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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6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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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275g | 128*188*14mm |
ISBN13 | 9788954643146 |
ISBN10 | 8954643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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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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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다큐 피디이자 번역가, 김현우 작가의 여행 에세이집이다.
좋은 문장이 많다고 추천하는 유튜버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국외출장이 직업인 사람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등 10여 개국 30여개의 도시.
대부분 회사 출장이다 보니 즐거운 일보다 힘든 여정이 많지만, 빡빡하고 위험한 일정 사이사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낯선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하다. 가끔 보이는 흑백사진도 도시의 명물보다 변두리 서점,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공중전화, 한적한 숙소의 주차장... 낯선 풍경이지만 달뜨지 않고 차분하다.
읽었던 책이나 봤던 영화들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내 안에 머물렀다면, 그건 그 책이나 영화가 ‘나의 것’이라고 막연히 지각하고 있던 어떤 것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밖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 안도감이 그런 책이나 영화들에 대한 나의 호감의 정체였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본 것도 어쩌면 무어가를 ‘기다리는’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그 밑에 계신 겁니까? 중에서)
작가는 인생의 롤모델 사뮈엘 베케트를 찾아 몽파르나스 묘지에 3번 방문한다. 학생시절에 두 번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 한 번 더. 생전 살던 집도, 유품을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아니고 한참 전에 돌아가신 분의 무덤을 찾아 ‘그 밑에 계신 겁니까?’하고 묻는 그에게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지금 내가 마음먹은 것, 행하고자 하는 일이 맞는 건지, 세상에 내 자리가 있을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저자도 그런 마음으로 베케트의 묘비 앞에 섰을 것이다. 30대 초반, 직장인이 되어 다시 몽파르나스를 찾았을 때 그는 더 이상 무덤 속의 베케트에게 묻지 않는다. 아마 살아있는 베케트를 만났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미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아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30대 초반에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저자. 그의 글이 철학적이고도 담백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말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이는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는 이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그 간절함으로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것만을 생각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위대함은 어떤 핑계도 찾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를 원하는 그 간절함, 그렇게 하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절박함이다.
(프랑스 칸-위대하지 않은 자전거 여행 중에서)
프랑스 칸 출장 중, 저자는 자전거를 타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가 글을 썼다는 도시, 앙티브로 가다가 넘어져 도중에 돌아온다. 안장이 맞지 않는 자전거, 중간에 빠진 체인, 넘어져 피멍든 다리.
앙티브를 포기하게된 사정은 여러 가지지만 저자는 진짜 이유를 다른데서 찾는다. 앙티브 가는 일이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정말 가고 싶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갔을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개츠비의 위대함은 핑계를 대지 않는 간절함에 있다고 덧붙인다.
<위대한 개츠비>를 몇 번 읽어보고, 서평도 여럿 찾아봤지만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이해할 수 없던 내겐 속 시원한 설명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이유가 상상의 두려움 때문일 때가 많다. 알 수 없는 물속이 두려워 다이빙을 못하고,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그 사람에게 고백을 못하고, 헤어진 그 사람을 마주칠까 길을 돌아가고, 약점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아예 말을 하지 않고, 불 꺼진 빈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불을 켜놓고 외출한다.
(필리핀 아닐라오- 상상하기 때문에 두렵다 중에서)
물을 무서워하던 저자는 수중 촬영 중 스킨 스쿠버를 배우며 두려움은 실재하는 게 아니라 상상에 있음을 깨닫는다. 물 뿐이랴. 모든 모험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하기 때문에 두렵다.
내 맘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실패가 두려워 가장 많은 이가 가는 길을 ‘나도’ 하는 마음으로 고민 없이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굴곡은 없어도 내가 정말 무얼 원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거기서 멈췄어야했는데 아이들에게도 은근히 안전한 길, 평범한 길만을 강요했다. 상상하기 때문에 두렵다는데, 상상도 안 되는 길은 더 무서웠다. 지나고 보니 그건 나의 어리석음이었고 오만이었다.
아이들에게 맡겨둬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인데. 아직도 미안하다.
생각이 많은 글 위주로 소개했지만 다큐피디의 고달픔을 보여주는 글도 적지 않다.
어떤 날은 열심히 일했지만 ‘You should be!’라는 섭섭한 말을 듣기도 하고, 바람부는 날 문짝 없는 헬기를 타고 원시림 위를 날아야하고, 때로는 섭씨 47도의 사막에서도 촬영해야한다. 남들이 모르는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 다큐피디의 임무. 매일 매일이 모험이다.
‘생명,40억년의 비밀’, ‘학교의 고백’, ‘김연수의 열하일기’...
편안한 소파 위에서 무심히 대했던 TV프로그램들이 이런 모험과 사색의 결과물이라니.
세상에 당연한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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