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하라
화가. 대학자 율곡의 어머니라는 타이틀만으로는 신사임당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발휘된 천부적인 예술가적 재능과 시댁 어른들 앞에서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히고 남편에게 재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당찬 여인의 면모, 그리고 사임당의 모계 계보를 통해 본 조선 여성의 모습 등을 다루었다.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는 유교적 덕목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며, 율곡의 어머니가 아닌 여성 위인으로서 신사임당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송덕봉(宋德峯, 1521~1578) - 임금 앞에 서고 싶었던 규방의 부인
문인. 미암 유희춘의 부인이다. 책 속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는 유희춘의 가식적 태도를 비난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잃는 것이라고 질타한다. 자신의 문재(文才)를 임금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했고, 남편이 4개월간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자랑하자 그것은 선비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 뿐 아녀자의 보은을 바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며 면박을 주었다. 친정 일에 무심한 미암에게 “나는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으니 당신도 사위의 도리를 다하시오” 하며 꾸짖는 기개 넘치는 여인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 서리 맞은 푸른 연꽃
시인.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은 불운한 천재 시인이며, 남편과의 불화로 외로운 여인의 삶을 산 여인이다. 둘째 오라비 허봉의 편지와 자유롭고 방탕하기까지 한 그녀의 시들을 통해 시대의 굴레가 그녀의 몸은 속박했어도 자유로운 영혼만은 속박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을 통해 그녀는 이미 현실을 초월한 시선(詩仙)이었다.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는 시인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홍대용을 비롯한 남성들에 의해 중상 모략되었던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옥봉(李玉峰, 16세기 후반) - 여성적 필화 사건의 주인공
시인. 소실의 자리이지만 남편 될 사람을 스스로 선택했고, 이백의 시보다 자신의 시가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였다. 훗날 필화 사건으로 남편에게 소박맞고 불운하게 생을 마감하지만, 남겨진 기록 속에서 재기에 번득이는 천재 시인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안동 장씨(1598~1680) - 일상의 삶을 역사로 만든 여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고금의 역사를 읽으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남편에게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친정에 가서 아버지가 재가하실 때까지 돌봐드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을 시댁으로 데려와 가르치고 성가시키는 등 친정을 돌보았다. 뿐만 아니라 이휘일, 이현일 등 영남학파의 두 거봉을 낳아 시댁을 부흥시켰다. 17세기 조선 양반가의 생활상과 음식을 재현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여 일상의 삶을 역사로 남겼다.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 - 생애는 석 자 칼 마음은 내건 등불
시인. 호연재의 시적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천부적인 시인으로 유머러스한 시를 통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가부장제에 맞서는 도도한 모습을 보인다. 김호연재의 시에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 여성으로서 사는 고달픔과 한 등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이러한 일상을 당시 최고 권위를 지닌 문학 형식인 한시를 통해 당당하게 읊어낸다. 『호연재시집』 및 옛 가옥이 남아 있어 생애를 재구성할 만한 자료들이 비교적 많다.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 - 조선 시대의 여성 철학자
성리학자. 녹문 임성주의 누이. 『윤지당유고』에 실린 6편의 설과 2편의 경의에는 ‘이기심성’이나 ‘사단칠정’ 등 조선 시대 성리학의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펼쳐냈다. 두 편의 여성 인물전을 통해 남성보다 여성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록 여자지만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은 남녀의 차이가 없다”고 하여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리학을 평생 탐구하면서 성인의 경지에 나아가려 했다.
김만덕(金萬德, 1739~1812) - 제주에서 금강산을 꿈꾼 여인
사업가. 직업이 그 사람의 신분이 되었던 조선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과 경제력으로 기생이라는 신분을 거부하고 양인이 되었으며, 결혼 대신 독신으로 상인의 길을 선택하여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큰 재력가가 되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풀어 수많은 생명들을 구하고 그에 대한 포상으로 현실적 이익 대신 금강산 구경을 소원한다. 제주 여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 국법인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도를 넘어서는 결단력과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을 보여준다. 조선 사회에서 살아서 공적 명예를 누린 몇 안 되는 여성이다.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 - 시골 색시의 환상과 욕망
시인. 남편의 입신양명으로 가문을 부흥시키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우고 강력하게 추진한다.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여자의 도움 없이 역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느냐며 남녀 차별의 부당함을 논한다. 권세가와의 인연을 내세워 가문의 부흥을 꾀했고, 마지막에는 지극한 효행을 널리 알려 가문의 신비화를 주도하며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 시대 여류 시인들의 시가 신선이나 꿈을 통한 초월에의 지향이 일반적이라면, 그녀의 시는 현실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도구이고, 그녀는 자신의 욕망대로 실현하고 표현하며 살았다. 상층 양반 여성들의 시와는 다른 왜곡되지 않은 욕망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풍양 조씨(1772~1815) - 기억으로 자기의 역사를 새긴 보통 여성
『자기록』의 저자. 열녀의 길을 택하지 않고 남은 생을 살았던 여인의 모습을 『자기록』이라는 자서전에 기록하여 남겼다. 남편이 죽은 뒤에 따라 죽지 못한 여성들은 죄인처럼 전전긍긍 살았던 데 비해, 풍양 조씨는 자서전을 저술하여 남편의 죽기 전 기록부터 죽은 뒤의 열녀가 되지 못했던 이유들, 그리고 이후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풍양 조씨의 삶은 특별하지 않지만, 이 특별하지 않은 삶을 ‘기록’으로 남겼기에 그녀의 삶은 지금의 우리들에게까지 ‘특별한’ 삶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 - 남편의 스승이 된 여인
문인. 가난 속에서도 청렴함을 잃지 않았으며, 철학자의 풍모를 지녔다. 남편의 평생의 스승이었으며, 남편이 직접 그녀의 문집을 엮었는데, 조선 시대 부부 관계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기록 속에서 간간히 임윤지당을 사숙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여성 간의 사승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김금원(金錦園, 1817~?) - 외씨버선발로 금강산을 밟은 남장 처녀
시인. 금강산과 그 일대를 여행하고 『호동서락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경춘, 죽서, 운초, 경산 등 여성이 주축이 된 삼호정시사를 만들었는데, 이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여성 시인들이 그룹을 형성해서 문학 활동을 한 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삼호정에 모인 여성 시인들은 성인이나 군자 등의 이상적 삶을 모델로 삼지 않고 보편적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표출한다. 삼호정시사는 규방이나 기방이 아닌 새로운 여성 문화 공간을 만들어 남성 문화로 대변되는 중세 문화에서 독자적인 빛을 발한다.
바우덕이(19세기) - 바람처럼 살다 간 거리의 예인
남사당패의 예인. 남자들의 세계인 사당패에서 최초의 여자 꼭두서니가 된 김암덕(金岩德). 여자 예인과 몸 파는 여성을 동일시했던 당시에 직업적 예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900년대 이후에도 바우덕이가 속했던 사당패는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안성시에서 해마다 ‘바우덕이 축제’를 개최하여 바우덕이를 기리고 있다. 비록 쓸쓸하게 병들어 죽지만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이 나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조선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름 없는 거리의 사당패에서 ‘바우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재능 있는 예인으로 남았다.
윤희순(尹熙順, 1860~1935) - 미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여인
독립운동가. 일제에 맞서 여자도 의병 운동을 해야 한다며 의병가를 짓는 한편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친다. 윤희순은 1912년 요동에서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세웠으며, 중국 사람들과 망명한 조선인들에게 반일 정신을 고취시켰다. 말년에 첫아들 유돈상이 일본 헌병의 모진 고문을 받고 죽자 그간의 자신의 삶을 「해주윤씨 일생록」으로 남기고 곡기를 끊고 죽음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