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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8년 1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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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56쪽 | 646g | 136*196*35mm |
ISBN13 | 9788960171855 |
ISBN10 | 8960171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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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3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읽은 기간 : 2009년 1월 21일 ~ 24일
시댁이 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설을 보내고, 친정이 있는 서울을 거쳐 어젯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과 티격태격 살아가면서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어도 어렵고, 어색하고,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 시댁이고, 그 구성원들입니다.
저는 맏며느리입니다. 그냥 맏며느리가 아니라 장손의 아내입니다. 서른이 넘어서 무일푼에 반백수의 남편과 사랑만으로 결혼을 결심한 나이에 비해 철없는(?) 여자였습니다. 서른하나에 모두가 뜯어말린 서른일곱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나는 이 반대를 무릅쓰고 여보란듯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맏며느리가 짊어지어야 할 무게에 대해서는 그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일찍이 양친을 여윈 남편, 시부모님을 대신해 역시나 일찍이 혼자되신 일흔셋의 큰시고모님을 시어머니처럼 모시고, 아이들은 고모할머니를 친할머니처럼 따르고, 때가 되면 찾아뵙고, 안부전화를 하며, 많이는 아니지만 성의껏 용돈도 드리며, 매년 휴가와 명절을 함께 지냅니다. 제가 생색내고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마음씀씀이가 세심하지 못해 큰시고모님 이하 다섯 분이나 되는 돌아가신 시부모님 형제분들에게 일일이 신경쓰지 못합니다. 사실 일 년 동안 전화 한 번 하지 않는 글러먹은 질부이지요. 천성이 살갑지 못해 열 댓 명이나 되는 시동생들과 동서들에게 상냥하게 대하지도 못합니다.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합니다. 맏며느리 자격에는 미달이지요. 그래도 꽁무니 빼지 않고 나름대로 한다고 합니다만 어른들 성에는 영 안차나 봅니다.
저는 이번 설에도 어김없이 시댁 어른들로부터 따끔한 충고를 들어야했습니다. 그네들은 던진 말은 끝이 무딘 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저에게 그것은 너무도 날카로운 스치기만 해도 베이는 서슬 퍼런 칼날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할까요?
저는 심한 스트레스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 등의 신경안정제를 복용중입니다. 스트레스의 주범은 남편입니다. 그로부터 80% 이상이 야기됩니다. 세세한 이야기를 이곳에 털어놓지 못하는 것처럼 그네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제가 오직 큰시고모님이 서운하지 않게 더 잘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제가 그녀를 서운하게 한 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격랑처럼 요동치는 마음, 그러나 표출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비애를 안고 저는 설 연휴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명절, 그 명절에 읽는 여자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때로는 외롭게 다가왔습니다.
소설 「다마모에」는 여러 부류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여자, 아내, 엄마, 자식, 노인, 며느리, 친구……. 그중 단 한 가지를 빼고 저는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자식으로, 며느리로, 누군가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쉬운 역할은 없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그것은 노년의 삶입니다. 이것은 이 소설의 커다란 줄기입니다.
일본의 평범한 소시민 쉰아홉의 도시코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과 사별합니다. 남편의 사후에 드러나는 그만의 비밀, 도시코는 남편의 배신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함께 지내 온 날들이 허울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니 한없이 고통스러워집니다. 그 와중에 자식들과 유산상속으로 갈등하다가 가출(?)해서 간 캡슐호텔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가족밖에 모르던 그녀는 남편이 생전에 나가던 메밀국수모임에 나가면서 서서히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주인공 도시코를 비롯하여 모두 쉰아홉 살 이상의 노인들입니다. 예순을 넘긴, 일흔을 넘긴 주름이 적당히 얼굴을 장식하고, 희끗한 백발을 빗어 넘긴 노년의 사람들. 그들에게도 열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섹스가 있고, 영혼이 있구나, 공원 벤치에 맥없이 앉아있는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된 인간이 아니라 아직 타오르는 불꽃을 가진 이들이 그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맛좋은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며, 와인을 마시고 즐기며, 몸치장에 열을 올리며 이성에게 눈길을 끌기를 바라는 마음은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는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어르신가요제’라는 색다른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큰시고모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인네, 노인네…… 그 노인네를 향해 노인네 왜 그렇게 완고하셔, 하며 속으로 원망도 많이 합니다. 노인이 아니라 노인네입니다. 저도 모르게 노인네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습니다. 딱히 좋은 말은 아닌듯 싶습니다. 순간 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시어른과 며느리라는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노인을 그저 늙어서 병들어 가는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지 않은 나의 편견이 순간 창피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졸렬한 인식이 부끄러웠습니다. 갈 곳 없어 탑골공원을 배회하거나 지하철 순환선을 타고 종일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 무리에 제 부모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잊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저의 행실(?)이 못마땅한 시댁의 어르신들을 떠올리다가 저는 어느새 제 노년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십대에는 빨리 삼십대가 되고 싶었지만 시간은 더디 흘렀습니다. 삼십이 되어서는 사십이 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습관처럼 어릴 적 가졌던 열정이 나에게는 이제 없어, 되뇌지만 내 속 어딘가에 그 피는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생활이, 미천(?)한 현실이 끓는 피를 잠시 재우고 있는 것일 뿐. 이십대의 열정과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열정은 한결 같이 내 몸을 흐르고 있을 겁니다. 그 피가 내 피인 이상 육십이, 칠십이 되어서도 내 몸에 있을 겁니다. 박제된 인형처럼 무심한 눈빛이 아니라 타오르는 불꽃으로 그날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다마모에, 혼이여, 타올라라!
2009년 1월 29일 진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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