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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0년 02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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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32쪽 | 571g | 153*224*30mm |
ISBN13 | 9788972976097 |
ISBN10 | 8972976091 |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5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사유한다는 점에서 시와 철학을 같은 맥락으로 묶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두 문학의 장르엔 꽤 높은 벽이 서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시평회에 몇번인가 참석한적이 있다. '피'라는 단어하나로 한시간 반을 토론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시를 쓰는게 좋았던 나는 자신의 아마츄어적인 논리를 감추었었고 부끄러웠다. 무시무시한 논리로 열띤 토론을 하던 전문가 스러웠던 그들을 보며 입안을 맴돌던 간지러운 기분은 오래 지속되었고 시쓰기는 내게 더이상 즐거운일이 아닌 어려운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나 논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논리적 언어가 내게는 어렵고, 시적 언어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의 부제는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나 자신의 앎이 부족했던지 이해가 안되 몇번씩 다시 읽어보고서야 간신히 약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수월하게 쉬엄 쉬엄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고 마치 공부를 하듯 정독하며 차분히 읽어야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철학은 수학과 같다고 생각한다. 실생활에서의 쓸모도 그렇다. 미적분을 풀며 더하기 빼기만 잘하면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데 대체 왜 이게 내게 필요한건지, 이런건 전문가들이나 배워야 하는거 아닌가 투덜거리던 학생때처럼 뒤에 놓여지기 쉬운 학문이다. 인문학이 죽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은 죽을 수 없는 학문이며 가장 마지막의 희망은 인문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넘쳐나는 잠언집이나 수필집들 보다 좀 두툼하고 읽기 어려운 책을 굳이 읽겠다고 애쓰는 것도 그 마지막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고의 가장 핵심은 의문(doubt)에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물음표가 세상을 바꾸고 움직인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삶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는 21개의 봉우리'는 오르기 힘든 봉우리도 있었고,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기분 좋게 오를 수 있는 봉우리도 있었다. 가끔 무심코 깨닫게 되는 어떤 진리가 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나는 나무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듯이 정말이지 문득 느껴지는 어떤 깨달음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오른 봉우리도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그런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것이 많은가를 알게 되듯이, 자신이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가 하는 뿌듯한 공감도 느낄 수 있는 것...
그냥 좋은 시나 유명한 시인들의 시정도로 알고 있던 시들 속에 이런 철학들이 숨어있었구나 싶어 새삼 다시 그 시인의 시들을 들춰보기도 하며 새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특히 나는 열다섯번째 봉우리 '해탈을 위한 해체론-데리다와 오규원'편이 재미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화가 나시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시면 대청소를 하시고는 했다. 하루 또는 주말 내내 집안의 묵은때를 닦아내고 이불 호청을 뜯어 빨고 삶아 꿰매기도 하고 온 집안의 옷장을 뒤집어 정리하시고는 했다. 그 중 특히 오래된 속옷을 정리하실때는 내 머리속에는 빨간등이 켜지고는 했다. 몹시 마음이 안좋은 상태이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교후 집안에서 빨래 삶는 냄새가 나면 긴장하곤 했던 엄마의 대청소는 내게도 스트레스였는데 내가 좀더 나이가 먹고 엄마가 더 많이 연세가 드셔서 어느날인가 옷장을 정리하시며 하던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내가 죽기라도 하면, 늙은이 너저분하게 살았다고 할거 아냐' 무심코 흘려 들은 그 말이 묘하게 뇌리에 박혔던 모양이다. 나 또한 죽음을 생각하거나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대청소 하는 버릇이 생겼다. 오규원 시인의 말처럼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은 현재 살아있는 자의 부끄러움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산 자의 부끄러움...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차이 difference'가 모든 것의 의미를 구성한다고 통찰했던 철학자라고 한다. - "나는 죽어 있다"로부터 "나는 존재한다"를 이해하게 된다. <목소리와 현상> "나는 살아있다"라는 말에 새겨진 죽음의 흔적처럼, 현재를 나타나는 어떤 행위나 말들이 과거와 미래를 내포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현재를 재구성한다... 움, 그런 비슷한 얘기인것 같다. 지금 현재가 순수하게 현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과거나 미래로 구분되면서 비로소 존재한다는 말처럼 산자가 걱정하고 있는 팬티는 사후의 부끄러움에서 온다. 움, 움, 움,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은 내겐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다만 내가 알게된 것은 내가 입고 있거나 옷장속에 차곡차곡 개여있는 속옷들의 의미가 사후의 부끄러움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깨끗하고 정갈한 자신의 육체에 대한 현재와 과거의 예의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특히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말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들에 가벼운 비유들을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하고 중간중간 내용과 잘 맞는 적절한 일러스트로 눈의 피로감을 덜어주기도 하고 '철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즐겁게 바꿔주려 하는 의도가 곳곳에 보이는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쓴 글처럼 시와 철학은 일상 생활에서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지적 자극과 충격을 던져주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것이다. 일반인에게 낯설게 보이는 시나 철학이 때로는 가장 단순한 시선과 만나 무참하게 정리되어 버리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황희정승과 누렁소 검정소와 농부의 이야기처럼 삶을 살아가며 얻게 되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시와 철학에 대한 필자의 글들이 학문적이라는 점에서 다소 지식인의 특권의식이 보인다. 짧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읽어도 무릎을 칠 수 있는 공감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지만 꼼꼼하고 친절한 선생님처럼 자세한 설명과 지문들이 두세번 들춰보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시와 철학의 찰떡궁합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의 사상적 흐름을 대표하는 기조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시대를 규정하는 사상적 흐름은 어떤 것인지 그 사상의 흐름에 따라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오직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그 시대의 환경이나 정치적 조건에 의해 영향 받기에 시대정신과 절대로 무관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이렇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밝히고 규정하려면 그 시대의 주된 사상적 흐름을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가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문학이 당장 생활하는데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한발 건너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에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규정하는 조건을 살피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된 흐름에서 멀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가꾸고 개척해가려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인문학적으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에 노력에 의해 밝혀지는 시대정신에 비추어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써 자신에 대한 성찰과 미래를 희망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 강신주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희망으로 가꾸기 위한 철학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시와 철학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접근을 하고 있다. 인문학의 대표격인 철학의 어려움을 시를 창작하는 시인의 눈과 시대정신을 밝히려는 사회 사상가들의 눈이 겹쳐지는 지점을 찾아내고 그 공통분모에서 자신과 사회를 다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주제 21가지를 선정하고 그에 걸 맞는 21명의 시인과 사회 사상가를 연결하며 각각의 주제를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다. 김수영, 김춘수, 황동규, 황지우, 기형도, 최영미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과 다소 거리감이 있는 들뢰즈, 푸코, 사르트르, 아도르노, 데리다, 푸코, 하이데거, 하버마스 등 현대 사회사상가의 만남이다. 접근하기 쉽지 않은 사회사상가의 중심 사상을 시인의 시를 통해 찾아가는 형식이라 거부감 없이 접근하고 매료될 수 있게 한다.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사회 사상가들의 만남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를 통한 접근이라는 독특함도 있지만 저자의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접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렇게 시와 철학의 접근에서 찾아가는 접점에는 사회라는 공통체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자신과 타자 그리고 이 둘 간의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정도와 타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의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자신과 타자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철학의 중심사상을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접근이 용이하며 독특하게 풀어가는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친절하고 차분하며 때론 미소 짓게 하는 저자의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 속에는 철학자로서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애정이 담겨있다. 다분히 함축적이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알기 어려운 시에 대한 분석,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감으로 접근자체를 꺼려할 수 있는 철학, 이 두 분야를 절묘하게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시와 철학이 잘 어울리는 연인처럼 보인다. 이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순전히 저자의 노력에 의한 것이리라.
또한 <더 읽어볼 책들>에는 21명의 시인들과 사상가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거나 더 깊은 이핼르 위해 저자가 소개하는 책을 찾아본다면 저자의 사상적 흐름을 따라가는데 훨씬 용이하며 현대사회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시를 읽는 새로운 눈과 그를 통해 현대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은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이 가져다주는 탁 트인 시야보다 더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상쾌함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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