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짧게 말해 디테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살적 호텔 견습 웨이터로 시작해서 승승장구하여 호텔 주인까지 올라갔다가 아무것도 없는 원래의 상태로 곤두박질 치고 그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죠. 책의 시작에서 디테의 14살 이전의 일은 일체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누구와 누구의 아들이었고, 원래는 어디 살던 소년이었으며, 어떤 형태의 교육을 받았고 어떤 친구가 있었고.. 이런 어린 날의 일들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이유는, 디테가 정말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세상에 14살짜리 아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처럼 말이죠. 어떻게 호텔 견습 웨이터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중요한건 이 아이가 호텔 견습 웨이터가 되었다는 사실 뿐. 그렇게 책은 시작됩니다.
가진 것이 없는 디테에게 황금 프라하 호텔의 견습 웨이터라는 직위가 주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들은 충고는 '너희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보고 들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왜냐구요? 높으신 분들이 비싼 호텔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하는거라고는 비싼 밥 먹으면서 시시껄렁한 농담 하기나 예쁜 여자들 데려다가 재미보는 일이 다였거든요. 여기서 그들의 비밀이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봐도 보지 않은 척, 들어도 듣지 않은 척 해야하는 겁니다. 웨이터의 제1 수칙이라고는 하지만 이게 전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것을 보고 들으려면 웨이터들은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저 호텔에 나를 위해서 준비된 서빙 기계정도가 되는 거죠. 웨이터가 옆에 있어도 거리낌없이 애인에게 스킨쉽을 하고 서로 농담하고 싸우고. 호텔에 있는 웨이터들은 거기 서있는 석고상인양. 그렇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디테는 결국 자신도 부자가 되어 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야 말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이루어 나가죠. 돈을 가지고 여자를 살 수 있고, 팁을 두둑히 주면 사람들이 자신의 발밑으로 기게도 할 수 있고, 비싼 옷을 차려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요. 그렇게 계속 디테의 잘못된 목표는 강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디테는 자신이 속한 나라 체코에 대한 애국심이나 세계의 정세를 읽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까요. 나치가 유럽을 휩쓸면서 체코 프라하에도 들이닥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버젓이 프라하를 활보하는 독일사람들을 경멸하고 피하지만 디테는 왜 그런지 몰라 어리둥절 할 뿐입니다. 그러던 중 독일복장을 한 여자가 체코 사람들에게 모욕당하고 있자 그 사람을 구해주고 이게 또 무슨 신의 조화인지 그 여자와 사람에 빠져요. 이름은 리자. 나치를 광신적으로 믿는 간호장교로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 디테는 조국 체코를 버리고 나치의 세계에 발을 딛습니다. 하지만 리자의 세계에서 디테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저 더럽고 조그만 체코인일 뿐이죠. 호텔에서는 부자들에게 무시당하다가 여기서는 높은 나치 간부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보통의 체코인이라면 나치를 미워해야 하니까 체코인들도 디테를 멀리하고 경멸하게 되어 어느 기댈 곳 하나 없게 되요. 그저 본능적인 사랑에만 매달려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디테는 분명 자신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게 된거죠. 직장도, 나라도, 지배인의 애정도. 그에게 남은건 리자 하나 뿐입니다. 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디테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게 되죠.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으며, 자신이 얼마나 잘못 간 것인지를... 다시 체코로, 체코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나치에서 착오가 있어 그를 체포했을 때 심지어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왜 이렇게 뒤늦게 알아버린 건지 읽던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시 체코인이 되고싶다와는 별개로 아직도 부자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디테는 일개 웨이터에서 수석 웨이터, 지배인, 마지막으로 호텔 주인의 위치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에게는 전쟁으로 아내도 잃고, 하나뿐인 아들은 나치의 기를 받기 위해 낳았지만 정신 박약아일 뿐이죠. 그렇게 다시 아무것도 없게 된 디테는 마지막으로 돈에 매달립니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다시 봐달라고. 휘황찬란한 호텔을 짓고 많은 돈을 벌지만 사람들은 그를 백만장자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라에서는 백만장자를 투옥시키고 가진 것을 빼앗아 나라의 소유로 만들지만 아직도 디테는 안전합니다. 오히려 안전한 것에 화를 내요. 왜 나는 백만장자라고 생각해주지 않는거야!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기 발로 감옥에 들어가 모든 각서를 쓰고 억지로 백만장자의 리스트에 끼어 감옥에 갑니다. 호텔을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기뻐하죠. 하지만 행복도 잠시. 백만장자들만 있는 그 감옥에서 디테는 여전히 웨이터 취급을 받습니다. 아무도 그와 자신이 같은 레벨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매번 디테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 사람들이 디테를 보고 쟤는 왜 여기에 있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드디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포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깨닫죠. 이사람들은 나를 같은 사람으로 볼 생각이 없는 거구나 하구요. 뒤늦게 방향을 선회합니다. 디테는 모든 것을 버립니다.
나 자신의 불행을 기뻐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내 앞에 놓인 길은 나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이상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것이며 아침, 점심, 저녁 인사하는 것과 손에 입맞춤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299p)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도리어 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했던 디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노라 다짐합니다. 마지막 직장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을 만일을 대비하여 길을 깔고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앞으로 자신이 인생길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비바람도 치고, 눈보라도 오지만 디테는 더이상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지 않아요. 이미 자신은 인생의 평화를 얻었기 때문에 바깥이 어떻든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일을 쉬는 토요일에는 술집에 내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는데 예전같으면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눈치보고 맞춰주었을테지만 이제는 디테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이야기 하고 싶은 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혼자 일을 할때나 집에 있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죠. 영국 왕을 모셨다는 지배인과 아비시니아 왕을 모시고 훈장을 받은 자신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 자부심을 느끼게 하지는 못합니다. 늦게나마 진정으로 자신을 찾게 된 디테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일찍 깨달아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귀중한 교훈을 얻는 데에 필요한 대가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정 어른이 된 디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하죠. 그래서 나오게 된 책이 바로 '영국 왕을 모셨지' 입니다. (물론 소설상의 허구죠.. 작가는 엄연히 보후밀 흐라발입니다 ^^)
사람을 씁쓸하게 웃게 만드는 이 책.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2006년에 개봉이 되었는데요. 저는 그걸 작년에 봤답니다. 영화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도 지금과 같이 씁쓸하게 웃으며 극장을 나왔던거 같아요. 영화에 녹아있는 사람에 대한 풍자나 비꼼이 그렇게 유쾌하게 웃길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책에서 접했던 것 처럼 디테의 마음속을 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시종일관 풍자의 분위기는 영화나 책이나 둘 다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만일 영화도 관심있는 분이시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서 나왔던 디테 말고 다른 버전, 자신만의 버전인 디테를 만나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