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간은 내게 암흑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여러 책을 접해봤지만 이렇게 서문이 강력했던 책은 없었던 듯 하다. 아침 카페에 앉아 호기롭게 들었던 책은 한 장을 넘기고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아도 나의 증상은 심각한 병리적 문제로 치부되거나 단순한 과식, 또는 의지 부족의 문제로만 여겨져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프롤로그 중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재작년 여름, 나름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로 적당한 식이조절과 운동을 하고 지냈다. 그리고 작년 새해 버프를 받아 다시 두 달간의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당차게 내기까지 걸며 강한 의지로 함께했다. 모든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고 열흘 정도의 다이어트 휴식기가 생겼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결국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절식과 단식을 반복했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잘못된 다이어트가 화근이었을까. 단기 다이어트가 끝난 이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나도 무서울 정도로 심해졌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고 나는 이것이 폭식증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난 후에 우연히 요망님의 영상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책 <살을 빼자고 행복을 뺄 순 없잖아> 첫 장은 작가님의 과거 이야기가 담겨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자세히 묘사된 상황과 감정들. 정확히 내가 경험한 이야기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소름돋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글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표현이면 충분하려나.


다음은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의 구절들이다.



"내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음식을 먹으며 기억을 잃을 정도였다. 이건 내가 아닌 다른 자아가 나타나 이 모든 걸 먹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중략)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내일부터는 정신줄을 바짝 잡고 '더욱 잘 굶겠다'는 다짐을 몇 번씩이고 했다."

"그때부터는 나도 그 자아를 통제할 수가 없다. 주변에 먹을 게 없다면 폭식 자아는 어떻게 해서라도 먹기 위해 남몰래 집 밖으로 나간다. 특히 빵집, 편의점, 아이스크림 판매점 등을 전전하며 미친 사람처럼 음식을 사온다. 처음에 갔던 가게를 또 방문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거리가 먼 곳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날은 정말 죄책감, 수치스러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가님이 이 내용을 쓰면서 무슨 기분이 들었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추측이지만 이따금씩 목이 메이고 눈물을 삼키지 않았을까. 나도 폭식증을 겪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말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구절을 빌려 '이런 모습은 나만 겪고 있는, 유별나고 창피한 일'로만 여겼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대중을 상대로 말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요망님의 방식대로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찾아 지금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담담히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과거 폭식증을 겪고 해결해 가는 작가님의 풍부한 경험담이 들어있다. 또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찾아낸 회복의 실마리들을 담았다. 나도 근 일 년동안 나를 괴롭혔던 폭식 습관을 끊어내고 폭식증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 중이다. 의지 박약이라는 프레임 속에 나를 가둬두고 폭식과 절식의 굴레에 빠진 나를 혐오했다. 그러면서도 다이어트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폭식의 굴레를 끊으려면 다이어트를 버려야 한다'라는 작가님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에 사로잡혀 소중한 삶을 살과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 허비하지 말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에 다가가 자유를 얻기를 바란다"라는 소중한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누구에게나 첫 사고는 무섭고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고 대처법을 숙지하고 있으면 그 다음은 덜 무서워질 것이고, 더 숙련된다면 그런 사고를 겪지 않게 될 것이다."


폭식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뿌리깊게 박혀 있는 폭식증의 원인을 찾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나만의 해결책을 찾는데 일 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작가님이 겪은 '날것'의 생생한 경험들이 나의 과거와 중첩되어 읽는 도중 순간순간 괴롭기도 했다. 결국 작가님과 나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같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삶을 꾸리기로 했다는 것.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쳐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의 내용이 한 사람에게라도 가치가 있다면 충분하다. 내 자아실현의 수단인 '글쓰기'는 요망님의 '요가'와 같은 존재가 될 듯하다.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 '푸드 프리덤'은 다이어트가 아닌 삶의 진짜 목표를 찾고, 자기 자신을 수용,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과 제약에서 벗어나 음식, 삶의 균형, 그리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전하고 있다. 사회와 미디어가 우리에게 다이어트를 어떻게 세뇌시키고 조장하고 있는지 알려주며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를 남긴다.


음식과 '애증'의 관계에 놓여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행복한 식사와 행복한 삶에 한 발짝 다가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남몰래 폭식증으로 울고 있을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소중한 책을 출간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폭식증의 극복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작가님의 말을 빌려 전하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조금만 더 자신을 믿고 버텨보기를 바라면서. :-)



"회복은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실패와 시도속에서 경험이 쌓이며, 천천히 회복된다. (중략) 나의 매일매일은 좌절이었고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폭식 없는 하루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시기 동안의 나는 정말 치열하게 다이어트로부터의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던 중이었다."- 살빼행빼,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