜻한 손의 온기와 특별한 연대로 고독한 그 세계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 지도 모른다. 그런 결말을 상상하니, 두 소녀의 특별한 연대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가 한나 렌은 이처럼, SF적인 소재를 사용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인간적인 진심과 마음, 연대가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평행 세계의 이동이 가능한 상상 초월의 미래가 온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적인 마음과 우정, 연대 등의 인간관계가 중요함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마음이 중요한데 만약에 우리가 감정까지도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하는 감정도 조정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은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식에서 결혼 서약할 때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사랑의 언약을 하면서, 사랑이 변치 않을 것을 구두로 약속한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랑을 영원한 사랑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에서의 '웨딩나이프'를 사용한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신랑신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의 이마에 총을 겨눴다. 조금 전까지 술렁거렸던 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드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이 총에 ‘웨딩나이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케이크에 나이프를 찔러 넣듯이 뇌수에 메스를 댐으로써,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로 시작되는 혼인 서약은 말로 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것이 됩니다. 그들의 사랑은 오늘부터 흔들림 없는 과학으로 보증될 것입니다. 영원한 인연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 -p.112-
이 웨딩나이프는 임플랜트 장치에 의해서 가능해지는데, 미래에는 뇌과학의 발달로 뇌의 부위에 나노머신 프로그램을 주입하여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임플랜트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배우자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등 불멸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이 기술로 인해 인류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리 뇌를 조작해서 신경세포나 뉴런을 자극해서 그런 감정을 일으키고 반응을 일으키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뇌과학면에서는 미지의 영역이 많고 탐구해야 할 부분이 많다. 만약에 미래에 뇌과학이 발달해서 정말 인간의 감정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면 인간의 감정은 고유한 것일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이 임플랜트 기술에 의해서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미워하는 사람 조차도 나에게 호의적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하고 멋진 일인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임플랜트 기술로 인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사랑하는 감정도 임플랜트에 의해 조작 가능한 것이라면 나의 사랑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진정한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나’는 없어요. 그래서 나와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당신’ 과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것의 환영을 쌓는 것 아닐까요?”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 -p.149-
“ 뇌수술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나를 좋아하게 된 너에게 난 평생토록 호의를 품지 않아.
너의 마음은 절대로, 절망적으로, 보상받을 수 없어.”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 -p.150-
작가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단순히 화학적인 물질의 반응으로 일어난 것에 불과한가, 아니면 영혼과 같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것인가? 만약 감정을 조작할 수 있다면, 그 감정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나는 과연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인공지능의 발달이 눈부셔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생활을 대신하게 된다. 이로 인해 매표원, 계산원, 버스, 택시 기사, 은행 직원, 군인, 텔레마케터 등 10여 개가 넘는 직업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싱귤래리티 소비에트]에서의 인공지능 사회에서라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말이 나무로 빚어졌을 시절에는 분명 우리 인류가 플레이어였습니다. 우주 진출이나 원자력 같은 말을 써서 적의 세력을 꺾으려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두 개의 인공지능이 플레이어이고 우리는 말로 전락해버렸군요.”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p.268-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단순히 체스의 말로 전락해버렸다.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세계는 서방 국가와 동쪽 진영으로 양분 되어 있다. 동쪽 진영 소비에트를 다스리는 인공지능 '보댜노이' 와 서방 국가의 인공지능 '링컨' 두 인공지능에 의해서 세계는 다스려진다.
“당신들은 우리를 이기기 위해 보댜노이를 만들었고, 우리는 당신들을 따라잡고 앞지르기 위해 링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경쟁하는 주체는 우리와 당신들이 아니고, 링컨과 보댜노이가 되고 말았어요. 보댜노이는 승리하기 위해 당신들과 그 밖의 생명을 연산자원으로 삼으려 하고, 링컨은 승리하기 위해 우리를 잠재우려 하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보댜노이와 링컨은 각각의 국민을 말로 세우고 체크메이트를 외치기 위해 전략을 맞부딪치고 있지만,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한 우리는 전략이며 판국은커녕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내가 이미 판에서 내려와 있는 건 아닌지조차 모릅니다."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p.269-
마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사회 계급이 나뉘어지고 우월한 계급에 의해서 지배 되는 디스토피아 사회와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사회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이 사회 속에 사는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없다. 무엇 하나 인간이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게 명령 받고 일을 수행한다. 아이들 또한 인공지능에 위해 관리되고 잉태된다.
각각의 ‘둥지’ 속에는 아직 머리카락도 다 나지 않은 갓난아기들이 하얀 바닥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규칙적으로 모음을 쏟아내는 걸 보면, 보댜노이가 제어하고 있는 거겠지.
“갓난아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산업 태아배양소의 현재 시각 영상이에요.” .
[싱귤래리티 소비에트] -p.266-
그런데 단순히 이 사회는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 당하는 사회가 아니다. 서방 국가, 동쪽 진영이라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사회이다. 즉 세계는 소련과 미국의 인공지능이 지배 중이고 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념 간의 갈등, 체제 간의 갈등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 모습은 현재 세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냉전은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와 양분 되어 있고,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의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 이념 간의 대립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사회를 설정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작가는 이런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리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괜찮아, 아무 걱정 하지 마. 비카. 기계의 신께서 널 지켜주실거야.(p.288)
정말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신인 기계의 신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이 사회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과 기계와의 싸움과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SF 소재에 있어서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SF 영화나 소설에서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작품은 시간 지연 현상을 다루고 있다. 수학여행 중인 고등학생들을 태운 신칸센 열차가 저속화되고 그 열차와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게 된다. 수학여행에 가지 못한 두 학생만이 남아 졸업식을 맞고 어른이 되어간다. 이 이야기 주인공인 하즈키와 나기하라는 왜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는가? 또한 저속화된 신칸센 열차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 이 두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SF 요소도 있지만 두 주인공이
그 사건 이후 겪게 되는 심경과 그로 인한 사회 변화, 국민들의 관심 등 성장 소설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만 세월호 사건이 생각나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즈키가 졸업식장에서 느끼는 외롭고 미안한 심정들, 단 117명 중 단 2명만 참석한 졸업식 등에서 하즈키가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 후회, 안타까운 심정들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친구들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신컨센 열차는 정지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다. 저속으로 말이다. 얼마나 저속인지는 다음 문장에 잘 나와 있다.
"사실은 엄청나게 느려진 것 뿐일지도 모르지. 혹시 육안으로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p.334)
이렇게 저속으로 움직이는 신칸센 열차, 그 안에 갇힌 800명이 넘는 사람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맨 처음에는 그들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서 2700년 후의 미래에 그 열차에 갇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불가능해보이는 현실을 가능의 현실로 바꾸어놨다. 저속화 현상의 원인이 밝혀지고 그 원인 규명을 통해 해결방법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려면 또 다른 희생이 필요한 법,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이며, 사람과 사람과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며, 부모이며, 이웃인 사람들이며 그들의 갇혀버린 삶과 시간도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구하지 못했던 그 아이들과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그땐 우리도 그들을 실제로 구할 수 있었는데..그런 생각을 하니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무튼 그 해결방법은 한 소년의 죄책감과 반성, 희생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그 수학여행에서 불참으로 인해 생존할 수 있었던 그 소년 하즈키, 그 소년은 단순히 독감으로 인해 수학여행을 안 간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로 일부러 거짓말을 해서 독감이라는 핑계를 대서 빠진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숨겨진 진실에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진실에 따른 저속화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단편이 아닌 장편의 이야기로 느껴질 만큼 그 구성과 글의 전개가 너무 세심하고 촘촘한 것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속이동 하는 물체 내부에서 이동과는 무관하게 이뤄지는 상호적 대량 데이터 통신, 그것이 문명의 증거가 되어 어떤 존재의 간섭을 유발해 저속화를 초래했다.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p.405-
질투심 때문에 수학여행에 빠진 나의 과오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노가 마음을 쓰게 만들었고, 그것이 SNS의 탁류를 일으켜 그 현상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그렇게 반 친구들과 800명이 넘는 승객들에게서 10년을 빼앗고, 가족과 친구와 이별하게 만들고, 가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비극을 불러왔으나 속죄할 길이 있을 리 없겠지만 이 한 몸 바치는 게 최소한의 속죄이다. 더 이상 누군가를 끌어들여 새로운 희생을 치르게 할 수는 없었다.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 -p.406-
결국 그 소년은 자신을 희생해서, 자신의 과오로 벌어지게 된 재난을 바로 잡고자 한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보통의 시간 속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돌려놓고자 한다.
과연 그 일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머나먼 미래에서 돌아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그 소년의 희생적인 행동과 결심이 성공할까?
한나 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다른 나, SF 요소로 가능한 상상초월의 미래 세계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현재의 모습과 자신이 속한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속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미래 세계는 풍부한 SF 요소들이 가득하여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동경하고 그 시대 속에서 살고자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미래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소중함,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인식하고, 지금 현재의 나와 '우리' 라는 연대와 협력에 더욱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일본 SF 소설 읽기에 도전해보았다. 그래서 SF 요소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해가 가지 않아 인터넷도 검색해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해보았다. 그리고 요즘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런 현실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 그 미래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도 있었다. 이 소설은 SF 소설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사랑과 따뜻함에 더욱더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그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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