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외국작가
1841 ~ 1919
프랑스 리모주 출생. 4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다. 집안이 가난한 양복점이어서 13세부터 도자기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였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힌 것이 뒤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점심시간에는 루브르미술관에서 J.A.와토나 B. 부셰 등의 작품에 이끌려 화가가 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4년 후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 겨우 부채그림이나 점포장식 등을 하였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C.모네, A.시슬레, 바지위 등을 알게 되고 또 C.피사로, P.세잔, J.B.A.기요맹과도 사귀어,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초기에는 코모,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고,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종군한 후에는 작풍도 점차 밝아졌다. 그리하여 인상파의 기치를 든 1874년 제1회 전람회에는 [판자 관람석](1874)을 출품하였고, 계속하여 제2회와 제3회에도 참가하여, 한동안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더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하였다. 대작(大作) [물랭 드 라 갈레트 Le Moulin de la Galette](1876)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1879)은 인상파시대의 대표작이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한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描法)이 크게 바뀌었다. 즉 담백한 색조로써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1884~1887) 등을 그렸다. 그 후는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재차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다. 더욱이 1890년대부터는 꽃 ·어린이 ·여성상, 특히 [나부(裸婦)](1888) 등은 강한 의욕으로 빨강이나 주황색과 황색을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채로 떠올리면서 부드럽고 미묘한 대상의 뉘앙스를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프랑스 미술의 우아한 전통을 근대에 계승한 뛰어난 색채가로서, 190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제작하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최후 10년 간은 조수를 써서 조각에도 손대어 [모자(母子)](1816)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최신작
-
[eBook] 작고 아름다운 르누아르의 미술수업
[도서] 작고 아름다운 르누아르의 미술수업
[도서] 마리갤 1-3, 인상주의-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