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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4년 09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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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12쪽 | 360g | 145*210*12mm |
ISBN13 | 9788954625470 |
ISBN10 | 8954625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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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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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도졌다. 이 병은 불치병. 한 작가의 책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읽어댄다. 이번에 꽂힌 작가는 김영하. <읽다>를 읽고 반해버렸다. 3부작의 3부를 읽고 반했으니 순서는 뻔한 것. 첫 번째 두 번째 책을 사고, 첫 번째 책부터 읽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엔 <보다>를 읽었다. <말하다>까지 들고가서 끝장(?)을 보려다가 참았다. 주말에 책도 많이 안 보면서 네 권이나 끙끙거리며 들고 갔다가 두 권을 읽고 다시 네 권을 끙끙거리며 들고 출근.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사은품으로 받은 삼부작 책갈피를 들고 또 나 스스로도 불감당인 짓을 해버렸다. 보다 책갈피는 보다 책에 넣고, 읽다 책갈피는 읽다에, 아직 읽지 않는 말하다 책갈피는 그 책에다 꽂아두고 흐뭇해했다는 것. 인증샷을 찍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가 그나마 성장했다고 믿는다.
여튼, 책을 읽어내려가는데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거 어디서 읽은 거 아닌가? 나의 착각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읽다>에서도 언급되어진 내용들이 약간 반복되는 부분이 있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우스 이야기. 그리고 또 글 전체를 어디서 본 것 같은 건 바로 <씨네21>에서 읽었던 내용이었다. 특히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인연을 쓴 글은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비포 선라이즈> 연작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그 주인공들은 늙어도 참 멋있더만.
나처럼 굳이 책을 보지 않아도, 솔직히 이 세상엔 볼 것이 넘쳐난다. 채널이 백개가 넘어가는 텔레비전이 있고, 작은 공간만 있으면 해대는 광고들이 있고, 또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 스마트폰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읽는다”는 것보다는 “본다”는데 더 의미를 두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김영하는 외국에 몇 년 있다 돌아와 한국의 이런 상황이 처음엔 너무나 낯설었다고 한다. 핸드폰에만 머리를 처박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고. 이처럼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오히려 보는 것만으로는 사라질 것들을 남기기 위해 글을 써내려간다. 그의 산문집 <보다>는 그 출발이었다.
그는 제일 마지막 작가의 글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에서는 시간과 자유, 부자라는 테마로 불평등에 관한 글을 써내려간다. 2부와 3부는 앞에서 말했듯이 씨네21에 연재되었던 영화와 문학과 관련된 글들, 4부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인상적인 글귀를 몇 개 옮겨본다.
스티브 잡스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더 나쁜 방향으로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부자가 한국의 가난한 젊은이에게 직접 시간 쿠폰을 살 필요는 없다.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
블평등에 대해 이렇게 정치적 분석 없이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책도 참 드문 것 같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가져온 편리함이 초래한 시간의 불평등성에 대해 위와같이 말했다. 그는 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부자들도 이제는 집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 전세 귀족들은 고가의 주택에 거주하지만 소유하지는 않으며, 무소유의 이상에 걸맞게 대부분 차도 갖고 있지 않다. 리스회사에서 빌리면 된다. 재벌일가는 회사를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최소한의 지분으로 교묘하게 지배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재화와 용역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다.
부자들은 이제 빈자들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여지 없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가 누군가에게는 선택 가능한 쿨한 옵션일 뿐인 세계. 세상의 불평등은 이렇게 진화하고 있다.
요즘은 휴가를 외국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기가 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늘 여행을 가고싶다는 마음만으로 자주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다. 읽다보면 “직접 가본 것도 아니고 이런 책 읽는 것도 허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리만족이랄까. 뭐 그런 기분이 들어 여행책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하나의 유행. 작가는 여행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준다.
귀족도 뭣도 아니면서 여행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인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서울 태생으로 모든 학교를 서울에서 다녔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서울 밖으로 거의 나간 적이 없다. 해외여행도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시를 쓰고 음악을 듣고 책을 번역하고 친구를 만난다. 사람들이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그는 빙긋이 웃으며 “(서울 밖으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만 답한다.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위험을 무릎쓴 채 여행을 떠나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는 “너무 멋진 여행이었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들보다는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당당하게 응수하는 그가 좋다.
새삼 당연한 얘기지만, 여행을 하고 안 하고는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십대는 몸으로, 사십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 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어쩌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또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앞에서 말한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과 관련한 글 말미에 적힌 글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 인연이 이어졌다면 작가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나 역시 궁금하다. ㅎㅎ
예전엔 영화를 정말 많이 보러 다녔는데 요즘은 영화를 잘 안 보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땐 이유가 있었지만 요즘은 딱히 그런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영화는 가운데 광고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피곤하고, 집중이 잘 안 된다. 영화라는 매체와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러 간 날,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는 관객이 반쯤 차 있었다. 상영 중간에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대놓고 문자메시지를 줄기차게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끝없이 먹어대는 관객까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마음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안나의 마음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녀는 소설에 빠져들기를 거부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반면 나는 영화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폴 오스터 말마따나 영화는 이미지로 저 멀리에 있고 팝콘 씹는 소리와 휴대폰의 푸른 빛기둥들은 현실로 가까이 있어 끝까지 서로 섞여들지 않았다. 책을 든 안나는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고 싶은 마음’에 시달렸지만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영화에 몰입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책과는 달리 영화는 어쩐지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모스크바행 기차처럼 무지막지하게 달려온다.
글을 잘 쓰는 작가의 글을 읽어내려간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어려운 말로 현혹하지도 않으면서도 또 속빈강정같은 그런 책도 아니다. 김영하라는 작가가 많은 사람에 매력적이었던 이유를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이제 한 권 더 남았다. <말하다>에서는 또 어떤 매혹적인 글쓰기를 보여줄 것인지 더욱 기대가 된다. 기대만큼 좋았던 책, 김영하의 산문집 1권 <보다: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이다.
君子不器
군자는 그릇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디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크기조차 가늠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흔히 사람을 두고 그릇이 크다 작다로 비유하는 건 그 사람의 곧은 심성, 아량, 배포 등을 두고 말함이다. 실상 내 마음 그릇은 작은 종지인데 커다란 대야인 척(?) 해야 하는 삶의 노곤함이라니. 군자는 못되지만 내 마음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쳐 평정심을 잃지는 않길 바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많이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는 거다. 더불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김영하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갇힌, 도태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시선은 넓고 고르게 분배해야 한다. 보태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보다라는 동사형은 단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능동적인 자세를 수반해야 진정한 '보다'가 된다.
국내 작가 중에서 남자 작가로는 김영하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같다고 말하는 건 아직까지는 이라는 전제가 붙기에. 요즈음은 소장하고 있는 책 읽기를 우선으로 하고 있어서 신간 소식을 발 빠르게 찾지 않는다. 가끔 관심 작가의 알람 메시지가 와도 스쳐 지나기 일쑤다. 김영하 작가의 『보다』도 뒤늦게 출간 소식을 알았다. 한참 예약판매일 때 스치듯 봤는데, 왜 김영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산문집을 출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영하 하면 소설, 난 그의 새 작품이 소설이 될 거라고 굳게 믿어왔나 보다. 어찌 됐든 예약구매는 하지 못했지만 지나칠 수는 없었다. 소설을 쓰는 김영하와 산문으로 만나는 김영하의 글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 작풍을 좋아하기에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은 어떻게 쓸까, 와 같은 생각이 우선 들었다.
살아가면서 내 고집을 내세울 때가 많다. 타자와 나는 분명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막상 상황에 부닥쳤을 때는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의견이 대립하고 감정이 상하고 나서야,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일 뿐인데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돌아서서 후회 아닌 후회를 하지만 나와 너는 사람이라는 것만 같을 뿐 근본부터 다른 인간이라는 이 '다름'을 뼛속부터 각인시키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그래서 많은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어떤 상황이나 주제, 사안에 대해서 내 생각과 타자의 생각을 교유할 필요성도 마찬가지다. 나는 TV를 거의 안 본다. 대신 요즘에는 인터넷 뉴스로 대체한다. 어느 순간 내가 사람들의 평소 생각과 주로 사용하는 언어 등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신조어, 유행어를 모르는 건 당연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기사로 만나는 인터넷 용어는 대부분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과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단어들이라 굳이 알 필요가 뭐 있을까 싶다가도 다들 일상처럼 말하는 용어를 나만 모르고 있나 싶어 검색하기 바쁜 요즘이다.
한때는 타자의 생각을 내가 알아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랬다. 그러나 알다시피 지구는 둥글고 우리의 일상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이 난다. 내 생각만큼 중요한 게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이 말이다. 김영하 작가가 펴낸 책도 그런 연장선에서 읽기에 무리 없는 책이다. 제목이 '보다'인 것처럼 그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었던 것, 봤던 영화, 드라마, 책, 뉴스, 사회 현상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술회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직설적이고 강렬해서이다. 그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 좋아서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보다』를 읽기 전에도 난 그런 이미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나 예리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씹어 잡수시는지 기대를 좀 했다. 근데 웬걸, 의외로 정제된 느낌이다. 더 거침없고 날카로운 시선과 글을 기대했나 본데, 정갈한 칼럼 몇 펀을 본 느낌이다.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소설가 김영하의 느낌은 아니었다. 뭐 그렇다 해서 실망이 몇만 배 까지는 아니다. 그의 글이 내포한 예리함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어디서도 빛을 발한다. 다만 산문보다는 역시, 소설이 갑이다 그는. 소설가니까 당연한 말인가?
책은 김영하의 글(말) 내용을 상징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영의 코믹한 삽화가 함께 한다.
나이와 비례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비포 선 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시선(신세계), 삶과 죽음의 통찰(그래비티), 타자에게 투영된 욕망(건축학개론) 등, 지면 대부분은 영화를 통해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향한 시선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좋을 책이다. 반대로 영화를 자주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나야 지루함까지는 아니지만 주제마다 영화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기에 일단 감상하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낯섦일 뿐이지 않겠는가?. 물론 대부분 제목만 들어도 다 알만한 유명한 영화 위주이다. 그러나 너무 한쪽 분야로만 치우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차라리 부제가 '영화로 보는..'(김영하니까?ㅋ) 이라고 따라왔다면 처음부터 그렇구나 했을 텐데. 난 영화보다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니까 시리즈의 다음 책 『읽다』가 무척 기다려진다. 소설가인데 산문집 시리즈를 출간한다는 데 약간의 부담이 작용했나 보다. 작가 후기에서 꽤 조심스러운 그를 보고 귀엽게 느껴졌다 하면 방자한 말이겠지만, 그랬다. 오오~ 김영하 아저씨한테도 이런 면이! 같은 모습을 봤다고나 할까. 그의 초기 단편인 <비상구>가 영화화됐을 때, 상영 뒤 그의 반응이 왜 그리 귀엽게 다가오던지. 부끄러움 뒤에 따라오는 해탈? 또는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인상은 강하지만 참 귀여운 아저씨네!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김영하 작가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한층 더 키운다. 『보다』를 읽은 내 느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받아'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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