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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8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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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61.69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91190090278 |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0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29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천개의 파랑이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sns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천개의 파랑을 북클러버 활동을 통해 읽어보았다.
조금 유명한 책들은 괜히 더 안보게 되는데 유명하고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다 있는 것 같다.
큰 기대없이 읽었다가 이 책의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으니...
다양한 주인공들의 각각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시작은 콜리의 이야기다.
콜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말을 타는 기수이기도 하다.
투데이를 만난 이야기, 그리고 경마장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
콜리는 투데이를 위하 낙마를 했고 부서졌다.
그리고 연재를 만나 제 2막이 시작된다.
콜리, 투데이, 연재, 은혜, 보경, 지수, 민주 등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먼저 나는 은혜라는 캐릭터가 주는 포인트들이 좋았다.
은혜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은혜는 자유를 원한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은혜가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콜리에게 하는 말이다.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긷ㄹ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에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하는지도 모르겠어. 있지, 나는 그냥 여행을 다니며 살고 싶어. 카메라 들고 밟지 않은 땅이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이 대사를 보고 사회적 시선에서 보는 소수자. 어쩌면 소수자라는 말도 사실은 그냥 우리 입장에서 그들을 멋대로 바라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가 배려라로 호의라고 여겼던 것을 그들은 필요로 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점. 그들에겐 연민이 아닌 그냥 이 세상을 같이 동등하게 살아갈 환경이 필요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
이 생각에서도 나의 오만함과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더 다른 시각에서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또한 내 존재를 증명하는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성공하는 것만큼 뻔하면서 짜릿한 스토리는 없는 것 같다. 영화로도 소설로도 드라마로도 다양한 콘텐츠에서 소비되는 뻔하지만 희망을 주는 스토리. 하자만 전세계의 몇명이나 그렇게 살아가겠는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큰 성공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지금 그대로 가끔은 초라하고 보잘것 없어보이는 나라도 그저 나임에 집중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평범함이 사실은 평범함이 아님을.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들 힘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연재와 지수의 이야기도 좋았다.
바쁜 엄마와 몸이 불편한 언니와 살아갔던 연재는 어른인 것 처럼 보였지만 아이였다.
그냥 그런게 느껴졌다..
지수를 만나면서 바뀌어가는 연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귀엽기도 했다.
그들의 투닥임이 너무 예뻐보였다.
주인공 모두의 주제는 결국 투데이로 집중된다.
너무 빠르게 달려 더이상 주로에 서기 힘든 투데이 그래서 곧 안락사를 당할 상황에 놓여있는 투데이.
이 말을 가장 사랑했던 것 같이 함께 달렸던 콜리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이다.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느리게 뛰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결국 콜리는 또한번의 낙마를 하게된다.
투데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났다.
고통을 모르는 로봇이지만 낙마함으로써 자기가 산산조각이 난다는걸 알면서도
투데이에게서 떨어진 콜리를 보고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그저 순수하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아름다우면서 슬프기도 했다.
중간중간 느끼고 생각한게 많은데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람냄새 나는 소설이었다.
연재는 실수가 기회와 같은 말이래요. / p.286
이 책은 천선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예전에 단편 소설집을 읽었는데 사실 주변에서는 이 책을 더 많이 추천해 주었다. 아마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천선란 작가님의 작품들을 도장 깨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SF 작가님 하면 김초엽 작가님을 많이 떠올렸는데 많이 언급이 된다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연재라는 아이와 하나의 휴머노이드, 투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이다. 연재는 주변에 친구보다 로봇에 더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그녀에게는 언니 은혜와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보경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방관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식당 근처에 있는 경마장을 드나들다 우연히 버려진 휴머노이드를 보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을 모두 내고 그 휴머노이드를 구매한다.
연재는 그 휴머노이드에게 콜리라는 이름을 붙었다. 콜리는 보통 휴머노이드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콜리는 경마장의 기수로 투데이와 함께 짝을 지어 한때 이름을 날릴 정도로 성적이 잘 나왔던 기수였다. 어느 날, 낙마하며 다리를 다쳐 기수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투데이는 경주마로서 상품 가치를 잃게 되었다. 소설의 이야기는 연재, 콜리, 은혜, 보경, 연재의 친구인 지수 등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의 생각을 중점에 두고 읽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흔히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설에서 소아마비로 장애를 가진 언니 은혜를 통해 장애에 대한 시각을 달리 보게 되었다. 또한, 투데이를 통해 동물권을, 연재네 가족을 통해 한부모 가족을 다룬다. 휠체어를 타는 은혜에게 무조건 할 수 없다는 낙인과 도와야 한다는 연민의 손길은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면서 과거를 반성했고, 동물의 생명보다 상품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지점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깊게 고민했다. 전체적으로 깔린 설정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콜리의 질문과 대답이다. 콜리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휴머노이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업자의 실수로 칩이 하나 다르다는 것인데 소설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웃거나 울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남편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보경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으며, 투데이와는 정서적 교감을 느꼈다. 연재에게는 하나의 꿈을 주기도 했었다. 로봇이기에 사람처럼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들은 대답을 토대로 이를 입력했고, 나아가서 이러한 결과값을 다시 인간에게 전해 주면서 위로와 행복을 주었다. 특히, 시간이 멈추었다는 보경의 말에 행복을 쌓다 보면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를 것이라는 답변을 전달해 주는 부분은 참 읽으면서도 울컥했다. 로봇이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투데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콜리는 브로콜리에서 따왔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말의 이름이 왜 하필 투데이일지 깊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자주 붙이는 이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반에 이르러 콜리의 말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오늘'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지은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정신없이 빠르게 흐르는 시간 안에서 보경은 멈추었고, 연재는 참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위로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참 많은 위안을 받았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취향에 너무 잘 맞는 소설이었으며, 앞으로 역시도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님으로 각인이 될 듯하다. 콜리의 눈을 통해 지나쳤던 행복을, 연재를 통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열정을, 은혜를 통해 무지했던 편견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삼 천 개의 빗방울
비가 오니까 너도 오는구나. 이별 후에 유독 새벽이 길어졌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편인데, 베개에 불면이 숨어 있었는지 박명 사이로 자꾸 뒤척임이 스민다. 지난 밤 꿈에는 너의 모습이 말도 없이 제멋대로 찾아와 까만 밤과 새벽 틈 사이에서 눈을 떴다. 투두둑, 발코니 철제 난간에 정신 없이 빗방울이 내려 춤추고 있었다. 너와 나란히 앉아 이별을 말할 때 함께 보았던 하늘에 걸린 회색 장막에, 삼 천 개의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날 차마 내리지 못했던 그것들이 빗방울이 되어 펼친 손위로 나렸다. 처마 끝에 매달려 나리는 빗속으로 오목하게 손바닥을 반쯤 쥐고, 목놓아 너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너의 맘대로 꿈속에 왔듯이. 내 맘대로.
주책맞게도 빗방울 소리를 손에 담으며 천선란 작가님의 <천개의 파랑>을 생각했다. 보경과 천 개의 단어가 입력 되어 있는 휴머노이드 콜리가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로봇은, 주인의 엄마에게 묻는다.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보경은 이야기한다. 그리움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것이라고. 살아가다가도 갑자기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마음을 조금씩 떼어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그리운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긴다고. 그녀는 로봇에게 그리움의 의미를 가르친다. 콜리는 초록색 몸체를 갸우뚱하면서도 투데이와 함께 주로(走路)를 달리던 순간, 투데이의 심장 박동을 떠올리며,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이 자신과 투데이가 가장 그리워 하고 있을 순간이 아닌가. 짐작한다.
보경은 소방관이었던 남편과 사별하고 두 딸, 은혜와 연재를 키우고 있다. 은혜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겪어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됐고, 휴머노이드가 은행 창구를 지키는 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학교와 사회가 약자에게 행하는 야만을 견디지 못해 현재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또래 친구들보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자유롭다. 그녀는 틈틈히 경마장에 딸린 마방을 돌아다니며 달리는 말들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러다 투데이를 만난다. 3살. 어린 말이지만 경주마로 태어나 평생을 달리기만 해서 이미 연골이 다 닳아져버린 비운의 챔피언. 투데이는 남다른 면모를 가진 특별한 기수용 휴머노이드와 함께 경마장 최강의 호흡을 보이며 경마계를 제패하다가, 기수(騎手) 낙마 사건 이후 갑자기 전성기의 끝을 맞고, 좁다란 마방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보경의 둘째 딸 연재는 몸도 마음도 다친 은혜를 돌보느라 또래사회에 적응할 시기를 놓쳐서, 학교를 겉돌기만 하는 아이로 자란다. 그녀는 공부에는 별 뜻이 없지만 로봇 기술을 다루는 데에 만큼은 두각을 보인다. 편의점 사장이 로봇을 들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게 되어도, 로봇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다. 로봇을 만든 것도, 구매하는 것도, 이용하는 것도 인간인데, 이용 당하는 로봇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 다행하게도 그 동안 모아 놓은 돈이 그녀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언니가 투데이를 만났듯이, 동생은 마방에서 투데이를 타고 투데이와 함께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기수용 휴머노이드를 만난다. 소프트웨어를 관장하는 칩 하나가 잘못 흘러든 탓에, 하늘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 낙마해서 하반신 전체가 마비된 이 특별한 로봇을, 연재는 경마장 관리인으로부터 몰래 구매한다. 로봇 기술 영재답게 몇날 며칠을 매달려 결국 로봇을 고치는 데에 성공하고, 로봇 인생 2막을 맞은 특별한 휴머노이드에게 브로콜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그리고 보경과 두 딸을 중심으로 경마장의 선한 주변 인물들이 힘을 합쳐 투데이와 콜리에게 마지막 주파(走破)의 순간을 선물한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본작은 SF의 외피를 빌려 쓴, 철저한 휴먼드라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간에 갇혀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보경. 신체적 한계 때문에 가슴에도 한계가 맺힌 은혜. 더 달리고 싶지만 현실적 한계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외려 트랙 밖으로 이탈해버리는 연재.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표현에 목마른 지수. 불의 앞에 눈 감는 스스로를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마방 관리인 민주. 사랑하는 동물들의 죽음을 무력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애달픔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수의사 복희. 작품은 누구 하나 온전하지 못한, 스스로도 부족하다 할만큼 붕괴 되어 있는 이들의 삶을 그린다. 동시에 이 부서지고 깨어져 있는 인물들이, 가까운 사이에 있더라도, 천 개가 훌쩍 넘는 단어들로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용기내어 소리내지 못하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그들은 그러므로 인간의 진심은 말하지 않으면 어떤 곳에도 가닿지 못함을 배우고, 마침내 서로에게 진심을 이야기하여 조금씩 느슨한 연대를 형성한다. 본작은 진심은 진정한 소통으로만 서로에게 전달되며, 진심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을 넘어서야지만이 진정한 연대가 결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따뜻하지만 흔들림 없이 단단한 논조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차상위계층, 동물, 휴머노이드(로봇), 여성, 장애인 등 시대가 발전해도 차별 해소가 어려운 영역에 놓인 이들의 삶이 겪는 문제를 기술 발전이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물음표는 차가우면서도 맹렬하다. 나아가 극강의 기술력이 발현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소외 받고 강자의 필요에 의해 소모를 강요 받은 이들이,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 마침내 불의에 항거하고 이것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두드러지는, 진심과 소통, 존중, 연대, 사랑이 낳는 눈부심이 절정에 닿는다. 느슨한 연대는 보잘 것 없는 삶에, 누군가는 하찮다 말할 만한 주파(走破)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그 순간을 이룩하면서 닿는 그리운 시간을, 행복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주로(走路) 위에서 그리움과 행복에 가닿은 말과 로봇이, 세상 위에 어떤 다른 존재보다, 어떤 인간보다도 위대했다. 행복해졌다. 그리움을 이겼다.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연대를 이룬 인간들도 행복에 가닿는다.
늘.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듄>, <매트릭스>, <가타카>, <멋진 신세계>, <1984>,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아득한, 발전이 극에 달한 미래에서도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불행은 신발 밑에 붙어 있다가 순식간에 짙은 검푸른 빛 휘장으로 사방을 덮는다. 세상에는 관계의 평온을 깨고 비극을 소환하는 원인이 많지만 대부분은 그 뿌리에 욕심이 있다. 인간은 이기(利己)를 위해 취한 존재들을, 같은 이유로 가차 없이 버리고는 한다. 기준치에 미달 된다고 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존재를 외면하고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거대한 비극의 단초는, 인간이 이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랑 뿐이다. 사랑은.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하여, 천 개의 단어 밖에 모르는 감정 없는 로봇이라 하여, 성별이 다르다 하여, 장애를 가진 신체적 약자라 하여, 가난하다고 하여, 상대와 내가 다른 존재라 하여. 그를 혐오하거나, 그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거나, 그와 내가 공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의 속도는 서로 다를지언정, 무게는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존재 자체로 그를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 모두가 혼자다. 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느슨한 연대로 묶여 나아갈 때, 뿌리에 호시탐탐 기대를 노리며 도사리고 있던 욕심은 무력해진다. 콜리는 세상에 올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고, 살면서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큰 몇 사람의 이름을 배웠다. 그는 사람이었다면 죽음이라고 불렸을 마지막 순간, 그동안 자신이 알았던 모든 단어는 전부 파랑이었다고,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파랑파랑하고 눈부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천개의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가장 아름답고 그리운 이름으로 부르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늘. 문제가 가득한 복잡한 세상에 간단한 답이 되어준다.
삼천 개의 물방울이 손목까지 적시고 잠옷 끝 소매를 회색으로 물들이고 나서야, 나는 울음을 그치고 손을 거뒀다. 비가 많이 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문 땅이 꿀꺽꿀꺽 은회색 물방울들을 마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움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일이다. 물방울 하나에 기억 하나씩, 릴을 풀어 회색 필름에 맺힌 기억을 비로 지워냈다. 그렇게 마음을 다 떼어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엔드게임의 여운이 가득할 때라, 비를 뜻하는 너의 이름 끝에 3000을 붙여, 3000만큼 세차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그만큼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늘이 땅에 갚을 빚이 많았는지 강우가 세찼다. 그 속으로 그리움이 녹아 멀리 흘렀다. 창 밖으로 삼천 개의 회색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모든 단어는 전 부 다 삼 천 개의 비였다. 빗방울이었다. 창문을 닫으며 이제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행복해지리라 다짐했다. 느슨한 연대의 작은 한 귀퉁이가 되겠다고. 건물을 버티는 한 알의 나사가 되겠다고. 누군가에게 가서 빗방울이 되겠다고. 아파도 마음을 열고 사랑하겠다고. 그리움을 이기겠다고. 비가 가면서 너도 간다. 진정한 작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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