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문
외국작가
문학가
송지문(656?∼712?)은 자(字)가 연청(延淸)이고 일명 소련(少連)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괵주홍농(?州弘農), 즉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링바오현(靈寶縣) 사람이다. 상원(上元) 2년(675)에 송지문은 심전기와 나란히 약관의 나이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이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35세까지 습예관학사(習藝館學士) 등의 벼슬을 지내며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유지하다가, 약 36세에 병이 들어 40세까지 육혼산장(陸渾山莊)에서 칩거한다. 이후 다시 관직의 세계로 돌아와 낙주참군(洛州參軍) 등을 지냈고, 심전기 등과 더불어 ≪삼교주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의 나이 약 42세부터는 봉환령(奉宦令)의 신분으로 당시의 권력자인 장역지(張易之), 장창종(張昌宗) 두 형제를 섬기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 후일 신룡(神龍) 원년(705)에 장간지(張柬之), 경휘(敬暉) 등이 장역지 형제를 척살하고 동시에 무후(武后)를 강제로 폐위시키며 중종(中宗)을 옹립하는 정변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송지문 역시 이에 연루되어 농주(瀧州)로 폄적을 당한다. 그러나 이듬해에 황제의 사면을 받는다.
조정에 돌아온 송지문은 그해 바로 홍려주부(鴻?主簿)가 되어 정치에 복귀하게 되는데, 이후로는 특히 위후(韋后), 무삼사(武三思)와 안락공주(安樂公主) 등의 정치 세력과 가깝게 지낸다. 그런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송지문이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지낼 때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월주(越州), 흠주(欽州) 등으로 유배를 돌다가 끝내 현종(玄宗) 원년(712)에 사약을 받아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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