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4 이상구(flypaper@yes24.com)
5000원에 1,2권을 다 사고 1000원을 거슬러 받는 싸구려 문고판 탐정소설인 이 책은, 그 부담없는 가격 만큼이나 아무 부담없이 주절주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탐정하면 흔히 연상할 수 있는 홈즈나 루팡, 포와르 등으로 대표되는 지적이고 명료한 암체어 디텍티브(Armchair Dectetive)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의 탐정 '필립 말로우'를 통해 작가는 추리소설에서의 리얼리티를 살려 일정정도의 문학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하지만 작가의 순수한 의도는 보르헤스의 다음과 같은 멘트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현재 미국의 탐정소설은 아주 타락했다. 탐정소설은 사실주의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리고 폭력적인 섹스물이기도 하다. 어쨌든 탐정소설은 사라져 가고 있다. 사람들은 탐정소설이 원래 지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아직도 지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영국의 탐정소설은 시골 마을을 무대로 아주 담담하게 전개된다. 모든 얘기가 지적이며 담담하다. 폭력이라든가 흥건한 핏방울은 나오지 않는다.(보르헤스,<허구들>, 녹진)
데쉴 헤밀트의 <몰타의 매>에서 창조됐다고 하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은 사실 보르헤스의 말따라 사실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타락한 펄프 픽션에 가까운 면이 있다. 예리하게 단서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나, 명석한 두뇌를 회전시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기막힌 결말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허를 찌르는 예각의 긴장 같은 것도 거의 없다. 대신 좀 어눌하고 흔한 설정이 그 자리를 메꾼다. 홈즈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와트슨의 과학적인 자문 아래, 조그만 단서도 놓치지 않는 천재적인 명석함을 보여 준다면, 필립 말로우는 면도날에 턱을 베인 채, 통조림으로 아침을 떼우고 뒷골목에서 몸을 던지는 터프함을 보여 준다. 홈즈가 명석한 두뇌만큼이나 뛰어난 복싱 실력으로, 일대일 상황에서도 결코 지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 주는 반면, 필립 말로우는 술에 취해 흑인 건달이나 남미계 하인들에게 얻어 맞고 다니는 엉성함을 보여 준다. 홈즈의 주 고객층이 고위층 관료나 부유한 귀족들인 반면, 필립 말로우는 푼돈에 불과한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그 흔한 일상사에서 무슨 소설적 상상력을 얻겠는가?'하는 불만을 만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명석함도, 예리함도, 촌철살인 하는 간결한 센스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필립 말로우는 기존 추리 소설의 '기승전결'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 별다른 긴장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필립 말로우에게도 훈훈한 미덕은 존재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대인관계도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학생 보다는, 좀 어눌하고 서툴고, 실수도 많은 평균치의 학생이 친구가 많은 것처럼....필립 말로우는 그런 평균치 인간이 보여 주는 부담없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얻어 맞고 다닐지언정 남의 등을 치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차가 집앞을 지나갈 때마다 짖어댄다고 해서 개를 독살하려 드는 할머니의 범죄 현장을 붙들어 달라는 여자의 의뢰에, 사내로서 집 뒤뜰에 이주일이나 숨어 있는 짓은 할 수 없다고 자존심을 세운다. 상습적인 도벽이 있는 점원에게 처지가 곤란한 주인을 대신해서, 협박전화를 걸어 달라는 여자의 부탁에도 신사로서 할 일이 아니라도 정중히 거절한다. 의리 빼면 시체인 영락없는 사내 스타일의 이 탐정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만취한 사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길거리의 창부들에게도 험하게 대하지 않는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심성은 착한 사내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럴싸한 유머 감각과 적당한 인문주의적 교양 또한 찾아 볼 수 있다.
줄거리는 그런 싸나이 사설 탐정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만취한 사내 테리 레녹스의 멕시코 탈출을 도와 주고, 백만장자 귀족의 딸이였던 아내의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의 도망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까지 친구를 지키려 하지만,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함에 따라 풀려난다. 하지만 길거리의 취객에 불과했지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테리 레녹스의 무혐의를 벗기고 억울한 자살을 해명하기 위해 그 사건에 발벗고 뛰어드는 필립 말로우를 둘러 싸고 의문이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심지어는 실종된 베스트셀러 작가를 찾아 준 인연을 계기로 알게된 웨이드씨의 살인범으로 몰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면서...긴장감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 의문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과연 테리는 왜 멕시코에까지 가서 의문의 자살을 했는가?', '작가 웨이드씨는 자살인가 타살인가?', '필립 말로우를 살인범으로 지목한 작가의 아내는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는가?', '주머니칼을 숨기고 다니는 웨이드가의 하인 캔디는 또 누구인가?' 등등, 의문의 꼬리는 점점 늘어나는데.....
챈들러의 작품은 몇년전에 시그마북 #22로 출판된 <안녕, 내사랑>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문고판으로 나와 있다는 <오랜 이별>을 찾아 봤지만 절판되어 대형 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뭐..영락없이 페이퍼백 원서로 읽어야할 불운이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자전거 열쇠 교체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작은 서점에서 반갑게 이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싸구려 문고판이 왠지 반가웠던 이유는....뭐 별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어떤 작가가 이 책을 열두어번가량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젊은 시절 꽤 큰 감명을 받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데, 순진하게도 그 작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주적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었다. 그런데...읽다 보니 '과연 그렇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이 문학적인 원숙한 완성도를 보인다거나, 구성이 탄탄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 어떻게 보면 좀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필립 말로우로 대표되는 등장 인물들은 정말 열심히 산다.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안일하게 운에 기대거나 운명에 굴복하거나 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삶의 척도이고 나침반이며 동시에 희미한 등대이다.
괜한 덧붙임일지 몰라도, 난 '비정한'으로 번역되는 '하드보일드(Hard-boiled)라는 단어가 '건조한' 내지는 '냉담한' 정도의 감성적인 뉘앙스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어줍짢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이러한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서 오오라!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하드보일드'는 느낌으로 이해되는게 아니라 실체, 또는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계란의 딱딱한 껍질을 투과해 속을 완전히 익힐 정도의 고온까지 끓어 오른' 상태가 '하드보일드'라면, 인생에서의 하드보일드라면...계란이 익을 정도의 온도의 온갗 삶의 굴곡을 거친 상태를 뜻하게 된다. 삶의 풍파에 속까지 단련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드보일드한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절제하며, 성격면에서는 약간은 싸늘하고 냉담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삶 속에서 단련된 만큼 비겁하거나 치사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미가 돋보일 정도로 따뜻한 면이 있다. 여전히 사전적인 의미로 딱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쉴 헤밀트, 챈들러를 거쳐 현대에까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하드보일드'라는 단어에는 '도시적인 시니컬함', '니힐리즘'이라는 의미 이상의 많은 뜻이 가능함을 생각할 수 있었다.
두권 합쳐 500페이지에 이르지만, 책값은 4000원에 불과한 싸구려 문고판 탐정 소설, 168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챕터 21을 데굴데굴 구르며 읽었던 <기나긴 이별>, 언제 기회가 되면 페이퍼백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의심이 짙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