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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0년 02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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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00쪽 | 228g | 130*195*15mm |
ISBN13 | 9788932902777 |
ISBN10 | 89329027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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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108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깊이에의 도전 그리고 파트리크 쥐스킨트 예찬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꼽을 것이다. 2년 전 ‘향수’의 작가로 유명한 그의 단편집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매순간 그 ‘깊이’에 대한 집요한 생각이 끊이지 않을 당시,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마치 좌석에 달라붙듯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간결하면서도 명료하였던 젊은 여자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글로 읽는 이의 마음속에서 조용하면서도 요란한 동요를 일으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나는 천재라 부르고 싶다. 그의 글은 거추장스러운 꾸밈이 없이 정확히 독자들에게 화살을 던졌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장황하되 명료하지 못하는 수식어를 나열하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굿이 변명을 하자면, ‘깊이에의 강요’는 한 문장으로 정의될 수 없을 만큼 예리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깊이에의 강요’를 처음 접했을 당시, 한창 내가 마주하던 매 순간의 현상들에 대한 생각, 그것의 깊이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얇음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진정이 담겨있지 않았던 껍데기 같은 모습에 자책했던 나였기에 자살한 그 젊은 여자를 마주하게 된 순간 복잡한 감정에 빠지게 되었다. 동질감이라고 할까? 닮은꼴의 감정에 대한 위로와 자괴가 섞인 묘한 떨림이었다. 어느 평론가의 가벼웠던 평론과 앵무새처럼 리플레이 하듯 반복되는 다수의 몇 마디로 인해 그녀는 그녀 자신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암흑으로 몰아 부친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 그 젊은 여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겁한 선택을 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경솔했던 평론가를 탓하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녀 자신에게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자존감이 없었던 거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지나가는 타인들의 말에 흔들려 뿌리를 뽑혀버렸고, 더 나아가 좀 더 진화하기 위해 그녀가 감당했어야 할 고통을 용감하게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처음 글을 읽었을 때는 나의 상황과 그녀의 상황에 몰입되어 오직 그 자살한 여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예리함은 그가 젊은 여자뿐만이 아니라 평론가와 다수의 이름 모를 무리를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배치한 것에서 드러난다. 그가 말하려 했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비단 자살한 젊은 여자뿐 만이 아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해 가벼운 평가를 했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말을 돌려 같은 그림을 칭송했던 평론가, 그리고 신문에 실린 그의 비평을 외우고나 있는 듯 똑같은 말을 수군거렸던 다수의 무리가 바로 나 자신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얼굴인거다.
그 많은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많은 책을 읽으며 얼마나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나 되돌아본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작가와의 정신적인 대화를 하는 것임을 외치던 나조차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보다 연도와 제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데 정신없었지 않았나? 젊은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평론가가 바로 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또 다른 나의 얼굴은 바로 무수히 뿌려지는 정보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돌림노래 하듯 중얼거렸던 다수의 사람들이다. 그 다수가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또 다른 가해자인거다. 세상이 품고 있는 진실에 얼마만큼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는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기호에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려는 시도를 했었는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잘못은 무책임한 말들을 서슴없이 해대는 매스컴뿐만 아니다. 그 무책임한 말들을 진리인 양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앵무새처럼 종알거렸던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 다시 한 번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포장하고 묵묵히 그들의 길을 가고 있는 작가들의 노력을 짓밟았던 과거의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결국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유능했던 젊은 화가를 죽음으로 몰아붙인 책임을 모두에게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이 모두가 일그러져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하며 단 4장의 짧은 이야기를 거울삼아 보여준다. 나는 오늘도 ‘깊이에의 강요’를 읽으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비겁하게 도망치려 했던,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있던 나에 대해 반성한다. 더 나아가 이런 깨달음을 실행에 옮겨 스스로의 생각에 모순된 삶을 살지 않도록 매순간 나 자신을 경계할 것이다. 삶에의 진정, 무지한 나에 대한 인내와 그에 따른 노력, 이러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되새기며. 나의 깊이에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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