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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8년 03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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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0쪽 | 372g | 134*196*20mm |
ISBN13 | 9788954605205 |
ISBN10 | 8954605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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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가?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의 다 읽은 책들은 후에 약간의 잔상만 남아 있거나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이렇다면 도대체 책을 읽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독서 관련 책들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 자기계발서에 속한 기술 관련 책들 뿐이었다. 그런데 와중에 어렸을 때 재밌게 읽었던 일식의 작가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독서 관련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기존에 속독을 권장하던 분위기에 반기라도 들 듯, 슬로 리딩을 권장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겨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의 방향을 권장한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독자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크게 지적 욕구의 충족과 정서적 만족을 통한 내면을 살찌우는 풍요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독서는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으려는 질의 독서이며 이것은 슬로 리딩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슬로 리딩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대척점에 있는 속독법의 폐해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속독법은 질의 독서보다 양의 독서를 지향하는 독서법이다. 많은 양의 책을 읽기 위해 속독법이 제시한 방법은 잡다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외면하고 중요하다 생각 되는 단어들과 어휘를 중점으로 보되, 읽는 행위가 아닌 눈에 각인 시키는 행위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면 무의식에 담긴 단어들과 어휘들을 통해 책의 기본 정보들이 추론이 되고 그에 따라 정독의 70퍼센트 정도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속독법의 기본 골자다.
이 말만 들으면 속독법은 확실히 많은 양의 책을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이다. 하지만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것이 진정한 독서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무의식에 각인시킨 정보를 자신의 의지로 의식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뇌신경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소리인가? 애초에 책을 처음 읽는 시점에서 어떤 단어나 어휘, 문장이 중요한지 알 수는 있을까? 이해율 70퍼센트라고 하는데 이 수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특히 부사나 조사 등을 유심히 살펴 읽어야 할 책들은 속독법으로 읽었을 시 전혀 다른 해석을 해버리는 오독을 저지를 수 있다. 속독법은 정보 취합만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 바에야 책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통한 검색이 훨씬 용이할 것이다. 책은 한 작가가 자신의 사유를 오랜 시간 공들여 독자들에게 내놓는 것이다. 지성인인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20년에 걸쳐 집필했다고 한다. 이런 책을 빨리 읽겠답시고 속독을 했을 시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물론 집필 기간과 같이 20년에 걸쳐 읽을 필요는 없다..)
특히 저자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소설가인 만큼 문학작품을 속독했을 시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설명한다. 소설에는 노이즈가 있다. 이 노이즈에 그 작품의 묘미나 정수가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만약 소설을 속독을 했을 시, 이 노이즈는 효용성이 없거나 단순히 내용의 배경설명 같이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외면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노이즈야 말로 작품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피상적인 내용에만 접근한다면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노이즈 속) 다양한 함의들은 사라진다. 멜로를 소재로 한 소설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 중심인물 A와 B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전부이다. 거기에 약간의 장치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C를 등장시킬 수도 있다. 결말을 해피엔딩이나 비극적 결말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외향적으로는 대부분 이런 ㄷ도식을 취한다. 하지만 슬로 리딩을 통해 노이즈들을 읽어 내면 어떨 때는 멜로물로 보였던 작품이 사실은 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이 책의 3부 슬로 리딩 실천편에서 인용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것은 속독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속독을 통해 문학작품을 온전히 느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슬로 리딩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책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음미하며 속독법과 다른 양이 아닌 질의 독서를 지향하는 것이다. 부사나 조사등 단어 외에 것들에 집중하며 잘못된 오독을 줄이고, 왜 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지며 책의 저자와의 일종의 대화를 하는 독서. 그 후에는 사색을 통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내면으로 체화 시키는 독서이다.
재독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당시 읽었을 때와 후에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완전히 달라질 때가 있다. 이것은 책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읽고 있는 내가 변한 것이며 이는 조금 더 성장한 자신과 만나는 것과 다름 없다. 재독은 작가와의 대화 뿐 아니라 변화되어 가는 자신과의 만남을 가져다 주는 효과를 낳는다. 책 한권을 읽더라도 깊이 있고 사색하며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음미하듯 읽는 에티튜드가 슬로 리딩이다.
물론 이렇게 읽으면 속독과는 달리 많은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방대한 양의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바에야 제대로 된 책 한권을 선별하여 제대로 읽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목은 슬로 리딩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한다.
외에도 작가는 슬로 리딩을 했을 시 일어나는 현실적인 효용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슬로 리딩에 대한 추상적 이득에 마뜩찮아할 독자들을 위해 무리해서 주장한 부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는 속독법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같이 바쁘고 정보가 홍수 같이 쏟아지는 시대에 속독법은 나름의 효용성이 있을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도 한때는 속독을 동경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책을 너무 느리게 읽는 것 같아 고민했다고. 그러던 중에 다른 작가들과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이 때 각자 독서 속도가 어떠한지 질문했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생각과는 달리 슬로 리딩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게이치로는 안도 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모두가 인정하는 고전을 쓴 저자들은 하나 같이 슬로리더였을 것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책이라는 것은 쉽게 유통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 당시의 지성인들은 얼마 없는 권수의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사색하고 또 사색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슬로 리딩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책은 저자에게 깊이 있게 내면화 되었고 후에 그들이 쓴 작품들은 지금도 읽히는 고전으로 남아있다. 칸트와 헤겔이 생각보다 적은 수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이나 지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은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남긴 유명한 고전 음악인들은 지금 같이 다양하고 많은 음악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지 않았다. 그저 들었던 음악을 계속 들으며 깊이 있게 음미하여 내면화 했을 것이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는 지금 시대 사람들의 작품이 얼마 없는 책을 접한 당시 사람들의 작품 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제대로 깊이 있게 음미하여 내면화하는 것이다.
1부와 2부는 슬로 리딩의 의미와 방법을 간단히 소개한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마지막 3부는 슬로 리딩의 실천편으로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동서고금의 텍스트들을 선별하여 각 작품들의 일부분씩 인용한 후 직접 슬로 리딩해 보인다. 구성은 인용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인용문을 싣고 후에 슬로 리딩의 결과물과 방법을 안내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책을 읽을 때 도식화 시키는 방법이나 중요하고 주의 깊게 신경써야 할 포인트를 찾는 방법등은 굉장히 유용하게 보였다. 인용된 작품중에는 읽었던 책도 있었는데 이렇게 읽어 낼 수 있거나 하며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책장에서 꺼내어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슬로 리딩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 요소들 중 창조적 오독이라는 신선한 개념도 제시한다. 작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엉뚱한 오독은 경계해야 겠지만 그렇지 않은 창조적 오독은 독서를 더 풍요롭게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대체 의도를 읽어내기 난해한 카프카의 작품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낳는다. 실제 카프카의 작품들은 다양한 관점과 측면에서 해석되어 왔다. 카프카의 문학은 하나의 작품이 아닌 이런 여러 창조적 오독들을 포함한 총체적 문학현상으로 볼 수 있다. 구토로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일종의 창조적 오독을 하여 존재와 무를 집필했다. 존재와 무가 하이데거의 작품을 오독했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질까? 오히려 창조적 오독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탄생한 훌륭한 예로 봐야 할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슬로 리딩이 책을 읽는 완전한 독서법이라는 독선적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읽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이기 이전 한 사람의 독자로서 자신이 유용하게 책을 읽었던 방법을 소개해서 독자들이 조금 더 풍부한 독서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독서하는 책들이 그 이전과는 다르게 독자들에게 풍부하게 다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독서는 많이 그리고 빨리 읽는데 급급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이 지금 나에게 어떠한 것을 남겼는지 생각해보면 허망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가 주장한 슬로 리딩을 적용해 독서법을 바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이란 한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작품이며 그것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게 음미하여 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작가는 젊은 나이에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이런 이력을 일궈낸 저력은 그의 독서법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작가가 주장한 슬로 리딩을 한 번 적용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주장한 슬로 리딩의 기술들이 버겁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슬로 리딩을 의무적으로 적용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머리 한 구석에 저장해 두었다가 독서시에 필요시 자연스럽게 적용하며 읽으면 어느 순간 슬로 리더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한 권의 책이 자신의 내면을 풍부하게 해주는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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