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미드 포크너
John Mede Falkner
외국작가
문학가
1858 ~ 1932
1858년 5월 8일에 영국 윌트셔 주에서 국교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1878년 8월에 옥스퍼드 대학의 하트퍼드 칼리지에 입학하여 1882년 8월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에 그는 광범위한 독서를 했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만이 아니라 현대 언어도 몇 개나 숙달했다.1882년 말 그는 뉴캐슬 근처의 엘즈윅에 있는 암스트롱-미첼 사(세계 굴지의 엔지니어링,조선,병기제조회사)의 부회장인 앤드루 노블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자리를 제의받았고, 이것을 계기로 노블 집안과 인연을 맺는다.
1888년에 존은 암스트롱-미첼사의 비서가 된 그는 능력도 있고 노블 집안에 연줄도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승진했으며, 1901년에는 이사가 되었다. 그는 외국어 능력 덕분에 전 세계의 군사보고서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여 외국 정부와 직접 교섭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물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한창이던 1915년에 앤드루 노블이 죽은 뒤 포크너가 이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암스트롱사는 영국이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병기의 주요 공급처였다. 전쟁이 한창일 때 이 회사는 7만 명이 넘는 남녀를 고용했다고 한다. 포크너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1921년에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그 뒤에는 중역으로 남아 있다가 1926년에 은퇴했다.
포크너는 모든 종류의 중세 전승에 매혹되었으며, 희귀본, 특히 희귀한 기도서를 열심히 수집했다. 그는 평생 동안 기묘한 이중성을 유지했다. 중세적 기질을 가진 이 인문주의자는 정실인사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대기업의 이사회 회장이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사의 창업주와 유능한 후계자가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 결과였다.
그는 모든 의미에서 아름답게 글을 썼다. 서경(書痙) 때문에 글씨를 쓸 수 없게 될 때까지, 중세 최고의 필경사들의 글씨를 본뜬 그의 서체는 아름답고 장식적이었다. 그의 편지는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독창적이고 기민한 정신의 활동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초기 문학작품 가운데 일부는 교육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옥스퍼드셔의 역사』, 『옥스퍼드셔 여행안내서』『버크셔 안내서』등이 그런 작품에 속한다. 그는 이 책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고 시골 교회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답사여행을 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사라진 스트라디바리우스』(1895)로 이름을 날렸으며, 스티븐슨의『보물섬』과 비교되는『문플릿』(Moonfleet, 1898)과『구름무늬 코트』(The Nebuly Coat, 1903)를 남겼다. 네 번째 소설을 꽤 많이 썼지만, 원고가 들어 있는 가방을 더럼에서 엘스윅으로 가는 통근열차에 놓고 내렸고, 그 원고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작품을 다시 쓰라고 자주 간청했지만, 그는 너무 늙어서 더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1932년 7월 22일에 사망했다. 하나 남은 남동생 찰스도 같은 해에 죽어서, 버퍼드 교회 묘지에 형과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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