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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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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446g | 124*210*30mm |
ISBN13 | 9791191859379 |
ISBN10 | 1191859371 |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08월 02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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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펼치고 천천히 “시”를 읽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한 때는 나도 하늘과 별과 시에 눈물방울 찍어내던 감성 소녀였건만, 세상사에 시달리는 어른이 되고 만 지금 “시는 무슨 시!?”라며 무심한 인간이 되었다. 집의 책장을 훑어보니, 시집이라고는 딱 한 권뿐이었다. 이래저래 인생에 치여 살다보니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구나...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인생의 역사”라는 시화집을 읽자고 한다. 솔직히 제목만으로는 썩 내키질 않았다. 인생도 별로고, 역사는 더더욱... 거기다 시화집이라고? 그래도 읽자고 하니, 어쨌든 책을 사들고 왔는데, 한마디로 뜻밖이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생업이 빡세서 책을 맘 놓고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불고하고, 이 책은 꽤 짧은 시간에 다 읽어냈다.
그리고 참 가느다랗긴 하지만, “감성”이란 것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반갑고, 다행스러웠다.
이 책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달려가기만 하던 인생에 아주 잠시나마 브레이크를 걸고 내 앞에 놓인 삶을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도 있고, 새로이 알게 된 작품도 있는데, 나와는 다른 시각, 또는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시의 해석 방법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시화집의 제목이 왜 “인생의 역사”일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좀 더 감상적이고 예쁜 제목을 달지, 뭔가 밋밋하기도 재미없기도 한데다 무겁게까지 느껴지는 “인생의 역사”라...
인생이 뭐지? 그냥,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살아지는 게 인생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아니란다. 책 머리말 첫 문장부터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아, 인생이여’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어로 ‘아이고, 인생아’라고 한다. 불쌍해서, 죽일 수도 없을 만큼 불쌍해서. 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pp6-7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이 ‘인간이라는 직업 (알렉상드르 졸리앵)’을 가진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나도 인간이라는 직업을 갖고 태어나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얼마든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있겠구나.
책은 5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고통의 각’이다. 고통의 뾰족한 각으로 시작된 인생은 2부 사랑의 면으로 이어지고, 3부 죽음의 점을 지나, 4부 역사의 선을 긋는다. 그 선으로 결국 5부 인생의 원이 완성된다.
각 부마다 잊지 못할 시와 글귀가 가득하지만 각자 자신이 걷고 있는 인생의 길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몇 편을 이 중에서 건져 올린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지 않을까
인생은 어차피 고통임을 느끼고 있는 요즘, 1부 고통의 각의 글들이 무겁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 중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대하여’에서는 욥의 마지막 말이 소개 되는데, “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면서, 아직도 되풀이 되는 현실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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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다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를 만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이런 문장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이들이 이 글을 꼭 읽었으면 한다. 위로가 되든 아니든...
참으로 섬세하고 예민하게 인생을 들여다 본 저자 덕에 내 인생을 다시 보듬게 된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고, 한 번 택한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책은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동감하며, 그래도 이왕 걸어온 내 인생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은 또 어떻게 가야 할지를 가늠해 본다.
마지막 편으로 실려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읽어본다. 여러 갈래의 길이 펼쳐지듯. 이 시의 해석 또한 여러 갈래 일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길이 비록 꼭 옳은 길이었는지, ‘험로를 택한 자’였는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 눈 팔지 않고 여기까지 왔음에 스스로에게 지난날을 미화 시키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일까?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 또 두 갈래 길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 두 갈래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할까?
책을 덮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밥 딜런의 노래처럼 다가오는 후배들에게 나의 길을 비켜 줘야 할 때, 때 맞춰 그 길을 비켜 줘야 함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언제고 이 책은 다시 한 번 펼쳐 읽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꼬마 때부터 좋아한 박하사탕 두 알 양쪽 볼 빵빵하게 넣고 이 글을 쓴다. 2부가 1부보다 훨씬 진하다. 신형철 표 명언들(아포리즘)로 가득하다. 포근한 일상의 웃음과 함께 해서 그런지 한 편 한 편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이야기로 시작해서 더 만족스러운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가 낳은 페스티발과 근대영어의 창시자. 이탈리아의 시풍을 영국적 소네트로 재창출한. 그의 시와 희곡은 ‘운문’이라 각운을 맞추며 비유와 대구의 배틀 장소가 된다. 어휘가 제한적인 시대인데도 그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생생한 데생처럼 묘사한다. 어려운 대사를 외워 연기하는 배우들은 더 훌륭하고.
인간세상의 대부분이 필멸하기에 예술가들은 시간을 고정forever frozen still시키고자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작품)은 변하고 소멸하는 속성에 저항하는 하나의 몸부림이자 투쟁이 된다. 나도 소설 ‘스토너’의 초입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에 전율했었다. 소네트 한 편이 불러들이는 긴장감이란. 한사람의 인생 장악은 독자에게로 옮겨 붙는다. 팽팽하게 끊길 듯 놓지 않는 고무줄 같은 삶이 나와 너무 닮아서, 독서토론 때 엄청 씹었던 기억이 난다. 닮은 사람은 답답해. 진지함과 다크함은 내가 2~3인분하면 되니까 빠져.
지금과 비교하면 16세기에는 짧은 인생이 배로 두려웠을 것이다. 신형철의 73번 해석은 “여하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81).” 때가 되어야 들리는 말이 있다. 대학 은사님이 선물했던 책을 최근에 읽었다(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ㅎㅎ). 삼십 년 후에 당도한 말. 불시착 안 되고 도착한 게 어디여^^. 볼 때마다 “너 나 싫어하지!” 하시는데도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안궁금으로 정정. 이상형 발표 시간에 내 얘기에 “그런 사람 없다”고 저주한 분, 나빠.
사실 나는 시를 어려워한다. 조금 보여주고 알아서 알아들어, 이거 폭력 아닌가?^^. 반면 지인들은 대체로 시를 암송하며 만만하게 본다. 신 평론가는 번역시를 읽을 때면 “성실한 실패작”을 대하는 심경이라며 “포기하기보다는 평생을 두고 읽어야겠다고 결심(87)”한단다. 초점과 스케일이 애초에 다르다.
시를 읽게끔 유혹하는 문장도 남다르다.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87).” 이런 교육과 연습을 딥따 받은 지인들은 사회에서 소통하기 귀찮은 존재가 된다. 문학전공자들끼리 몰려다닐 때 민망해서 웃는 일이 잦다. 자꾸 디테일하게 별의 별 것들을 다 물어.
시인 릴케를 내가 쉽게 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라던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시니컬한 개탄이 섞인다. “연인들이여, 그때에도 너희들은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 가는가!” 소멸과 사라짐은 자연 현상임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사랑은 시간을 멈추고 장소를 보존한다. 그것은 ‘순수한 지속’이다. 그런데 릴케의 요점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모든 ‘첫’들이 지나고 나면 연인들은 ‘멀어진다는 것’(89)”이다. 그러니 좀 이르더라도 두 눈 딱 감자.
지독한 러버인 저자가 격정적 사랑으로 사랑이 탕진되지 않도록 ‘살며시 어루만지는’ ‘절제하는’ 사랑을 말할 때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90)”이라는 문장에 백분 공감한다. 구원 환상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이미지 모두 천상계의 이야기로 위험하다. 특히 상상 속에 만들어진 신격화는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환상을 쫓고 옥죄는 거라 만류하고 싶다. 감정이 활화산이다 일순 휴화산이 되어버려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흐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사랑인가, 아니면 연민인가를 두고 고민해본 적이 다들 있을 거다.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사랑의 발명’ 믿음에 빠진 사람들을 볼 때면 신기하고 부럽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헌신하겠다는 건데. 엄마의 지독한 희생과 책임짐을 봐버려서 굳이 나서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동정이 사랑으로 도약할 수는 없다는 것(96)”만 인지한다면 ‘심퍼시의 힘’을 긍정하고 싶다.
“나와 네가 근원적으로 닮았음을 발견하는 때, 고유한 ‘나’는 없고 다만 아픈 ‘우리’가 있을 뿐임을 깨닫는 때가 있는데, 그때의 감정을 ‘동정’이라 한다면, ‘사랑’이 그것과 다른 것일 수가 없다고(95).”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 아모블로 우트 시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가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96).” 불가능과 무의미까지 이겨내도록 ‘신 대신’ 그 사람 곁에 있어주겠다는 지원자들 대단.
최근 경험한 감정 뭉치를 들여다보며 적어도 앞뒤 재고 계산하진 않았음에 안도했다. 영단어 퓨어(pure)는 순수한, 정통의, 뜻을 지니는데 이 둘이 묘하게 맞닿아 있는 뫼비우스 띠 같다. 순수한 게 찐眞이여 인증 같아서. ‘무정한 신’에게 기분 상할 뻔 했다가 슬쩍 딜을 넣었다. 안 들어주시면 ‘네메시스’의 버키보다 더 폭발할 거예요. 셰익스피어 비극들 모조리 읽은 입은 조심하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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