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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3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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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30쪽 | 496g | 128*197*30mm |
ISBN13 | 9788952201645 |
ISBN10 | 8952201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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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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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속에서 짙어지는 삶의 향기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중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을 읽고-
시간은 흐르고, 사랑은 잊혀지고, 사람은 떠나간다. 동시에 눈물은 마르고, 아픔은 사라지고, 상처는 아문다. 사람들이 만든 팔색조의 기억들은 이내 흑백의 밋밋한 장면으로 바뀐다. 더 이상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과 시간들은 마음 한 켠에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그러나 왜 나와 너는 매일 손을 잡고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건지. 왜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울고 웃는 건지. 아마 나와 너뿐만이 아닌 우리들 중 누군가도 잠들기 전 눈을 감고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하고 있을 테니, 나는 ‘늙는다는 것은 서러워라’라고 말한 이리아스 수아레스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쓸쓸한 분위기는 늙어가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지만, 스무 살 소녀에게는 오히려 늙어가는 데에서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 찾게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허무함에 몸부림치는 일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지 생각해본다. 스무 살이면 스무 살답게, 서른 살이라면 서른 살답게 자신이 지나고 있는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는 나는 진짜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남몰래 과거의 기억들보다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다고 여기고 있기에 이러한 기대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힘겹게 받아내는 상처와 아픔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경험과 연륜이 나를 여유롭게 만들지 않을까. 지금의 조금하고 두려운 마음들이 덜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나의 순진한 기대를 저버리기 싫은 듯이 책은 다시 한 번 말한다. ‘늙는다는 그 자체가 결코 불행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일까라는 새로운 물음표가 던져진다. 질문은 끝없이 이어져 죽는 순간까지 상상하게 한다. 종류는 다르지만 「진홍빛 커튼」에서 사랑을 나누던 소녀와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에서 스무살 즈음의 첫사랑에게 전화를 건 세실리아의 죽음은 어딘가 모르게 괴기스럽다. 이에 반해 아파서 누워있기만 하는 「살아있는 송장」인 세실리아의 죽음은 기쁘며 아름답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게 될 마지막 순간에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에서 비껴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해 「레드」에서는 말한다. ‘사람이 사랑을 했거나 고통스러워한 장소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미한 향기 같은 것이 언제까지나 남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은은히 풍기는 향기는 나만이 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책의 많은 주인공들이 시간 속에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고향에 찾아갔을 때 아련히 자신만이 아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우리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삶의 향기를 진하게 남기는 것만이 이어지는 삶에 대한 물음을 풀어갈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울지도 모르니 다가올 순간이 두렵지 않도록 아름다운 시간들을 쌓아두어야겠다. 기억을 끄집어내어 쓸쓸함과 허무를 마주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면 추억은 언제나 빛나는 보석 같지는 않아도 삶이라는 어두운 길의 모퉁이를 은은히 비춰줄 가로등은 되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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