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이름만 있는 나라, 쿠르디스탄 / 쿠르드 족 분리독립 운동
이번에 국군 자이툰 부대의 파병지로 결정된 곳, 아르빌은 쿠르드 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쿠르드 족은 강대국들이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독립을 향한 힘든 길을 걸어왔다. ‘쿠르디스탄(‘스탄’은 땅이라는 뜻이다. 즉 ‘쿠르디스탄’은 쿠르드 족의 나라라는 뜻이다)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에는 쿠르드 족의 나라가 있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현재 쿠르드 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구소련, 시리아에 뿔뿔이 흩어져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변 강대국들은 소수 민족인 쿠르드 족을 돕겠다는 정책을 천명했지만 자국 내에 있는 쿠르드 족은 예외였다. 강대국들의 사탕발림에 이리 저리 쏠려다닌 쿠르드 족은 오히려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영화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는 미국의 입맛에 맞는 쿠르드 족은 착하고 그렇지 않은 쿠르드 족은 나쁘다는 미국의 대외 인식을 비판한다.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는 산 이외에는 그 어떤 친구도 없다는 쿠르드 족의 속담처럼 주변 강대국에 속아 고통 받는 쿠르드 족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칠판> <태양으로의 여행> <말들이 취하는 시간>을 통해서는 쿠르드 족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보여준다.
러시아 변혁의 틈바구니에서 일어선 나라 / 체첸 분쟁
체첸은 러시아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결정적 변수다. ‘강력한 러시아’를 재건하기 위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지는 두 차례의 체첸 전쟁으로 확인되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체첸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의 삶의 근거지는 황폐해졌다. <단스, 그로즈니 단스>에서는 그로즈니(체첸의 수도) 어린이 무용단의 일상을 따라가며 체첸의 비극적 상황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 외에도 영화 <마르쇼> <바보들의 집>은 전쟁으로 이성을 잃어가는 체첸과 러시아 양측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양측의 대립은 그로즈니 폭탄 테러로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다시 폭발할 조짐을 보인다.
그들의 뿌리 깊은 앙금이 해소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수립될 당시부터 독립 의지를 보여왔던 체첸인들에 대해 러시아는 숙청과 탄압, 강제 이주로 대응했다. 그 피비린내 나는 분쟁 속에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들의 삶이 저당 잡혀 있다.
중국의 소수 민족 정책 / 티베트 분쟁
중국은 과거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침략자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 동북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세계 전략은 이미 티베트에서 확인되었다. ‘인류 정신의 고향’이라고 할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은 종교 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티베트 역사를 왜곡해 티베트의 정신을 파괴했다. 나아가 티베트인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티베트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카르마파가 걸어온 길은 티베트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상징이다. <바람의 말> 은 티베트 곳곳에 나부끼는 ‘다르조’처럼 티베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신의 저항을 이야기한다. <쿤둔> <살아 있는 붓다>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일대기를 통해 중국의 티베트 침략 이후 티베트인들이 겪는 고난을 풀어냈다.
끊이지 않는 살육과 파괴의 현장 / 발칸 분쟁
2004년 올해도 발칸 반도의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사이에 유혈 충돌이 있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 비극의 씨앗은 역사를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가 동?서 로마로 나뉘고 그 자리에 슬라브 족이 정착하면서 발칸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었다. 동일한 민족이 다른 문화권에 속하면서 스스로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알바니아인으로 달리 부르게 되었다. 영화 <슬로건>은 알바니아의 독재 권력이 민중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그 한 갈래인 코소보인들은 민족 분쟁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세이비어> <피스메이커>는 참혹한 전쟁의 실상과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발칸인들의 처절한 노력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영화 <비포 더 레인>은 발칸 반도의 현실을 짓누르는 폭력의 악순환을 이야기한다.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에서는 전쟁으로 파괴된 발칸을 둘러보며 현실을 외면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이 허사가 된다는 사실을 통해 발칸 분쟁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 ‘테러와의 전쟁’ / 이라크 분쟁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인 이라크는 20세기에 들어 오토만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겨우 독립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났다. 이라크 지배 계층, 즉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싸움에 이라크인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사막에서 불을 뿜어대는 유전과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화라는 중동의 이미지와는 달리 어렵게 살아가는 대다수 중동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영화 <왝 더 독> <쓰리 킹즈>를 통해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전쟁을 반대했던 유럽 각국의 의도를 분석한다.
‘이라크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는 미국의 신보수주의 경향, 단체, 인물에 대해 설명하며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신보수주의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가이기를 포기한 치욕의 전쟁터 / 콜롬비아 내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콜롬비아 내전은 단지 콜롬비아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 기원은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러간다. ‘무이스카 인디오’가 남겨놓은 숨겨진 황금을 찾기 위해 신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려고 했다.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는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신대륙에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아귀레’를 통해 신대륙 개척 초기 유럽인이 보여주었던 광기를 고발한다. 어렵게 스페인을 물리치고 독립을 맞은 남미 국가들에게 뻗쳐온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콜롬비아를 내전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남미 독립의 아버지’, 볼리바르가 죽자 보수당과 자유당의 대립은 극심해졌다. 그 여진은 오늘날까지 남아 콜롬비아의 현실을 어둡게 한다. 특히 마약으로부터 얻은 수입을 자금원으로 하는 콜롬비아 반군은 정부군에 못지않은 무장력을 갖추고 힘에 의한 권력 장악을 목표로 활동한다. 영화 <콜래트럴 데미지>에서는 감독 앤드류 데이비스가 실제에 버금가는 규모로 연출한 장면을 통해 콜롬비아 반군의 실체와 위력을 보여준다. 영화 <콜롬비아, 치욕의 전쟁>에서는 반군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미국에 공급하는 마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콜롬비아 내전의 성격을 규명한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콜롬비아 민간인은 재산과 목숨을 잃었고 테러와 마약이 콜롬비아인의 일상사가 되었다.
강대국에 맞선 저항과 파괴의 역사 / 아프가니스탄 분쟁
영화 <칸다하르>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있는 아프간의 현실을 보여준다. ‘차도르’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이슬람 근본주의로 자유를 잃어버린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의 삶을 그려냈다. 그리고 소련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강대국들과 맞서야 했던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기원을 밝혀낸다. 아프가니스탄은 동?서양 문명의 접경지였기에 주변 강대국들의 변방임과 동시에 문명이 만나는 시기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였다.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은 18세기가 되기까지 자신들만의 역사를 가져보지 못한 채 주변 강대국의 역사 속에 포함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아프가니스탄 진출을 시도했던 영국은 아프가니스탄 영토 일부를 빼앗고 아프가니스탄을 영국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냉전 초기 아프가니스탄에는 친소 정권이 들어섰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하며 이들이 소련과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왔다. 1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버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소련과의 전쟁에서 북부 동맹을 지휘하며 이름을 날렸던 마수드는 오사마 빈 라덴이 보낸 테러리스트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영화 <마수드 아프가니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의 의도와 9?11 테러와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자 아프가니스탄은 반미로 돌아섰다. 결국 미국은 9?11 테러가 일어나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제일 먼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다큐멘터리 <마자르 대학살>을 통해서는 미국이 자행한 전쟁 범죄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유럽의 부끄러운 역사 / 북아일랜드 분쟁
영화 <조용한 사나이>에서 소개되는 아름다운 풍광과는 달리 아일랜드의 역사는 피로 점철되어 있다. 아일랜드에 영국인 신교도가 유입되면서 아일랜드는 분쟁의 조짐을 보였다. 1653년,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영국계 신교도들은 아일랜드계 구교도를 탄압하며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했다. 18세기 들어 영국의 식민 통치가 가속화되자 아일랜드도 이에 맞서 저항을 시작했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는 ‘마이클 콜린스’라는 시대적 코드를 통해 초기 아일랜드 분리독립 움직임을 설명한다.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제외한 지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북아일랜드는 끊임없이 저항했다. 테러와 반테러, 죽음과 복수로 얼룩진 29년 간 무려 3,2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테러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 <데블스 오운>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북아일랜드 분쟁의 참상을 이야기한다. 북아일랜드 분쟁이 해결될 조짐을 보일 때마다 유혈 투쟁이 일어나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북아일랜드는 밝은 미래를 위해 한 발씩 내딛고 있다. 현재 북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의회?남북아일랜드 각료협의회?영국-아일랜드 정부 간 위원회로 구성된 기구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잡도록 하고 있다.
제3차 세계대전 예정지 / 팔레스타인 분쟁
현대 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확정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문명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리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그런 문명 충돌의 가능성이 다분한 곳이다. ‘모든 공포의 총합’이 될지도 모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곳은 아마 팔레스타인일 것이다. 영화 <섬 오브 올 피어스>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성경을 바탕으로 얻어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주변 아랍국의 반대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나치의 대학살을 피해 어렵게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베니스의 상인》과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유럽이 보여준 반유대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을 통해서는 나치가 유대인에 대한 학살을 저지르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영화 <엑소더스>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8월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벌어졌던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인질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9월 어느 날>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PLO와 같은 저항 단체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의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