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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8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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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08쪽 | 412g | 128*188*30mm |
ISBN13 | 9788954699914 |
ISBN10 | 895469991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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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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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림이 없다. 막힘없이 곧장 나아간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던 역사적 현장, 하얼빈을 향해.
<하얼빈>은 안중근이 태어나기 전에 북두칠성이 보였다는 이야기나, 다른 철부지들과는 확연히 달랐던 그의 비범한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가 된 안중근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김훈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직전과 직후의 안중근에만 집중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안중근의 마음이었다. 세례까지 받았던 독실한 천주교인이 어쩌다 살생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믿음 사이에서 어느 것을 골라야 옳을지 번민하지 않았을까. 안중근의 전기에서는 그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전기에 묘사된 안중근에게는 번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안중근은 단번에 결심하며, 단박에 이토를 쏜다. 그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느낄 수 없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번민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목적지 없이 방황한다. 부인 김아려에게 남편은 어색한 나그네였다. 그는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떠나는 사람이었다. 안중근은 상해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밖을 떠도는 그의 모습에서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았다.
안중근이 가장 먼저 떠돈 곳은 상해였다. 그는 상해에서 동지를 모아 독립의 실마리를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상해에서 안중근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상해에 갔을 때, 안중근은 변변한 가문도 직업도 없는 한량이었다. 독립에 대한 안중근의 뜻은 그의 초라한 배경에 가로막힌다. 안중근에게 대문을 열어주는 이는 상해에 없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안중근의 모습은 생소했다.
하얼빈 역에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토를 저격할 때까지, 안중근의 총구는 계속 흔들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병 활동을 하는 동안, 안중근은 일본군 포로들을 쏘지 못하고 풀어준 적이 있었다. 심지어 포로들에게 빼앗은 소총까지 줘서 돌려보냈다. 부하들이 강력히 반대했지만, 안중근은 포로를 쏘는 것과 적을 쏘는 것은 다른 일이라며 끝내 포로를 풀어주고 만다. 이 일로 안중근 부대의 위치가 탄로난다. 그의 부대는 쫓기고, 죽임 당하며, 끝내 산산히 흩어진다.
안중근은 이토를 쏘기 전까지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이토가 하얼빈역에서 내렸을 때, 안중근은 지체 없이 이토를 향해 세 발의 총을 쏜다. 이토에게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이, 안중근이 총을 쏘며 흔들리지 않았던 유일한 때가 아니었을까. 그의 총구는 수천 번의 흔들림을 겪고나서야 비로소 이토를 향해 고정될 수 있었다. 안중근도 끝없이 고뇌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하얼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토를 쏘고, 그가 쏜 총알에 이토가 죽은 것은 모두 한 순간의 일이었다. 하지만 안중근의 생애는 이토를 쏘기 전부터, 이토를 쏘고 난 뒤에도 지지부진하게 계속되었다. 누군가는 안중근의 거사에 속이 통쾌했을 테지만, 안중근의 생애는 통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뜻은 번번이 좌초되었다. 이토 저격을 성공한 뒤에도 그랬다.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이유는 세상에 자신이 이토를 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일본의 사법체계와 그의 정치적 의도를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는 일본에 의해 좌절되었다. 일본은 안중근이 이토 저격의 이유를 밝히는 것을 번번이 막으며, 재판 내내 그의 의도를 축소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본의 명백한 의도 속에 안중근이 벌인 거사는 폄하되었다.
“안중근은 범행에 사용할 자금이 없어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석산에게 백 루블을 강탈했고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하숙집에 숙박비 칠 루블이 밀려 있다. 이런 부랑아들이 천하를 짊어지겠다는 것은 미치광이의 과대망상이다, 라고 미조부치는 말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정치범이 아니고 사전 공모에 따라 범행한 살인범이라고 미조부치는 결론지었다.”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고 소망한 것은 두 가지였다. 부활절 이전에 죽는 것과 조선이 독립될 때까지 하얼빈에 묻히는 것. 안중근은 원하는 시일에 죽을 수 없었고, 죽은 뒤에는 소망한 곳이 아닌 교도소 내의 공동묘지에 묻혀야 했다. 이토를 죽이는 것을 제외한 안중근의 나머지 뜻은 모두 좌절되었다. 김훈은 안중근의 좌절을 소설속에 담담히 그려낸다. 그의 담담한 문체는 안중근의 삶을 한층 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통쾌한 사건 뒤에는 통쾌함과는 거리가 먼 길고 지루한 과정이 있었다. 통쾌한 복수와 호쾌한 결말을 가진 스토리가 사랑받는 시대에 <하얼빈>은 따분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소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훈은 통쾌하지 않을 권리를 택함으로써 인간 안중근과 가장 가까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이다 활극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일이 명쾌하고 통쾌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다. 인간의 생애는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 보다는 김이 빠지고 미지근한 콜라와 가깝다. 통쾌하지 않은 것이 인간과 가까운 성질이다. 김훈의 <하얼빈>에 나오는 안중근의 인간다움은 끝없는 실패와 좌절에 있다. 소설에서 안중근의 삶은 이토를 저격한 순간 잠시 반짝였고, 그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빛이 점멸해 있었다. 우리의 삶이 대게 그렇듯이.
안중근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다면, <하얼빈>이 바로 그 장소다. 어서 달려와 <하얼빈>에서 인간 안중근과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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